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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찰 달나라금토끼가 고발한다

약속이 지켜져도 전장연은 또 지하철을 멈출 것이다

중앙일보

입력

달나라금토끼 (필명) 현직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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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집회 현장에 투입되는 경찰 입장에서 보자면 장애인은 대응이 가장 어려운 상대 중 하나다. 장애인을 상대로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트집잡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회에 배치된 경찰관 언행을 문제 삼아 도로 한복판에서 가두시위를 멈추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마다 경찰 지휘관들은 해당 장애인 단체 대표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 제발 일정대로 집회를 진행해달라"고 간청한다. 이러니 장애인 집회에 동원되는 경찰들은 '불필요한 접촉과 대화를 삼가고, 부득이 물리력을 투입할 때도 장애인 안전에 특별히 유의하라'는 지시를 수차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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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마시길. 경찰들은 누가 주최하든지 간에 집회 그 자체에 대해 웬만하면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무슨 집회든 간절함과 억울함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시작하지만 어느 정도 억지스러운 면도 있다는 걸 알아서다. 하지만 수많은 집회를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특정 단체의 어떤 집회는 특별히 부조리한 면이 있다는 걸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집회가 그렇다.

이해할 수 없는 요구 내놓는 전장연

전장연 집회는 인간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성적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요구사항을 늘 내건다. 이들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내세워 정부 지원 범위와 지원 금액을 확대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집회를 연다. 생계·치료·이동권 같은 기본 생활부터 교육·취업 같은 사회 활동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장애인 지원 제도가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구호 이면의 전장연 요구 사항을 찬찬히 뜯어보면 ‘장애인의 인간다움’은 핑계일 따름이고 그저 투쟁을 위한 투쟁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세계장애인의 날'인 지난해 12월 3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에서 ‘기획재정부 규탄 집중투쟁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장애인의 날'인 지난해 12월 3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에서 ‘기획재정부 규탄 집중투쟁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가령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예산 편성 부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늘 전장연의 주된 타깃이다. 장애인을 위한 예산은 단 한 푼도 삭감하지 말고, 장애인단체들이 원하는 대로 예산을 편성해달라고 요구한다. 국가 재정은 항상 우선순위를 두고 필요에 맞게 편성하거나 삭감해야 한다. 그게 기재부의 역할이다. 그런데도 전장연은 ‘장관의 사기’‘기재부 왕국’이라는 거친 표현을 써가며 마치 장애인의 불편한 삶이 전부 기재부 잘못인 양 비난한다.

장애인 이동권 주제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지하철 승강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20년 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약속한 100%라는 숫자에 집착하면서 ‘약속대로 100%를 지키지 못했으니(서울교통공사 기준 96% 달성) 투쟁을 이어간다’는 논리를 편다. 왜 100%가 안 되고 있는지,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계속 노력 중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약속해달라고 요구하고, 약속하면 미흡하다고 시위를 반복한다.

출근길 시위는 틀렸다

지난해 연말부터 계속돼온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은 이런 면에서 과하다고 생각한다. 전장연은 지하철 투쟁 전부터 매년 연례행사처럼 명절마다 버스터미널, 역 같은 대규모 대중교통 시설에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와 행진을 개최해왔다. 물론 이런 집회가 아니었다면 나를 포함한 대다수 시민이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기에 얼마든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소한 경찰 발언을 트집 잡아 행진 행렬이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수백 대의 차가 멈춰선 번화한 교차로에서 경찰의 사과를 요구하는 태도까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응하는 경찰 입장에서 불쾌하다는 투정이 아니라 시민 눈높이에서도 그런 행동은 장애인 문제를 호소하는 방법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장연 회원들이 11일 서울 경복궁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삭발 시위를 했다. 오유진 기자

전장연 회원들이 11일 서울 경복궁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삭발 시위를 했다. 오유진 기자

최근의 지하철역 집회 방식을 한번 돌아보자. 이 집회가 정말 승강기 설치를 촉구하기 위한 것인가. 그보다는 일분일초가 아까운 출근길 시민에게 최대한 불편을 끼쳐 사회적 소란을 일으키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승강기가 없어 지하철을 제대로 못 타는 현실과 승강장과 객차 사이 스크린 도어에 휠체어 바퀴를 끼워 넣어 열차를 멈추는 게 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전장연이 요구하는 지원 확대를 우선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재부의 굴복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동의와 지지다. 전장연이 시민을 설득과 동행의 대상으로 보았다면 출근 시간마다 지하철이 행여 멈추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안고 지하철역을 오가도록 하는 대신 시민 생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배려하지 않았을까. 집회 시간대를 바꾼다든지, 특정 요일에만 반복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피할 수 있는 대중적 인식을 높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 제기를 혐오로 낙인찍어서야

마지막으로, 무분별한 혐오 프레임 들이대기를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전장연 집회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를 장애인 전체에 대한 비하나 공격으로 간주하는 건 이들 단체 스스로 절대로 취하면 안 될 모순적 태도다. 집회는 적법하게 정해진 절차로도 구제받지 못한 사람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른 해결책을 찾도록 돕는 걸 목적으로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과 관용 없이는 집회시위의 권리 역시 존재하는 게 불가능하다.

물론 집회 참가자들의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을 이해한다. 또 집회란 아무리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다 해도 다수의 사람이 모이면 불편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알기에 경찰은 집회시위 현장의 불법에 대해선 평소보다 처벌의 문턱을 낮춰 대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지하철 탑승 집회를 하는 장애인들을 형사처벌하는 법 집행은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는 의미다. 경찰이 지나가는 시민들로부터 ‘왜 저런 사람들의 불법을 방치하느냐’라는 항의를 수도 없이 들어가면서도 그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 수준에서만 현장 대응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보장 시위를 두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라고 지적한 뮤지컬 배우 겸 가수 이하린은 장애인 혐오라는 비판에 자필 사과문을 SNS에 올렸다. [이하린 인스타그램 캡처]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보장 시위를 두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라고 지적한 뮤지컬 배우 겸 가수 이하린은 장애인 혐오라는 비판에 자필 사과문을 SNS에 올렸다. [이하린 인스타그램 캡처]

경찰과 시민, 아니 우리 사회 전체는 이런 배려와 인내를 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이 자신들을 향한 조금의 비판과 문제 제기도 참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SNS에 올린 사진 한장, 긴 글 속에서 사용한 단어 하나를 빌미로 선량한 시민을 ‘장애인 혐오’로 낙인 찍으며 아직도 이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멸시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식으로 훈계하듯 말하고 있다. 경찰 발언 하나를 문제 삼아 교차로 한복판에서 행진을 멈추고 경찰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장애인 단체와 이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과연 장애인들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 보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사회 전체를 설득하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지금껏 수많은 논란이 그랬듯이 이번 전장연 집회도 어떤 식으로든 지나갈 거다. 전장연의 비현실적인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는 대신 ‘노력’‘관심’ 등 모호한 표현을 동반한 ‘약속’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장애인 지원이 조금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 명절, 다음 장애인의 날, 다음 예산 철이 되면 전장연은 어김없이‘약속’을 거론하며 다른 방식으로 집회를 계속할 거다. 그리고 경찰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장애인 집회에 나갈 때는 '언행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지침을 받아들고 모욕적 언행을 참아가며 근무할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우리 사회는 무엇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인내하고 있나? 전장연은 많은 사람의 불편과 인내를 대가로 장애인의 권리와 지위가 향상된다고 했는데, 어쩐지 다음 집회에서 전장연이 내세우는 구호도 지금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김예지가 고발한다]"전장연에 무릎 꿇었다고? 장애인과 시민에 사과한 것"

장애인 시위에 대응하는 경찰 입장을 담은 현직 경찰 달나라금토끼(필명)의 글과 함께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의 글도 소개합니다.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 출신의 김 의원은 시위 방식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