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서인데 돈 받아오는 업무?”…청년의 의심이 ‘피싱’ 막았다

중앙일보

입력

회사원 박모(27)씨는 지난달 15일 친구 A씨와 통화를 하다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A씨의 취업 소식이었다. 그는 “어제부터 법률사무소에서 비서로 일한다. 의뢰인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법률사무소인데 검색하니 ‘통신판매업’ 등록

친구의 취업 성공담을 흐뭇하게 듣던 박씨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A씨가 회사가 아닌 카페에서 일하는 사진을 보내면서였다. 사무실 위치를 묻자 A씨는 “회사가 강남에 있다는데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나는 회사가 아니라 카페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A씨가 다니는 회사 이름을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검색했다. ‘법률사무소’라는 A씨의 설명과 달리 회사는 ‘통신판매업’으로 등록돼 있었다. 서울 강남구에 같은 이름을 가진 법률사무소도 없었다.

보이스피싱 이미지그래픽

보이스피싱 이미지그래픽

채용 과정 역시 수상했다. A씨가 구직·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올린 글을 보고 회사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채용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했다. 회사는 ‘비서’로 채용한 A씨에게 회사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지시는 모두 SNS 메시지로 진행됐다. 업무 내용도 “대기하다가 소송 의뢰인에게 사건 수임료를 받아 오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A씨가 “첫 출근에선 카페에서 계속 대기하다가 집에 왔고, 오늘 처음으로 의뢰인에게 수임료를 받으러 수원에 왔다”고 하자 박씨는 보이스피싱을 떠올렸다. 그리고 A씨에게“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좋겠다”고 알렸다.

수임료 건네주러 온 의뢰인의 정체

출동한 경찰과 수임료를 건네주러 온 의뢰인(?)을 만난 A씨는 깜짝 놀랐다. 박씨의 의심이 맞았다. 의뢰인으로 나온 B씨는 저리 대출 사기에 속은 사람이었다.

대출을 받기 위해 보이스피싱 조직에 은행 계좌 번호를 알려준 B씨는 “대출금이 이중처리돼 970만원이 잘못 입금됐다. 이 돈을 현금으로 찾아서 은행원에게 전달하라”는 요청을 받고 돈뭉치를 들고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B씨의 통장엔 실제로 경상북도에 거주하는 C씨 명의로 970만원이 입금된 상태라 믿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대포통장 판매자나 현금 인출·수거·전달책 모집에 어려움을 겪자 취업준비생이나 다른 대출희망자를 이용해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박씨가 아니었다면 A씨와 B씨는아무것도 모르고 범죄에 연루돼 현금 수거 책과 현금 인출·전달책으로 처벌받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와 B씨를 속인 보이스피싱 일당을 추적하고 있다.

경기 수원서부경찰서는 13일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한 시민 박모씨를 ‘피싱지킴이’로 선정하고, 감사장을 전달했다. 수원서부경찰서

경기 수원서부경찰서는 13일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한 시민 박모씨를 ‘피싱지킴이’로 선정하고, 감사장을 전달했다. 수원서부경찰서

경기 수원서부경찰서는 13일 A씨 등을 도운 박씨를 ‘피싱 지킴이’로 선정해 감사장을 전달했다. 피싱 지킴이는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과 범인 검거에 도움을 준 시민에게 부여하는 명칭으로, 누구나 관심을 가지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하기 위한 경찰의 캠페인이다.

박씨는 “주변에 보이스피싱 피해를 겪은 사람들이 많아서 관심이 많았다”며 “무엇보다 ‘돈을 대신 전달한다’는 것에 강한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상하다고 생각되면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이 보이스피싱을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