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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檢수사’ 없애는 대수술…“공청회 한번 없이 군사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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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1949년 검찰청법 제정 이후 73년,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68년 만에 이뤄지는 형사사법체계의 일대 변혁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건국과 함께 존재하던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첫 사례라, 국회의 단순한 법안 개정 정도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만큼 당사자나 법조계 전문가, 국민들의 의견 수렴이나 형사사법 서비스를 제공받는 국민 사이 사회적 합의가 필수란 뜻이다. 그러나 2020년 말 더불어민주당 강경파가 처음 ‘검수완박’을 주장한 뒤 1년이 넘는 동안 이 같은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당 안에서도 ‘검수완박’ 추진 세력인 ‘처럼회’ 소속 의원들과 당 지도부 등 극소수의 의원들만 깜깜이로 논의해 온 탓이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과 관련해 반대 의견을 설명하고 있다. 김 총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제도 도입을 끝까지 막되, 안 되면 10번이라도 사표를 쓰겠다"며 "오늘(13일) 정식으로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김오수 검찰총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과 관련해 반대 의견을 설명하고 있다. 김 총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제도 도입을 끝까지 막되, 안 되면 10번이라도 사표를 쓰겠다"며 "오늘(13일) 정식으로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檢 관련 법인데, 민주 “檢과 논의 안 해”

13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지난해 2·5·8월 각각 민형배·이수진·황운하 민주당 의원 등이 ‘검수완박’을 전제로 한 형사소송법 등을 발의하긴 했다. 그러나 이 중 민형배·이수진 의원안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겨우 상정됐을 뿐 제대로 된 논의는 없었다. 해당 법안을 분석한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는 기존 법률 체계와 정합성, 법률상 미비점 등에 대한 지적이 다수 제기됐다. 하지만 민주당 안에서조차 이 법안들을 조율·보완해 단일안을 내놓은 적이 없다.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의 어느 조항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도 공론화하지 않았다.

‘검수완박 4월국회 처리’를 당론으로 확정한 12일 민주당 정책의원총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윤호중 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작년·재작년부터 2차 검찰개혁에 대한 논의를 쭉 해왔지만, 검찰과 이 논의를 하지는 않았다. 국민들께서도 우리 당의 논의를 궁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총에 참석한 한 의원은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모른다. 저런(검수완박) 얘기를 하면 저게 뭐 얼마나 중요하다고 저렇게 오랫동안 얘기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검수완박' 강경파를 이끌고 있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사진은 2019년 1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나란히 선 두 의원의 모습. 뉴스1

'검수완박' 강경파를 이끌고 있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사진은 2019년 1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나란히 선 두 의원의 모습. 뉴스1

공청회도 없는 마이웨이

전날 의총장에서는 검수완박 여론을 주도하는 의원들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검수완박’ 추진 관련 로드맵을 설명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법안 내용을 공유하지 않고, 당 원내지도부와 박주민 의원 등 소수 의원에게 법안 성안을 일임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만장일치”라고 주장했다. 법안 내용도 모르면서 일단 4월 처리 시한만 못 박은 것이다. 이 과정에선 정무적 판단만 있었을 뿐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깊은 고민은 없었다.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박주민 의원이 의총 직후 대략 설명한 ‘검수완박’ 법안은 ▶현행 검찰청법상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인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대형참사·방위사업) 중요범죄 수사권을 삭제하고 ▶형사소송법상 검사의 수사 권한과 관련한 부분을 삭제·수정하는 한편 ▶경찰공무원이 범한 범죄 수사권만 남기면서 이에 대한 근거조항을 검찰청법·형사소송법에 예외적으로 남기는 게 골자다. 경찰 수사결과에 대한 검사의 보완수사요구권은 유지하되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하는 건 원천 차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중장기적으로 검찰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수사 기능을 합친 ‘한국형 FBI(연방수사국)’를 만든다는 계획이지만, 일단 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의 수사 기능은 국가수사본부로 흡수된다. 민주당은 경찰 수사권을 견제·감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경찰 인사·감찰에 관한 제도 정비를 예고했으나, 법조계에선 ‘공룡 경찰’ ‘경찰 제국’에 대한 우려가 크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경찰에서 준비하는 데 3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들었다”(박주민 의원)는 이유로 법 공포 후 시행 유예기간을 단 3개월로 잡았다.

더불어민주다잉 당론으로 채택한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하면 기존 검찰이 갖고 있던 수사권은 모두 경찰(국가수사본부)로 이관되고, 검찰공무원이 범한 범죄에 대한 수사권만 검찰에 남아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사진은 지난해 1월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에 따라 출범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앙 현관의 모습.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다잉 당론으로 채택한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하면 기존 검찰이 갖고 있던 수사권은 모두 경찰(국가수사본부)로 이관되고, 검찰공무원이 범한 범죄에 대한 수사권만 검찰에 남아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사진은 지난해 1월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에 따라 출범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앙 현관의 모습. 연합뉴스

민주당 결심하면 물리적 저지 불가

민주당이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면 물리적으로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없다. 새로 만드는 제정법이 아니라서 공청회도 의무가 아니다. 국회 법사위에 상정되면 재적위원(18명)의 3분의 1(6명) 요구로 공청회 개최가 가능하지만, 실질적인 저지 수단으로 보기 어렵다. 역시 재적위원 3분의 1 요구로 안건조정위원회를 열 수 있지만, 민주당 소속인 박광온 법사위원장이 6명의 안건조정위원 중 야당 몫 1명을 민주당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으로 지정하면 표결로 무력화할 수 있다.

법사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면 국민의힘 등 야당에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수단인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에 나설 수 있다. 이 경우 재적의원 5분의 3(180석) 찬성으로 무제한토론 종결동의를 의결할 수 있지만, 현재 민주당 172석과 기본소득당·시대전환 각각 1석, 친여 성향 무소속 의원 5명(박병석 국회의장 포함, 수감 중인 이상직 의원 제외)으론 180석을 채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무제한토론은 회기가 종료되면 자동으로 종결되고 다음 회기 첫 본회의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한다. 민주당이 향후 본회의에서 4월 임시국회 회기를 오는 25일로 의결할 경우 야당의 무제한토론도 25일로 종료되고, 이후 임시회를 한 차례 더 소집해 본회의를 열면 민주당 의석수만으로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 민주당이 결심만 서면 법안 통과는 시간문제인 셈이다.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2차 내각 인선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2차 내각 인선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김오수 “군사작전이냐” 한동훈 “반드시 저지”

이에 김오수 검찰총장은 이날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구체적인 내용을 저희도 아직 잘 모른다”며 “국민의 인신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시한을 정해놓고 군사작전 하듯이 하는 건 이해가 가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날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은 “법안 처리 시도는 반드시 저지돼야 한다”며 민주당과 정면충돌을 예고했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도대체 뭘 알아야 대응을 할 것 아니냐. 우리도 언론을 통해서 내용을 접하고 있다”며 “책임 있는 집권당이자 국회 다수당이라면 국민들에 먼저 검찰개혁은 이렇게 한다고 설명부터 하는 게 예의지, 밑도 끝도 없이 수사·기소 분리가 세계적 추세라는 거짓말로 밀어붙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앞서 전국 18개 지검장들은 지난 11일 대검에서 회의를 갖고 “국회에서 형사사법제도개선특위를 구성해 각계 전문가와 국민의 폭넓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논의를 거쳐 형사사법제도의 합리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숙의를 요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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