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 ‘젤렌스키 연설’에 구멍 숭숭 뚫린 국회 행사장…대한민국은 부끄러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 11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화상 연설을 하는 볼로디미르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난 11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화상 연설을 하는 볼로디미르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1일 화상 연설을 한 국회에서 드러난 한국 정치권의 태도는 부끄러움 그 자체였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은 국회 본회의장도, 의원회관도 아닌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국회 관계자는 본회의장 대형 스크린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화상 연설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과정에서 불안정한 상황이 생길 우려가 있었다며 네트워크 문제를 들었다. 하지만 5G 네트워크 기술을 선도하는 한국에서 통신 문제로 실시간 영상 송출이 어렵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었다.

게다가 대다수의 국회의원은 이번 화상 연설에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의원은 50여명. 나머지 240여명의 의원은 국회도서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가 러시아에 맞설 수 있게 대한민국이 도와달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호소에 귀를 닫았다. 이날 화상 연설을 성사시킨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광재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여야 3당 지도부가 모여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협력 의지를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의원들은 대부분 각자 의원실에서 실시간으로 화상 연설을 청취했다”고 설명했다.

의원실이 위치한 의원회관과 화상 연설이 열린 국회도서관은 걸어서 3분 거리다. ‘3분 만큼의 성의’도 없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일본 중의원 제1의원회관에서 화상 연설하는 젤렌스키 대통령. [AP=연합뉴스]

사진은 지난달 23일 일본 중의원 제1의원회관에서 화상 연설하는 젤렌스키 대통령. [AP=연합뉴스]

관련기사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에 열렬히 환호했던 다른 나라 의회와 비교하면 대비는 더 극명하다. 지난달 23일 일본 의회 화상 연설 현장엔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비롯해 500여명의 중·참의원이 참석했다. 연설이 중계된 중의원 제1의원회관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기립박수도 터져 나왔다. 그에 앞선 유럽연합(EU)·영국·폴란드·캐나다·미국·독일·프랑스 의회 화상 연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의원들은 한마음으로 현장에 모여들어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지했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은 한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무관심하다는 선전선동 소재로까지 활용됐다. 아르툠 루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 교수는 12일 트위터에 국회도서관 좌석 상당수가 비어있는 사진을 올리고 “아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관심이 없다는 또 다른 증거”라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회를 향해 “한국은 1950년대에 한국전쟁을 겪고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이겨냈다”며 한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한국 국방부는 군사적 지원에 선을 그었고, 국회는 동병상련의 마음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무관심하다는 오명을 써도 반박할 수 있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