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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처럼 졸졸…130년 전 소설 속 ‘로봇캐디’ 현실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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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골퍼와 1.5m 간격을 두고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는 로봇 캐디. 미래엔 스윙·공략법 조언, 골 추적 기능까지 추가될 전망이다. 성호준 기자

골퍼와 1.5m 간격을 두고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는 로봇 캐디. 미래엔 스윙·공략법 조언, 골 추적 기능까지 추가될 전망이다. 성호준 기자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개막전 롯데 렌터카 여자오픈이 열린 지난 10일 롯데스카이힐 제주 골프클럽. 이 골프장 챌린지 코스에서는 ‘로봇 캐디’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름과는 달리, 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생긴 건 아니다. 손으로 끄는 풀카트 형태로, 추적 장치를 단 자율 주행차와 비슷하다. 이 로봇 캐디는 1.5m 간격을 두고 골퍼를 마치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샷을 할 때는 정지해 있다가 트래킹 단추를 누르면 다시 구동한다. 로봇 ‘캐디’지만 로봇 ‘카트’라 해도 무방하다.

근처의 동체를 쫓아가는 원리로 로봇 캐디가 다른 로봇 캐디를 쫓아가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여러 로봇 캐디를 기차처럼 끌고 다닐 수도 있다. 로봇 캐디에는 또 태블릿 컴퓨터가 달려 있어 코스 정보는 물론 남은 거리와 앞 팀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롯데스카이힐 제주의 김현령 총지배인은 “요즘은 캐디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 캐디를 원치 않는 골퍼도 꽤 많다. 골퍼의 선택지를 넓히는 차원에서 지난해 말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 골프장은 로봇 캐디 8대를 보유하고 있다. 9홀인 경주의 코오롱 가든 골프장은 로봇 캐디만 운영한다. 대여료는 대당 3만 원이다. 골프장 측은 “골퍼들이 주로 2~3인 플레이를 할 때 많이 이용한다. 로봇 캐디를 쓰면 전동 카트 사용료와 캐디피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저렴하다”고 말했다.

로봇 캐디와 함께 라운드하려면 전동 카트를 타지 않고 걸어야 한다. 걸으면서 경치를 음미하고 동반자와 여유 있게 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산악 코스라 해도 로봇과 9홀 정도 라운드하면 운동으로도 괜찮을 듯하다. 로봇 캐디는 골퍼를 졸졸 따라다니기 때문에 골프 클럽을 가지러 카트까지 왔다 갔다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다고 골프장 측은 설명했다.

로봇 캐디 아이디어는 이미 130년 전에 나왔다. 1892년 런던에서 발간된 잭 맥컬러프의 소설 『2000년의 골프』에서다. 소설에서 골프를 좋아하는 스코틀랜드인 알렉산더 깁슨은 라운드를 마친 뒤 술 한 잔 걸치고 잠이 든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2000년 5월 21일이었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소설 속 2000년에는 여자가 정치를 맡고, 남자는 골프를 즐긴다. 국가 간의 중요한 사건을 골프 승패로 결정했다. 라운드할 때는 캐디백을 실은 자동 운반기계가 골퍼를 따라다닌다. 딱 지금의 로봇 캐디다. 소설 속에선 골퍼의 허리띠에 달린 전자장비가 기계를 유도한다. 108년간 잠들어 있던 주인공은 “사람 캐디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로봇 캐디와는 말을 할 수 없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전자 캐디’는 20세기 말 미국에서 나왔다. 고장과 여러 문제점 등으로 한동안 사라졌다가 최근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김현령 총지배인은 “불편한 부분이 아직 조금 남아 있다. 적재함이 작고, 카트길 경계 턱을 넘을 때 멈춰설 때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매우 편하고 실용적이다. 로봇 캐디에 대한 불평이나 문제 제기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로봇 캐디는 앞으로 점점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AI 기술을 장착하면 로봇 캐디가 스윙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건 물론 코스 공략법도 가르쳐 줄 수 있다. 공 추적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로봇 캐디와 대화도 가능할 듯하다. 이 골프장 박상훈 운영팀장은 “캐디가 할 일은 정말 많다. 현직 캐디들은 로봇 캐디를 경쟁자가 아니라 도와주는 역할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봇 캐디가 더 발전하고 대중화되면 사람 캐디를 대체할 수도 있다. 김현령 총지배인은 “앞으로 인건비 상승과 맞물려 캐디피는 점점 오를 것을 보인다. 캐디피가 오르는 대신 캐디는 전문성을 갖추고 서비스 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 캐디

최대 적재 50㎏ 카트 무게 30㎏
운행거리 20~25㎞ 최대 속도 11㎞/h
주요 기능 남은 거리 측정(태블릿PC)
앞 팀 위치 및 코스 정보 파악
사용료 대당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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