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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G7과 C(코로나)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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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코로나 '후진 7개국' 들고도 자찬
균형외교, 적폐청산의 진의 왜곡
우리 사회 곳곳 후진성 털어내야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1. 일본은 얼마 전까지 해외에서 입국하는 이를 대상으로 '시설 격리'를 엄격히 적용했다. 코로나·오미크론이 행여라도 일본에 크게 번질까 봐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막았다. 그러다 비판여론이 번지고 코로나가 워낙 폭넓게 퍼져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격리를 대폭 완화했다. 전 세계 195개국 중 주요 선진국 이름이 하나둘 사라지더니 13일 현재 격리 대상국으로 남은 곳은 단 7개국. 스리랑카·파키스탄·이집트·러시아·터키·베트남, 그리고 한국이다. '지정국'이라 점잖게 표현하지만 마지막 남은, G7 아닌 C7(코로나 7대 유행국)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아직도 "세계가 감탄한 K 방역"(3월20일 발표 '온라인 백서') 이라 주장한다. 사망·확진자 수가 치솟자 "기존 패러다임에서 전환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참 어이가 없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남들은 다 제 갈 길 가는데, 격리 시설로 향해야만 하는 우리 국민의 분노, 더러운 기분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소리 입에 담아선 안 된다. 코로나 대처도 후진적이지만, 현상을 왜곡하는 발상은 더 놀랍고 후진적이다. 자랑할 걸 자랑하자.

일본 정부가 지정한 시설 격리 대상 국가 리스트. 러시아,터키,스리랑카,한국, 이집트,파키스탄,베트남의 7개국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 캡처]

일본 정부가 지정한 시설 격리 대상 국가 리스트. 러시아,터키,스리랑카,한국, 이집트,파키스탄,베트남의 7개국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 캡처]

#2. 지난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사드란 두 글자는 중·한 관계의 금기어가 됐다"는 발언을 듣는 순간 오버랩 돼 떠오른 장면이 있다. 중국 정부의 한 고위 인사가 최근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전문가 A 씨를 불렀다. 그러더니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중국은 윤석열 정부가 사드 문제만 안 건드리면 양보를 할 용의가 있다." A씨가 "무슨 양보를 한다는 말이냐"고 묻자 이 고위인사는 뜬금없이 현대차와 삼성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현대차와 삼성전자 중국 사업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설명이었다. 두 가지다. 첫째, 중국의 공식 설명과 달리 "보복(한한령)은 현재 진행형"이란 걸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둘째, 사드 추가 배치를 추진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경고다. 얼마나 한국을 우습게 봤으면 이런 거만한 발언이 나올까. 하지만 지난 5년 중국에 대해 굽신 외교를 거듭해 온 우리 외교의 업보이기도 하다. '3불 정책'을 한국과 합의했다고 공공연히 외치는 중국에는 찍소리 못하고, "협의했을 뿐"이라 몰래 발뺌하다 혼란만 자초했다. 덩치만 G7 급이 됐지, 비전없는 균형외교 타령에 국민 자존심만 무너졌다. 진정한 균형외교는 동맹국엔 동맹국답게, 전략적 동반자엔 전략적 동반자답게 '비례'해서 대하는 거다. 그걸 미국·중국 5대 5 등거리 외교로 호도(혹은 착각)했다. 대통령이 외교를 모르는 건 비극이지만, 외교를 망가뜨리는 건 참극이다.

지난 2019년 12월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외교부를 예방한 왕이(왼쪽)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회담에 앞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 2019년 12월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외교부를 예방한 왕이(왼쪽)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회담에 앞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3. 요즘 외국 지인들에게 자주 받는 고약한 질문이 "정권이 바뀌었으니 너희 나라 전 대통령은 또 감옥 가니?"다. 가장 부끄럽고 아픈 부분이다. 역대 정권 거의 모두 적폐청산이란 미명 아래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정치 보복을 했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팡세(Pensées)』에서 "위도가 3도 다르면 모든 법률이 무너진다…강 한 줄기로 좌우되는 이상한 정의여!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 진리인 것이, 저쪽에서는 오류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위도 차이 0인 똑같은 청와대에 앉아 서로 다른 정의를 외쳐댔다. 그리고 아마도 그 정점에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직전 정부 국정원장 3명 전원을 '특수활동비'로 엮어 보복한 문재인 정부가 있다. 그리곤 자신들은 검찰 수사비로 써야 할 특활비를 법무부로 돌렸는데도, 대법원장 공관을 리모델링하며 법원 예산을 무단 전용했는데도 셀프 무사 통과시켰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이런 비정상을 주도한 문 대통령 스스로 한 달 남은 임기 안에 이명박 전 대통령,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사면하고 퇴임하는 게 옳다. 그런 도량을 기대할 수 없다면 도리 없다. 취임 직후 신 대통령이 할 수밖에. 어찌 됐건 그게 정치 후진성을 조금이라도 면하는 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박근혜 정부 시절의 정보수장이었던 국정원장 3명 전원이 특활비 상납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명수 사법부는 이들 정보 책임자들을 '회계 관계 직원'으로 규정해 논란이 일었다. (왼쪽부터) 남재준, 이병호, 이병기 전 국정원장. [중앙포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박근혜 정부 시절의 정보수장이었던 국정원장 3명 전원이 특활비 상납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명수 사법부는 이들 정보 책임자들을 '회계 관계 직원'으로 규정해 논란이 일었다. (왼쪽부터) 남재준, 이병호, 이병기 전 국정원장.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