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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실패한 대통령의 길 가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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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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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 취임도 전에 벌써 나라가 정상으로 되돌아온 느낌이라며 안도하는 사람이 꽤 많다. 명백한 입시 비리에도 권력자의 자녀라는 이유로 몇 년씩 시간만 끌던 대학들이 뒤늦게 입학 취소 결정을 내린다든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직권남용 사건처럼 경찰과 검찰이 정권 눈치 보느라 뭉개던 권력형 수사 대상자를 3년만에 기소한 건 순전히 정권 교체 효과다.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더불어민주당 정권이 향후 있을지도 모를 문재인 정부 최고 권력자들의 검찰 수사를 어떻게든 막겠다는 일념으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걸 보고 있노라면, 만약 정권이 연장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세상을 어지럽힌 온갖 불법엔 면죄부가 쥐어졌을 테고, 민생을 외면한 채 오로지 내 편의 이익을 위한 독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됐을 거다.
윤석열 정부의 탄생은 이걸 막은 것만으로도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우려도 크다. 인사 탓이다.

윤석열 당선인이 13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소개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당선인이 13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소개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인사의 중요성은 새삼 더 보탤 필요가 없지만 새 정부의 첫 인선은 더더욱 중요하다. 국정 운용 철학을 드러내서만이 아니다. 인재 풀이 얼마나 풍성한지, 그런 인재를 가려 쓸 선구안이 있는지, 내 편이라도 시대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버리는 검증 능력이나 공적 마인드가 있는지, 여기에다 남의 사람이라도 갖다 쓸 포용력이 있는지. 다시 말해 새 정부의 총체적 실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잣대라서다.

시대 역행적 총리, 최측근 기용도 #국정 철학 안 보이는 새 정부 인선 #'공정과 상식의 복원' 걸맞나

지금까지는 매우 실망스럽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부터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 이창양 산업부 장관 후보자에 이르기까지 적합한 인사 찾기가 오히려 더 어려울 지경이다. 특히 어제(13일) 발표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또 다른 의미에서 부적절하다. 측근을 두지 않아야 하는 게 대통령 자리인데, 굳이 전 국민이 다 아는 측근의 파격적 발탁은 스스로 인재 풀은 협소하고, 시야는 미래가 아닌 과거를 향해 있고, 측근을 버리는 단호함은커녕 측근만 쓰겠다는 아집을 드러내서다.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돌이켜보면 첫 인사 때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됐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에 김상조 공정위원장, 낙마한 안경환 법무부 장관까지, 참여연대 정부라 할 정도로 좁은 시민단체와 386 운동권 인력풀에 의존했고, 비단 조국 사태뿐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 하고 내 편 네 편만 나눠 옳고 그름의 기준을 무력화한 부실한 공적 마인드는 문 정부 내내 부담이었다. 그런데 윤 당선인의 지금까지의 인사는 이런 문 정부 초기의 부실 인사를 떠올리게 한다.

한덕수 카드를 꺼냈을 때부터 사실 뜨악하긴 했다. 경륜, 경제통 등 아무리 좋은 말을 갖다 붙여도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 말처럼 "호남 출신에 노무현 정부 총리를 지냈으니 국회 통과가 수월할 거라는 기대치" 말고는 달리 이유를 찾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세간엔 73세의 고령, 그리고 공직과 대형 로펌을 오가는 회전문을 통해 2017년 이후에만 20억원 가까이 벌었다는 사실을 문제 삼지만 난 김상조 당시 후보자가 그랬듯이 최근 5년 동안 신용카드 사용액이 0원이라는 게 더 걸린다. 실제로 카드를 전혀 쓰지 않았거나, 쓰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얘기인데 둘 다 정상적이지 않다. 출처가 불분명한 다른 소득원으로 소비하는 식으로 사실상 탈세를 했거나, 비판의 소지가 있는 소비행태를 감추려 했다는 의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5년 전에도 납득이 어려웠는데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내세운 정부의 첫 총리로 맞지 않는다. 한 후보자 측은 이에 대해 연말정산 대신 종합소득세 신고를 히면서 빚어진 서류상 누락이라고만 설명했다.
당선인의 40년 지기라는 사실 말고는 공직을 맡을 만한 실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복지부 장관 후보자 역시 마찬가지다. 굳이 대통령 친구를 데려다 쓰려면 국민이 인정하지 않고는 못 배길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새 정부에 반감이 큰 젊은 여성을 조롱한 옛 칼럼이나 농지법 위반 전력, 자녀 특혜 입학 의혹 이외에 무슨 능력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업계를 관할하는 주무 부처인 산업부 이창양 후보자는 인수위 합류 6일 뒤에 LG디스플레이 사외이사로 재선임됐다. 인수위에 합류하자마자 기존 사외이사직도 버려야 옳은데 장관 지명 때까지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공적 마인드 수준을 가늠하고도 남는다.
여러 실패한 대통령을 봐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에서 '지나간 정권을 경쟁 상대로 삼지 말고 미래를 상대로 경쟁하라'고 조언했다. 또 '국민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으며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이를 잘 이해하고 순응한 정치는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정치는 실패했다'고 했다. 살아남을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 당선인의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