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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물가 백투더 1980…‘볼커 모멘트’ 다시 오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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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폴 볼커

폴 볼커

“볼커는 위대한 관료였다.”

지난달 미 의회에 출석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폴 볼커 (전 Fed 의장)처럼 불황을 감수하며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이어 “역사가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 기록했으면 한다”며 물가와의 전쟁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볼커 전 Fed 의장은 1979년 취임한 뒤 당시 연 10%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6개월 만에 22%까지 끌어올리는 등 강력한 통화 긴축을 강행했다. 시중 돈줄이 마르고 기업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늘면서, Fed 건물로 시위대가 몰려와 군대를 배치해야 할 정도였다. 당시 미국 실업률은 11%까지 치솟았다.

제롬 파월

제롬 파월

하지만 볼커는 단호했다. 3년여간의 악전고투 끝에 물가를 잡았다. 80년 3월 14.8%에 달했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전년동기대비) 상승률은 83년 7월 2.5%까지 떨어졌다. ‘볼커=인플레 파이터’라는 말이 자리 잡은 이유다.

40년을 거슬러 볼커가 소환되고 있다.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레이건 시대로 돌아가면서다. 3월 미국의 CPI 상승률은 8.5%를 기록했다. 81년 12월(8.9%) 이후 40여년 만에 최고치다. 물가 수준으로만 보면 볼커가 Fed 의장이었던 80년 초반 수준에 근접했다.

라엘 브레이너드 Fed 부의장 후보자도 “볼커는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인 경제 성장, 나아가 고용을 해치는 가장 큰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 악화를 우려해 기준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달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도 올해 기준금리를 1회 이상 ‘빅스텝(0.5%포인트)’ 인상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7일 “인플레가 1970~80년대에 견줄 만큼 이례적으로 높다”며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3.5%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기준금리(연 0.25~0.5%)를 고려하면 남은 6번의 FOMC에서 기준금리를 모두 0.5%포인트씩 올려야 가능한 수치다.

폴 볼커시대의 미국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폴 볼커시대의 미국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볼커 모멘트’가 돌아올까 봐 채권과 주식 시장은 숨죽이고 있다. 채권 시장은 두 번의 ‘빅스텝’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12일(현지시간) 장 중 연 2.78%를 돌파하며 3%에 바짝 다가섰다. NH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이미 1분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채권 대학살’로 명명된 볼커 시대(-5.45%)보다 낮은 역대 최악(-5.57%)을 기록했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현재 미국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 시장은 지난달 FOMC에서 파월이 경기를 꺾어서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내 결국 볼커의 길을 선택했다고 보고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달 들어 나스닥은 1만4000선이 깨지며 연초대비 15.5% 하락했다. S&P 500도 연초보다 8.3% 떨어지며 4300선까지 내려왔다. 파월이 볼커의 길을 밟더라도 경기 침체에 대한 인내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인다. 프랑스은행 나티시스의 조지프 라보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ed가 지금은 강하게 말하지만 몇 번의 금리 인상 이후 갑자기 고용 상황이 약화하면 계속 매파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Fed는 첫번째 금리 인상 시기에 가장 강한 매파 발언을 내놓는 경향이 있다”며 “볼커 때와 비교해 현재 미국의 부채 수준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금리 인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 상승이 정점을 찍었다는 의견도 조심스레 나온다.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가 전달보다 0.3% 오른 데 그쳐서다. 김지원 KB 증권 연구원은 “근원 CPI가 전망치를 소폭 하회하고 전달보다 둔화했다”며 “다만 유가가 다시 오르는 등 물가 안정세를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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