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 핵실험 풍계리 땅속 불안하다…"지름 80m 빈 공간 가능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의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38노스가 지난 2020년 9월에 공개한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위성 사진. 당시 태풍으로 도로와·다리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최근 북한은 핵실험실을 복구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 핵실험을 재개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연합뉴스[Airbus Defence & Space / 38 North 제공]

미국의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38노스가 지난 2020년 9월에 공개한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위성 사진. 당시 태풍으로 도로와·다리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최근 북한은 핵실험실을 복구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 핵실험을 재개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연합뉴스[Airbus Defence & Space / 38 North 제공]

오는 15일 북한의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핵실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북한은 4년 전인 지난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갱도 폭파 방식으로 폐기했고, 이 과정을 8명의 남측 공동취재단을 비롯한 5개국 취재단에 공개했다. 하지만 북한은 최근 핵실험장의 갱도를 복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듯 미 해군의 핵 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CVN-72·10만t급)가 지난 11일 동해에 진입했다.

올 2~3월에만 지진 6차례 발생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새 건물을 건축하고 기존 건물을 수리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사진은 지난 2월 18일 촬영한 북한 풍계리 핵실함장 일대 위성사진. 뉴스1 [암스컨트롤웡크]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새 건물을 건축하고 기존 건물을 수리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사진은 지난 2월 18일 촬영한 북한 풍계리 핵실함장 일대 위성사진. 뉴스1 [암스컨트롤웡크]

이처럼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풍계리 핵실험장 땅속은 다시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문제는 없을까 하는 데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2월 11일 핵실험장 인근인 길주 북북서 40㎞ 지점에서 규모 3.1의 비교적 강한 지진이 발생했고, 이를 시작으로 3월 4일까지 핵실험장 주변에서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모두 6차례나 발생했다.
지진 자체는 발생 깊이가 17~29㎞인 자연 지진으로 판정이 돼 북한의 갱도 복구나 발파 작업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땅속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길주 지역은 6차 핵실험이 있기 전에는 자연 지진 발생 기록이 없었을 정도로 암반층이 단단했던 곳이었는데, 2017년 9월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지진이 빈발하고 있다.
핵실험 당일 오후 12시 30분 실시한 핵실험으로 규모 5.7의 지진이 발생한 직후인 오후 12시 38분에 규모 4.4의 함몰 지진이 발생했고, 이후 지난달까지 규모 2.0 이상의 자연 지진이 20여 차례 발생했다.

지하 빈 공간 메우는 함몰 지진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이 폭파 방식으로 폐기됐다. 사진은 지휘소와 건설노동자 막사가 폭파되는 모습. [연합뉴스]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이 폭파 방식으로 폐기됐다. 사진은 지휘소와 건설노동자 막사가 폭파되는 모습. [연합뉴스]

국내외 전문가들은  "핵실험장 주변 지층에 상당한 균열이 발생했고, 회복할 수 없는 변형이 생겼을 것"이라는 데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중국과학원 등에서는 위성 화상 등을 분석한 결과, 공동이 붕괴함에 따라 실험장 서쪽에서 남쪽에 걸쳐 9㎢ 범위에서 암반 함몰과 변형이 발생했다고 밝혔고, 일본 연구팀은 핵실험장 아래에 지름 80m의 공동(빈 곳)이 생긴 것으로 추정했다.

초기에는 자연 지진이 깊이 2~3㎞에서 발생했으나 최근에는 함몰이 확산하면서 훨씬 깊은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포스텍 환경공학과 교수를 지낸 이윤수 박사는 "초기 핵실험으로 사방으로 에너지가 전달되고 응력이 쌓이면서 핵실험장 주변 화강암 지대의 지각이 갈라지고 공동이 생겼다"며 "공동을 메우기 위해 함몰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홍태경 교수도 "함몰 지진으로 지층이 무너지면서 또 다른 공동이 새로 생기고, 이 공동을 메우는 과정에서 다시 균열과 공동이 생기는 등 땅속에서 움직임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는 핵실험으로 지층이 어긋난 상태가 됐다가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란 것이다.

폭발 규모 커지면 지하수 오염 가능성

북 핵실험 위력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북 핵실험 위력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문가들은 "계속되는 지진으로 지층이 균열이 간 상태에서 다시 강력한 핵실험 진행할 경우 다시 균열과 함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차 핵실험에서는 규모 5.7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는데, 과거 미국이나 구소련 사례에서 보듯이 완전한 규모의 핵실험이 실시되면 규모 7.0 이상의 인공 지진도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6차 핵실험 당시 인공지진 규모를 기준으로 위력(폭발력)이 50∼70kt(킬로톤·1kt은 TNT 1000톤 위력)인 것으로 분석했다.
인공지진 규모가 0.1이 커지면 위력이 약 1.3배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50kt으로만 봐도 1945년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투하된 원자폭탄 위력(15kt)의 3.3배다.
당시 국내 일부 전문가와 중국·일본 전문가들은 6차 핵실험의 폭발력이 100kt 이상인 것으로 분석했고,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LANL)에서는 250kt까지도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 박사는 "전보다 강력한 핵실험이 실시될 경우 25㎞가량 떨어진 길주~명천 지구대까지 단층이 이어질 수 있고, 이 경우 핵실험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지하수가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퍼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길주~명천 지구대는 길주에서 명천을 거쳐 경성까지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난 좁고 긴 저지대로 길이가 약 100㎞, 폭이 약 20㎞에 이르는 대규모 단층지대다. 길주~명천 지구대 인근에 10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백두산 화산 영향 우려 

백두산 아래 마그마 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백두산 아래 마그마 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방사성 물질이 곧장 대기로 퍼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17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하태경 의원이 '중국에서 핵실험을 한 번 더하면 풍계리는 완전히 무너지고, 엄청난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 주변으로 퍼질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그 가능성은 어떤가'라고 남재철 당시 기상청장에게 질의했다. 이에 남 청장은 "위성자료에 의하면 풍계리 만탑산 밑에 60∼100m의 공동이 있다고 평가되기 때문에 풍계리에서 추가 핵실험이 진행될 경우 붕괴에 따른 방사성 물질의 확산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핵실험으로 화산인 백두산에 영향을 줘 분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홍태경 교수는 "지난 6차 핵실험 당시 충격으로 백두산 아래 마그마 방(chamber)에 버블(공기가 찬 거품)이 생겼을 수도 있는데, 다시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버블이 더 늘어나고 압력이 상승해 백두산 화산 폭발에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윤수 박사는 "백두산 화산 분화에 영향을 주려면 적어도 120 kPa(킬로 파스칼) 정도의 압력이 가해져야 하지만, 지난번 6차 핵실험에서는 50~60 kPa 정도의 압력에 그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핵실험으로 화산 분화를 유발한 사례는 없다"고 다른 견해를 보였다.

지진파·음파·제논으로 핵실험 확인

2017년 9월 3일 서울 신대방동 기상청에서 이미선 지진화산감시센터장이 북한 인공지진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7년 9월 3일 서울 신대방동 기상청에서 이미선 지진화산감시센터장이 북한 인공지진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편,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세 가지 관측을 통해 이를 확인하는 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우선 기상청이 지진계로 지진파를 감지해 인공지진 여부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인공지진 파형은 S파보다 P파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자연지진과 구분이 가능하다. 기상청에서는 일반 지진계 외에도 관측소는 인제·연천·강화 등 휴전선 인근에 지하 100m 깊이의 지진계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기상청은 2017년 6차 핵실험 당일 인공지진 발생 8분여 만에 발생 사실을 언론 등 외부에 공표한 바 있다. 지진은 그해 9월 3일 오후 12시 29분 58초께 발생했고, 기상청이 이 사실을 언론을 통해 발표한 것은 오후 12시 38분에 발표했다.

기상청은 긴급재난문자(CBS)를 통해 일반인에게 통보하는 자연지진과는 달리 인공지진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따로 공개하지는 않는다.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지진관측소(원주 KSRS)가 있다. 이곳은 주변 30∼40㎞ 안에는 26개의 지진 관측소가 원형으로 배치돼 있고, 각각에는 100m 깊이에 지진계가 설치된 배열식 지진관측소다. 지진파의 방향과 전파 속도를 신속하게 계산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폭발 때 대기층으로 퍼져나간 음파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기상청이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에서는 핵폭발에서 발생하는 음파도 감지할 수 있다.

북한의 제6차 핵실험 직후인 2017년 9월 5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동해 상에서 이동식 제논 포집 장치로 포집한 시료를 육군 헬기로 공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의 제6차 핵실험 직후인 2017년 9월 5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동해 상에서 이동식 제논 포집 장치로 포집한 시료를 육군 헬기로 공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마지막으로는 대기 중으로 나온 방사성 물질인 제논(Xenon) 같은 것을 동해 등에서 검출하는 방법이다. 핵실험이 실시되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는 육지와 동해 상에서 방사성 제논(Xe) 검출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 6차 핵실험 당시에는 실험 5일 만에 ㎥당 0.43 밀리 베크렐(0.43 mBq)의 제논이 육상 관측소에서 검출됐다.

원소 번호 54인 제논은 평상시에 공기 중에 미량이 존재하는 불활성 기체로, 동위원소의 원자량은 124∼136으로 다양하다. 이 중 원자량 125, 127, 133, 135인 네 종류의 제논 동위원소는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지 않으므로, 이런 인공 동위원소가 검출되면 핵실험이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