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예원이 고발한다

범죄자 천국 만드는 검수완박...힘 없어 우는 서민 늘어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김예원 변호사

나는 고발한다. J’Accuse…!’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한 뒤 악수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박홍근 원내대표. 그래픽=김경진 기자

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한 뒤 악수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박홍근 원내대표. 그래픽=김경진 기자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위치에 있는 범죄 피해자를 10년 넘게 도왔다. 그들은 대부분 별로 말이 없다. 무언가에 대해 말해도 되는 존재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20년 이상 노동 착취를 당한 지적 장애인 피해자가 허리 디스크가 터질 때까지 도망갈 생각을 한 번도 못 하고, 친부에게 성폭력 당한 아동은 고통스러워도 그저 아빠와의 특별한 비밀 놀이라는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시설에서 폭행으로 온몸이 멍든 채 숨진 한 중증 장애인도 단 한 마디 저항의 말을 못했다. 그 삶의 끝은 '단순 변사로 처리'였다. 장애가 있어서, 나이가 어리거나 많아서, 돈 없고 배움이 적어서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곁에서 이 사회가 얼마나 범죄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관련기사

한국을 포함한 문명국가에서는 범죄 피해를 당해도 개인적으로 보복할 수 없다. 오로지 국가를 통해서만 합법적으로 범죄자에 갚을 수 있다. 특히 '국가 소추주의'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선 피해자가 형사재판을 열어 달라고 법원에 직접 요구할 수도 없다. 오직 수사기관이 사건의 실체를 정확하게 규명해줘야 죄 있는 사람을 처벌하고 죄 없는 사람은 억울함을 풀 수 있다. 이게 사법 신뢰의 바탕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기어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당론으로 삼았다. 그 안에 숨은 정치적 손익 계산을 차치하고라도, 이 당론이 실제 입법에 이르면 힘없는 서민들의 소소한 사건에 미칠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을 설쳤다.

12일 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한 뒤 회의장을 떠나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뉴스1]

12일 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한 뒤 회의장을 떠나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뉴스1]

수사권 조정 후 이미 약자 고통 가중

검경 수사권 조정 이전에는 굳이 이의제기하지 않아도 공평하게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가 있었다. 일반 형사사건의 피해자는 난생처음 범죄 피해를 봤거나 장애나 연령 등으로 취약한 상황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사건 송치나 이송이 뭔지 잘 모른다. 검사나 판사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이들에게 자동으로 부여되는 두 번째 기회는 동아줄 구실을 했다. 경찰 수사가 부실해도, 경찰의 법리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 괜찮았다. 어차피 사건은 검찰로 전부 넘어갔으니까. 설사 경찰이 '혐의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보내도 검찰에서 추가로 압수 수색을 해서 새로운 증거도 붙이고, 경찰에서 조사하지 않은 참고인의 추가 진술을 받을 수 있었다. 검찰이 사건 기록을 보강했기에 범죄자를 기소하고 처벌하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

수사권 조정으로 2021년부터 검사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대형참사·방위사업) 외에는 직접 수사를 할 수 없게 됐고,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권도 전면 폐지됐다. 처음에 수사권 조정이 시행될 때만 해도 사실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다. 정치적 중립성을 무시하는 정치 검사들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고, 경찰에서 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기에 피해자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지 않을까 싶었다.

관련기사

그런데 수사권 조정이 본격 시행되면서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 잇따라 펼쳐졌다. 예전 같으면 6개월 안에 처리될 사건이 1년이 다 되도록 피해자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변호사가 고소장을 써 제출해도 증거를 충분히 가져오지 않았다며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접수를 거부하는 일도 생겼다. 피해자가 당한 범죄의 죄명별로 다 고소장을 쪼개서 쓴 뒤에 각각 다른 과에 제출하라는 황당한 소리도 들었다.

부지하세월 경찰 수사 

범죄자가 온갖 변명을 하며 숨어다녀도 범인을 잡아 오지 않고, 지명수배만 내린 채 1년이 넘도록 수사를 중단하고, 불구속 상태의 범죄자가 이사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사건을 다른 관할 경찰서로 넘겨 여덟 차례나 사건이 이송된 적도 있다. 수사권 조정 전에는 검찰이 사건 기한 관리를 했기에 이 정도로 심각한 수사 지연은 있을 수 없었다.

겨우 경찰에 피해자 진술을 하고 다시 몇 달이 지나 불송치 결정(경찰에서 무혐의로 사건 종결)이 났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불송치 결정을 하면 그 이유를 적은 통지서를 피해자에게 보내는 게 의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보내 달라고 요청을 하면 정보공개청구를 하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불송치 결정서를 받아 보면 사유는 두세 줄이 고작이다. 이 지경이니 도대체 불송치 이유의 어떤 부분을 바탕으로 ‘이의신청’을 해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과거 당연하게 보장받던 두 번째 기회(경찰 수사에 대한 보완)는 ‘이의신청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됐다.

더욱 암담한 사실은 이 모든 수사 지연과 부실 수사가 경찰의 역량 부족 탓이 아니라 잘못 설계된 제도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업무 폭탄을 갑작스럽게 떠안은 경찰 수사관들의 번아웃 현상과 혼란을 지켜보며, 여당이 왜 이런 '퇴보한 시스템'을 자신 있게 밀어붙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절규하고 좌절하고 심지어 자살 시도도 했지만 정작 범죄자는 멀쩡히 활보했다. 이러니 "범죄 신고를 한 내 잘못"이라는 자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광주·전남 22개 단체로 구성된 '화순 노예PC방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2021년 7월 경찰의 늑장·부실 수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20대 청년 7명을 감금하고 폭행하며 강제 노동을 시킨 혐의로 업주가 고발이 됐는데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뉴스1]

광주·전남 22개 단체로 구성된 '화순 노예PC방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2021년 7월 경찰의 늑장·부실 수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20대 청년 7명을 감금하고 폭행하며 강제 노동을 시킨 혐의로 업주가 고발이 됐는데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뉴스1]

부실 수사 못 거르는 검수완박 

이런 수사권 조정의 후폭풍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 한 채, 민주당은 ‘검수완박’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는 말은 전체 형사 사건의 1%도 안 되는 6대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 박탈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수사권 조정 이후 이의신청 제도를 통해 그나마 검찰이 보완하던 경찰의 부실 수사를 전혀 손쓸 수 없게 된다는 심각한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다. 아무리 경찰 수사가 엉망이라도, 수사를 계속 뭉개다 공소시효 완료로 기소조차 못 한 채 사건이 날아가도, 책임을 묻거나 사태를 되돌릴 대안이 전혀 없다. 어떻게 수사가 진행됐든 더는 캐거나 보태거나 들여다보지 말고, 검찰은 넘어온 기록 그 자체만 검토해서 기소 여부를 판단하라는 게 검수완박이기 때문이다.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도 없이 무조건 기소만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권력은 편중되면 부패한다. 수사권은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막강한 공권력이기에 반드시 그 통제 방법이 함께 있어야 한다. 검수완박으로 경찰에 편중된 수사 권력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마저 사라지면 누가 가장 살판이 날까. 당연히 범죄자들이다. 안 그래도 올해부터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부인한다"고 한마디만 하면 피의자 신문조서가 휴짓조각이 되는데, 여기에 검수완박은 불난 데 기름 붓는 격이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검찰의 6대 범죄 수사 권한을 갑자기 빼앗아 ‘수사 총량’을 증발시킬 생각을 할 게 아니라, ‘범죄 총량’을 줄일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피해는 돈 없는 서민에게 

범죄 피해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 검수완박을 주도하는 고관대작들은 법이 어떻게 변하든 사실 크게 상관이 없다. 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최상의 법률 서비스를 돈을 주고 살 수 있다. 정작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이다.

기어이 검수완박을 하겠다면 부작용을 줄일 최소한의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 경찰에 일임된 수사권을 통제하고 보완할 장치가 필요하다. 검찰의 수사 권한을 없애서 오로지 경찰만 수사하게 되더라도 일반 형사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통제 권한은 반드시 복원시켜야 한다. 경찰이 양질의 증거를 적시에 확보하고 있는지,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것은 아닌지, 범죄자가 법을 악용하여 수사기관을 우롱하지는 않는지 검찰이 볼 수 있어야 한다. 힘들어서 말 못 하는 피해자의 요청이 없어도 검찰에서 다시 살펴보면서 피해자의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오직 국가의 공권력을 통해서만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기에, 힘없는 서민 피해자의 억울함을 ‘제도’가 해결해줘야 한다.

검수완박을 고집하는 정치인들은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길 바란다. 정치적 입장에 얽매일 일이 아니다. 범죄자 전성시대를 열 엉터리 개혁은 중단돼야 한다.

[박지현의 별별시각]검수완박 철회하고 민생 법안에 집중해야

김예원 변호사는 '검수완박'이 부를 폐단과 부작용을 걱정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은 12일 당 의원총회에서 검찰개혁은 필요하지만 방법과 시기에는 신중해야 한다며 "검수완박은 질서 있게 철수하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지 않았습니다. 박 공동위원장은 13일 "당론을 존중한다"며 전 날의 입장에서 후퇴했습니다. 그의 발언 내용을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