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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킹] 금주법 시대를 추억하며, 은밀한 칵테일 한 잔

중앙일보

입력

호야 킴의 〈만날 술이야〉  
우리나라 사람만큼 칵테일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요.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 아시죠? 그게 바로 칵테일입니다.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고 소주와 사이다를 섞는 것도 칵테일이죠. 주종이 많지도 않은데 우리는 유난히 섞는 걸 좋아합니다. 칵테일 좋아하는 여러분을 위해, 바텐더 호야킴이 매달 맛있는 칵테일 이야기를 전합니다. 따라 만들 수 있는 레시피도 덧붙였답니다. 매일 같은 일상, 똑같은 방구석이라 해도 직접 만든 칵테일 한 잔만으로도 설레는 순간, 멋진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으니까요.

'플레어 바텐딩'은 술병을 현란하게 돌리고 입으로 불을 내뿜는 등 미국 칵테일의 엔터테인먼트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사진 World Flair Association 홈페이지

'플레어 바텐딩'은 술병을 현란하게 돌리고 입으로 불을 내뿜는 등 미국 칵테일의 엔터테인먼트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사진 World Flair Association 홈페이지

미국은 ‘칵테일’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고 정의 내려진 곳입니다. 1803년 신문 ‘더 파머스 캐비닛(The Farmer's Cabinet)’에 ‘칵테일’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기록됐죠. 뒤이어 1806년 5월 13일자 뉴욕주 허드슨에서 발행하는 신문(The Balance, and Columbian Repository)에서 처음으로 칵테일을 술의 한 종류로 정의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미국을 칵테일 종주국으로 생각합니다.

미국 칵테일은 변화무쌍하고 혁신적입니다. 또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플레어 바텐딩(Flair Bartending)’이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었죠. 술병을 현란하게 돌리고 가끔 입으로 불을 내뿜는 바텐더들의 모습이 기억나실 겁니다. 그럼, 요즘 트렌드는 어떨까요? 지금 미국에서는 무려 1830년대 뉴올리언스 스타일 칵테일과 빈티지 칵테일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하죠. 클래식 칵테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칵테일들이 인기라고 합니다.

HBO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1988~2004년)’ 스틸 컷. 사진 HBO 홈페이지

HBO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1988~2004년)’ 스틸 컷. 사진 HBO 홈페이지

우리에겐 조금 특별한 날 칵테일을 마시는 이미지가 있지만, 미국에서는 칵테일을 마시는 것이 일상적인 일입니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칵테일을 주문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죠.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도 흔히 나오지만, 옛날 드라마에도 주인공들이 친숙하게 칵테일을 시킵니다. 예를 들어 HBO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1988~2004년)’에서는 주인공 캐리가 어디를 가든 ‘코스모폴리탄’을 주문합니다. NBC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Miami Vice, 1984~1989년)’의 남자 주인공은 여자를 만날 때 항상 ‘모히토’를 주문합니다. 이런 장면들이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하네요. 심지어 미국 사람들 대부분은 좋아하는 칵테일 레시피 2~3개 정도는 외우고 있고, 직접 만들어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칵테일 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은 것은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중 하나로 ‘금주법’(Prohibition Law)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칵테일이 개발되고 칵테일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때가 금주법 시대였죠. 금주법이 시행된 1920년대 초반부터 1933년까지 미국은 ‘주류 문화의 암흑기’를 겪었습니다. 칵테일은 물론 모든 술의 제조와 유통이 금지된 이때 미국 칵테일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금주법 시대 불법으로 유통되는 저급한 술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맛을 표현하는 칵테일들이 탄생하게 된 겁니다.

약용 알코올 사용 허가증. '금주법' 시대에 알코올을 약용으로 쓰려면 허가를 받아야 했다. 사진 네이버 지식백과

약용 알코올 사용 허가증. '금주법' 시대에 알코올을 약용으로 쓰려면 허가를 받아야 했다. 사진 네이버 지식백과

금주법 당시 미국에서 생산되던 많은 종류의 버번(Bourbon)위스키, 맥주, 그 외 다수의 주류 증류소 및 양조장이 문을 닫았고 하루아침에 수천 개의 술집이 폐업해야 했습니다. 합법적으로 술을 생산하지 못하게 되자 사람들은 편법 혹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술을 구하기 시작했죠. ‘의학 치료’ 목적으로 일부 술을 생산할 수 있는 의사, 혹은 불법 밀주업자와 밀수업자에게 술을 구했다고 합니다. 국경을 마주하는 캐나다에서 몰래 술을 밀수해서 판매하는 밀수업자들이 판을 쳤던 세상이죠. 피해 사례도 많았습니다. 불법으로 생산된 술을 마시고 눈이 멀어버리거나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들이 생긴 겁니다. 게다가 밀수하는 술에는 세금이 매겨지지 않죠. 그 어마어마한 이권을 서로 차지하려는 갱들 간의 분쟁도 많았습니다. 이때 세를 불린 것이 그 유명한 마피아 ‘알 카포네’입니다.

금주법 시대에 일반인들에게 술을 불법으로 판매하는 개인 무허가 술집, 스피크이지 바가 운영되었다. 사진 The Mob Museum 홈페이지

금주법 시대에 일반인들에게 술을 불법으로 판매하는 개인 무허가 술집, 스피크이지 바가 운영되었다. 사진 The Mob Museum 홈페이지

이 와중에 새로운 문화도 생겨납니다. 일반인들에게 술을 불법으로 판매하는 바가 문을 열었죠. 바로 ‘스피크이지(speakeasy)’라고 불리는 개인 무허가 술집입니다. 단속을 피하려고 숨겨진 공간에 ‘간판 없는’ 술집을 만들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암호를 공유해 손님을 가려 받았죠. 당시 스피크이지 바에서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는데, 경찰서 서장이나 사회 지도층 그리고 갱단의 두목들이 같은 바에 앉아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상상만으로도 흥미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네요. 그런데 스피크이지 바에서 파는 술은 영 시원치 않았습니다. 불법으로 유통되는 술의 품질이 좋을 리가 없기 때문이죠. 바로 이 시기에 칵테일이 성행했는데요. 질 낮은 술맛을 감추기 위해 이것저것 섞어 맛을 낸 겁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그 옛날 금주법 시대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운영시간 제한 등 몇 가지 방역 조치 때문에 바와 레스토랑, 식당 같은 장소에서 늦은 밤까지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실 수 없는, 그런 시간을 겪어왔기 때문이겠죠. 코로나19가 우리나라 ‘바 문화의 암흑기’를 만든 셈이죠. 물론, 금주법 시대보다는 코로나 시대가 나은 상황입니다. 그 옛날 미국은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으니까요.

4월의 칵테일은 금주법 시대 미국을 떠올리게 할 메뉴로 골라봤습니다. 당시 미국 스피크이지 바에 자주 울려 퍼졌던 재즈 음악을 들으며, 또 ‘거리두기’가 온전히 해제될 그 날을 상상하며 집에서 은밀하게 칵테일을 만들어보세요.

① 무기의 이름을 가진, 한 송이 꽃 같은 겉바속촉 칵테일 ‘프렌치 75(French 75 seventy five)’
금주법 시대에는 샴페인이 유행했습니다. 미국 본토에서 술을 만들 수 없게 되자 다른 나라에서 밀수로 술을 들여와 불법으로 유통했는데요. 멀리 프랑스에서까지 술을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미국 땅에 샴페인이 퍼지게 된 거였죠. 당시 미국인들은 샴페인을 이용해 칵테일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청량감 있고 톡 쏘는 샴페인이 질 낮은 밀주의 맛을 가리기 제격이었기 때문이죠. 자연스럽게 샴페인을 이용해 만든 유럽 칵테일들도 유행하게 됐습니다. 그중 가장 인기 있었던 칵테일 중 하나가 ‘프렌치 75’입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프랑스의 75㎜ 곡사포(포탄이 곡선을 그리며 나가게 쏘는 포)에서 이름을 따온 칵테일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점에 전쟁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탄생한 칵테일인데,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무기의 이름을 따왔지만, 연인과의 우아한 한 잔을 찾고 계신 분들에게 추천할만한 칵테일입니다. 또 샴페인 한 병이 부담스러울 때, 간단히 샴페인 칵테일로 한잔하기도 좋습니다.

도수 15.32%, 새콤달콤한 레몬 맛과 진의 허브향, 그리고 샴페인이 조화를 이루는 ‘프렌치 75’. 사진 김형규

도수 15.32%, 새콤달콤한 레몬 맛과 진의 허브향, 그리고 샴페인이 조화를 이루는 ‘프렌치 75’. 사진 김형규

재료 준비
진 30mL, 레몬주스 15mL, 심플 시럽 15mL, 샴페인 90mL, 샴페인 글라스, 레몬 껍질.

만드는 법
1. 쉐이커 안에 진과 레몬주스, 심플 시럽을 순서 상관없이 용량대로 전부 붓는다.
2. 큐브 얼음을 넣은 후 힘차게 흔들어(쉐이킹) 섞어준다.
3. 글라스 안에 담는다.
4. 샴페인을 잔 안에 조심스럽게 붓고, 레몬 껍질로 마무리한다.

② 알 카포네 마피아 패밀리의 최애 칵테일 ‘더 사우스사이드 (The Southside)’
금주법 시대는 마피아들의 전성시대였습니다. 가장 막강했던 세력은 바로 알 카포네 패밀리였습니다. 알 카포네 조직이 밀주 시장을 장악하면서 돈을 끌어모았고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전국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거죠. 알 카포네 패밀리는 지금까지도 많은 누아르 영화의 모티브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당시 시대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데, 이때 영화 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화려한 연회 장면입니다.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값비싼 술과 음식들을 차려 놓고 파티를 즐기는 모습이죠. 이 장면을 볼 때마다 항상 그들의 손에 들린 술이 궁금했습니다. 인생의 쓴맛과 단맛은 모두 맛봤을 저들이 마시는 술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죠. 독한 허브향과 상쾌한 민트향이 어우러지는 ‘더 사우스사이드’는 알 카포네 패밀리가 자주 마시던 칵테일입니다. 알 카포네 패밀리가 시카고 사우스사이드 지역을 주름잡던 것에서 칵테일 이름이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원하며 상큼 달콤한 맛을 가진 칵테일로, 당장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분들께 권합니다.

도수 17.14%, 독한 허브향과 알코올 그리고 뒤에 따라오는 상쾌한 민트향의 '더 사우스사이드'. 사진 김형규

도수 17.14%, 독한 허브향과 알코올 그리고 뒤에 따라오는 상쾌한 민트향의 '더 사우스사이드'. 사진 김형규

재료 준비 
진 60mL, 레몬주스 30mL(또는 프레쉬 레몬), 심플 시럽 30mL, 생 민트 잎 5장, 칵테일 잔, 민트잎.

만드는 법
1. 생 민트 잎 5장을 손바닥에 얹어 놓고 살짝 손뼉 치듯 한 번 쳐준다.
2. 쉐이커 안에 모든 재료를 넣고 얼음과 함께 흔들어(쉐이킹) 섞어준다.
3. 글라스에 차 거름망을 이용해 내용물을 부어준다.
4. 민트 잎으로 마무리한다.

DRINK TIP 칵테일 맛있게 마시는 법
▪ 음악 페어링
Sweet Georgia Brown - Ben Bernie
▪ 보관 방법
민트 등의 허브는 실온의 물에 부드럽게 한번 씻은 후 그릇 아래 키친타월을 깔고 뚜껑을 닫은 후 그릇을 뒤집어서 보관하면 신선함이 조금 더 오래갈 수 있습니다.

김형규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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