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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시민이 반겼다, 개관하자마자 '명소' 된 울산시립미술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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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도 탐벨리니,'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원주민들이다'. 2020, Immersive Video,10분 40초. [사진 이은주]

알도 탐벨리니,'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원주민들이다'. 2020, Immersive Video,10분 40초. [사진 이은주]

서울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 요즘 이곳에 가본 사람들은 '전자융합예술의 선구자'라는 알도 탐벨리니(1930~2020) 작품 앞에서 잠시 넋을 잃어봤을 것이다. 전시장 안으로 발을 들였을 뿐인데, 빛과 어둠, 웅장한 사운드가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작가는 관람객을 무한의 시공간 안에 내던지고 '우리는 모두 우주에 떠다니는 작은 먼지 같은 존재'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울산시립미술관 XR(확장현실)랩에서 선보이고 있는 탐벨리니의 유작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원주민들이다'(2020) 얘기다.

1월 6일 개관, 8만6000명 #울산의 첫 공공미술관 #젊은이들의 성지로 부상 #미디어중심 미술관 독특

올해 1월 6일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에 벌써 8만6000여 명이 다녀갔다. 마치 개관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이 관람객의 반응이 뜨겁다. 하루 평균 1000명씩 꾸준히 찾은 셈이다. 개관과 동시에 미술관은 울산 젊은이들의 성지이자 가족이 함께 찾는 명소가 됐다. 국내서 이토록 뜨거운 환영을 받은 공공 미술관이 있었을까.  시민들은 앞다퉈 SNS에 방문 후기를 올리며 홍보 요원을 자처했고, 전국 미술관 관장과 큐레이터들에게 이곳은 필수 탐방 코스로 떠올랐다. 새로 생긴 공공 미술관 하나가 바꿔놓은 울산의 새 풍경이다.

미디어아트 중심 미술관  

건축가 안용대 (가가건축 대표)가 설계한 울산 복정동 울산시립미술관 전경. [사진 울산시립미술관]

건축가 안용대 (가가건축 대표)가 설계한 울산 복정동 울산시립미술관 전경. [사진 울산시립미술관]

 백남준, 거북(1994) 166대의 모니터, 3대의 재생장치, 3종의 영상이미지, 영상분배기, 철 구조물, 150 x 600 x 1,000cm. [사진 울산시립미술관]

백남준, 거북(1994) 166대의 모니터, 3대의 재생장치, 3종의 영상이미지, 영상분배기, 철 구조물, 150 x 600 x 1,000cm. [사진 울산시립미술관]

울산시민들이 이토록 미술관을 반긴 이유가 있다. 광역시 승격 25년 만에 처음 생긴 공공미술관이다. 준비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10여년 전부터 논의가 시작됐고 2016년 7월 부지가 확정됐다. 이후 2019년 8월 착공한 미술관은 6182㎡ 부지에 건물 연면적 1만2770㎡로 지하 3층, 지상 2층의 규모로 완성됐다. 건립에 투입된 예산은 총 677억 원. 이제 울산시민들은 소문난 전시를 보기 위해 서울이나 1시간 거리의 부산·대구로 가지 않아도 된다.

1호 소장품, 백남준의 '거북'  

미술관의 정체성도 뚜렷하다. '한국 산업수도'인 지역의 특성을 살려 미디어아트 중심 미술관을 자처했다. 도시가 자연과 기술, 산업과 조화를 이룬 것처럼 예술로 삶의 질을 한층 올리겠다는 게 울산의 차별화 전략이다. 미술관의 1호 소장품 '거북'부터 이런 의지를 보여준다. '거북'은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 텔레비전 166대를 거북 형상으로 만든 대형 비디오 조각 작품(10m×6m×1.5m)이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와 연결되고, 테크놀로지에 대한 선견지명, 아름다움, 위용을 모두 갖춘 걸작이다.

이 미술관의 2, 3호 소장품 역시 백남준 작품이다. 이런 소장품은 울산시가 국내 최초로 도입한 '소장품 기금제'가 뒷받침하고 있다. 울산시는 개관 이전인 2017년부터 지금까지 5년간 140억 원을 적립했다. 대부분의 국공립미술관이 한해 5~1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해 1년 단위로 소장품을 구입하는 것과 달리, 울산은 적립된 재원 내에서 융통성 있게 작품을 구입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장은 "소장품을 공모방식으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이 나올 때마다 '국제 소장품 제안위원회가' 제안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사들여나가며 아시아 최초 컬렉션 "이라고 말했다.

실감 미디어아트 전용관(XR랩)까지

스크린 80개로 구성된 얀 레이의 '레버리 리셋'(Reverie Reset), 2016-2017, 스크린 80개, 컴퓨터 5개, 라우터, 서버, 철 구조물, 케이블[사진 울산시립미술관]

스크린 80개로 구성된 얀 레이의 '레버리 리셋'(Reverie Reset), 2016-2017, 스크린 80개, 컴퓨터 5개, 라우터, 서버, 철 구조물, 케이블[사진 울산시립미술관]

'노래하는 고래, 잠수하는 별'이 열리고 있는 어린이 전시장. [사진 이은주]

'노래하는 고래, 잠수하는 별'이 열리고 있는 어린이 전시장. [사진 이은주]

이 미술관은 3개의 전시실과 함께 국내 공공미술관 최초로 실감 미디어아트 전용관(XR랩)을 갖춘 것도 특징이다. XR랩(Extended Reality Lab)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 최신 디지털 기술의 미디어아트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가리킨다.

또 다른 체험 전시는 어린이를 위한 기획전 '노래하는 고래, 잠수하는 별' (5월 8일까지, 참여작가 추미림·김다움)으로도 이어진다. 규모는 작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시장 안에서 사람과 자연, 기술이 공존하는 도시 ‘울산’을 주제로 아이들이 참여해 작품을 완성하는 전시다. 유치원생인 아들을 데리고 최근 이 전시장을 찾은 30대 주부는 "그동안 미술관이 붐빈다는 소문이 있어 일부러 기다렸다가 이제 왔다. 앞으로 더 자주 오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선했다, 바닷가 옆 미술관 

대왕암공원의 울산교육원(옛 방어진중학교) 건물에서 바라본 바다. 이곳에서 울산시립미술관 소장품 30점을 소개하는 특별전이 열렸다. [사진 이은주]

대왕암공원의 울산교육원(옛 방어진중학교) 건물에서 바라본 바다. 이곳에서 울산시립미술관 소장품 30점을 소개하는 특별전이 열렸다. [사진 이은주]

 하룬 미르자, 사이렌, 2012, 심벌즈, 모터, 목재, 라디오 등, 56x48x35cm [사진 울산시립미술관]

하룬 미르자, 사이렌, 2012, 심벌즈, 모터, 목재, 라디오 등, 56x48x35cm [사진 울산시립미술관]

타지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낸 특별한 전시도 있었다. 울창한 솔숲으로 유명한 대왕암 옆 울산교육연수원(옛 방어진중학교)에서 열린 '소장품전: 찬란한 날들'이다. 대왕암공원의 빼어난 풍광을 바라보며 옛 폐교 건물 안에서 보는 미디어아트 전시가 남다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정필주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사는 "임시로 전시공간으로 썼지만, 주변 풍광 자체가 작품이 된 곳"이라며 "많은 타지 관람객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을 보고 간다는 소감을 남겼다"고 전했다.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장은 "개관을 준비할 때는 기대감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다"며 "막상 열고 보니 시민들이 이런 문화공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호응 자체가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서 관장은 이어 "울산엔 외지에서 유입된 젊은 인구가 많고, 그 어느 도시보다 중산층이 두텁다. 또 첨단 기술·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넓어 실험적 작품에도 열려 있다"며 "앞으로 지속해서 연구하며 미디어아트 중심 미술관의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일부 개관전을 종료한 미술관은 현재 새 전시를 준비 중이다. 오는 28일부터 5월 5일까지 80여 팀의 작가가 선보이는 '부기우기 미술관'을 선보이고, XR랩에서는 울산의 모습을 실감형 디지털 영상으로 제작한 정연두의 오감도(烏瞰圖)를 28일부터 7월 31일까지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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