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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석 거여의 정권말 폭주…4월 '검수완박' 당론으로 못박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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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석의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4월 임시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강행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기 전에 국회 의결과 법안 공포 절차를 마무리해 ‘검수완박’을 제도적으로 못 박겠다는 의도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법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기로 하면서,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윤 당선인측은 “국회를 장악한 여당의 정권말 폭주”라고 격렬히 반발하지만 민주당은 아랑곳 않는 분위기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민주당은 이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국회 본청 예결위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검수완박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현재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 한해 남아있는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에서 삭제하는 게 골자다. 검찰 수사권을 경찰로 대부분 이관하게 되면, 검찰은 경찰 내부 비리 등 극히 일부 사건을 제외하곤 직접 수사가 불가능해진다. 민주당은 이같은 내용의 법안을 4월 중 입법 완료하되, 시행 시점은 3개월 이상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민주당은 또 장기적으로 국가 수사 기능을 전담하는 ‘한국형 FBI’ 같은 별도 수사기구를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수사 기구의 조직적인 개편을 모색할 것”이라며 “한국형 FBI를 설립해 전담 수사를 할 수 있게 하고, 외사 사건과 마약 수사 등 분야별로 수사기구를 분리·독립하는 방안도 추진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1년 멈췄던 ‘검수완박’, 대선 패배 후 급발진

검수완박 법안은 2020년 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당선인(당시 검찰총장)의 ‘추·윤 갈등’이 본격화되던 시기 김용민·황운하 의원 등 ‘처럼회’ 의원들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면서 논의는 사그라들었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대선 공약엔 “수사·기소권 분리, 수사기관 전문성 확보”라는 내용이 포함됐으나, 캠프 내부에서도 당장의 입법 사안보다는 장기적인 과제로 논의됐다.

지난해 8월 기자회견에 앞서 기자회견문을 검토하는 '처럼회' 회원들. 이들은 대선 이후 민주당 내 검수완박 논의에 다시 불을 지펴 당론 채택까지 이끌었다. 왼쪽부터 김용민, 윤영덕, 황운하, 최강욱, 민형배 의원. 연합뉴스

지난해 8월 기자회견에 앞서 기자회견문을 검토하는 '처럼회' 회원들. 이들은 대선 이후 민주당 내 검수완박 논의에 다시 불을 지펴 당론 채택까지 이끌었다. 왼쪽부터 김용민, 윤영덕, 황운하, 최강욱, 민형배 의원. 연합뉴스

1년간 중단됐던 검수완박 논의에 다시 불을 지핀 건 대선 과정에서 합당한 열린민주당 출신 최강욱·김의겸 의원과 ‘처럼회’ 소속 강경파 의원들이었다. 최 의원은 지난달 24일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후보자로 선정된 후 정견발표를 통해 “검찰개혁과 언론개혁과 관련된 여러 법안이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그것을 이루어내는 것이 민주당의 책무이고 과제”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1차 투표에선 최 의원을 후보로 올린 뒤, 이후 원내대표 경선때 박홍근 의원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당선시키기도 했다.

강성 권리당원들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던 의원들을 각개격파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검찰개혁 반대 의원’ 명단을 만들고, 문자 폭탄을 보내거나 사무실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압박했다. 계속되는 압박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개혁에 동의한다”고 적은 의원들도 여럿 나왔다. 강성 당원들은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개혁을 위한 촛불집회’를 개최하고, 노숙농성을 벌이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들의 집회·농성에는 김용민·안민석·이수진(동작을) 등 강성 의원들이 참여해 지지를 표명했다.

마지막까지 유지되던 당내 균형추는 지난 8일 대검찰청 입장문 등 검찰 내부 반발이 가시화되면서 결국 무너졌다. 지난 6일 민주당 법조인 출신 의원 간담회 때만 해도 “검수완박은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8일 열린 중진 의원 간담회에선 “검찰이 저렇게 집단 정치 행위를 하면 우리로서는 입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의원은 “강성 당원들의 요구가 검수완박 추진 동략의 40%라면, 나머지 60%는 검찰이 스스로 만들어줬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내 기류가 변하자 지도부의 표현도 한층 격해졌다.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은 전날 “비위 수사를 막기 위해서 검찰개혁을 한다고 비아냥거리지 말라”며 검찰을 직격한 데 이어,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선  “5월 3일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공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검찰을 향해 전면전 선포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친명 핵심’은 신중론…“일단 하자” 강경론이 압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책의원총회가 끝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책의원총회가 끝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일부 참석자들은 거듭 “신중하게 처리하자”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기도 어렵지만, 통과된다고 해도 지방선거에 지고 신뢰를 잃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며 “검찰개혁은 분명히 해야 하지만, 방법과 시기는 충분히 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비공개 토론에선 ‘친이재명계’ 김영진·김병욱 의원과 ‘소신파’ 박용진 의원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찰개혁을 어젠다로 삼으면 역풍을 맞는다”는 취지로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이같은 신중론을 압도한 것은 검찰에 대한 골 깊은 불신과 격한 감정이었다. 설훈 의원은 이날 “지난 금요일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검찰이 국회 위에 있다’는 걸 몸소 느꼈다”며 “그래서 검찰 개혁을 해야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이학영 의원은 “옛날에 국정원에 불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이제는 국정원이나 군부가 아닌 검찰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이 두려움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발언에는 가장 많은 박수갈채가 뒤따랐다고 한다.

“수사권이 죄다 경찰로 넘어가면 경찰 권력이 비대해진다”는 우려도 일부 제기됐지만, 다수 의원들은 “일단 하자”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처럼회’ 소속 민형배 의원은 “악마가 디테일에 있다고 그 디테일까지 다 따지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며 “일단 (검수완박법 처리를) 하고 나중에 더 하면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당론으로 채택한 검수완박 법안을 두고 일단 국민의힘과 협상을 벌이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엔 강행처리를 추진하겠다는 뜻도 명확히 했다.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사법제도 개혁 태스크포스(TF)를 만들자고 하는 제안도 했으니 잘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면서 “그게 잘 안 되면 우리 단독법안을 내 그때도 필요하면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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