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 가 김정은 돈세탁 도운 혐의…美 암호화폐 전문가 징역형

중앙일보

입력

북한에 방문해 암호화폐 기술을 전파한 미국 전문가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돈세탁을 도운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블룸버그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미국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12일(현지시간) 대북제재법인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 암호화폐 전문가 버질 그리피스에게 징역 5년3개월 형을 선고했다. 이 법은 북한 등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국가에 상품과 서비스, 기술 등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리피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컴퓨터과학 분야 박사 학위를 받고, 이더리움을 개발한 재단에서 일했던 암호화폐 전문가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2019년 북한 평양에서 열린 ‘평양 블록체인·암호화폐 회의’에 참석해 강연했다. 미국 국무부는 당시 그리피스가 요청한 북한 여행 허가를 거부했지만 그는 방문을 감행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그리피스가 법을 위반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리피스는 2019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체포됐다.

그리피스가 평양에서 북한의 자산을 암호화폐로 바꾸는 방법을 설명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다. 유죄 판단에는 한 장의 사진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판결문에는 그리피스가 사진 속에서 북한의 제복을 입고 화이트보드 앞에 서 있었다고 묘사됐다. 화이트보드에는 “제재는 없어야 한다. 신난다.(No sanctions yay)”라고 적혀 있었다. 암호화폐 개발자들은 탈중앙화 생태계를 지향하는 만큼 국가의 제재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미 검찰은 “그리피스가 계획적으로 북한에 가 대북 제재 프로그램의 핵심에 타격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미 검찰은 재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로 들며 “우리는 독재자의 변덕 때문에 발생한 전쟁을 목격하고 있다”며 “우리가 사용 중인 핵심 수단인 경제 제재를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범죄”라고 주장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연합뉴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연합뉴스]

그리피스는 최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해 형량을 63개월로 줄일 수 있었다. 그는 선고 전 판사에게 보낸 반성문에서 “나는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겠다”며 “북한이 평화를 위해 암호화폐 기술을 사용하기를 순진하게 기대한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미 법원의 이번 판결은 미국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를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 금융당국 관계자는 암호화폐가 돈세탁과 탈세, 테러자금 조달 등 범죄에 사용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해왔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4일 “암호화폐거래소도 증권거래소처럼 규제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역시 지난 7일 “암호화폐 기술을 뒷받침하는 규제가 없을 경우 각종 사이버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