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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윤석열의 진정한 전선 ‘시장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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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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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에서 이런 의문을 드러낸 적이 있다. “왜 실업이거나 재산이 적고 생계가 어려울수록 돈을 빌릴 때 훨씬 더 높은 이자를 내야 하느냐.” 평등과 약자에의 동정이 강한 진보적 입장에선 불편한 현실이겠다. 성경의 시대라면 매정한 고리대금으로도 느껴졌을 터다. 그러나 신용도가 떨어져 원금 회수 위험이 커질수록 손실 헤지를 위한 금리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건 시장경제다.

# 1998년 3월. 한덕수(현 총리 내정자) 통상교섭본부장이 필자가 일하던 외교부 기자실에 인사차 나타났다. 앉자마자 국산 우유에 쌀밥 말아먹는 이벤트를 펼치던 김성훈 농림장관을 성토했다. “시대를 거꾸로 가는 발상”이란 얘기였다. 우리 쌀 지키기 위원장인 쇄국의 전사에게 가한 용감무쌍한 비판이 무척 신기했었다. 그는 자기 관용차를 스웨덴제 사브로 바꿔 개방을 표징했다.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출신인 그의 지론이다. “개방·경쟁의 자유무역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지 않으면 3류 국가가 되고 만다. 지금 시작하지 못하면 영원히 이룰 수 없다.” 모든 것의 평등에만 방점을 찍던 지난 5년간. 우리 사회는 성장·도약하려는 생기와 박동 등 자본주의 고유의 활력을 서서히 잃어 왔다. “불공정 해소” 명분의 편가르기 구도가 인간 본연의 모든 욕구를 죄악시했다. 그 출발점은 부(富)와 이윤 추구, 대기업과 부동산에 대한 증오였다.

지난 5년 자본주의의 활력 사라져
대처 존경한다는 당선인 말대로
기업·민간에 일자리 주역 맡기고
전방위의 시장경제 부활을 고대

진보 정권의 이런 집착의 뿌리부터 영향을 미친 이는 노무현 청와대의 이정우(경북대 명예교수) 정책기획위원장이었다. 한 총리 내정자와 서울대 경제학과, 하버드대 박사 동문이다. 한 뿌리, 전혀 다른 꽃이다. 그의 생각. “재벌의 부는 정경유착으로 단기간에 손쉽게 정당하지 못한 수단까지 동원한 부분이 적지 않다. 정당했다고 국민은 인정하지 않는다. 부가 축적되면 돈이 돈을 버는 불로소득 집단이 나타난다. 특히 부동산 투기는 집값, 땅값을 터무니없이 올려 가진 자에게 더 보태준다. 하지만 결국 못 가진 자의 희생 위에서 가능한 제로섬 게임이다. 순수한 사회악이다.” (『불평등의 경제학』) 부분적으론 부인 못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결론이 선악(善惡)의 이분법이었다.

진보 정권의 좌향 선택은 징벌적 중과세의 부동산 때려잡기와 각종 대기업 징벌법, ‘타다금지법’ 같은 규제의 양산, 기업가 정신의 위축이었다. 가진 자에게 거둔 재정을 못 가진 자에게 퍼주는 게 로빈 후드식 정의였다. 2196조원으로 치솟은 국가부채 중 5년간 763조원이 늘었다. 민주주의와 함께 ‘가장 덜 나쁜 제도’로 역사의 검증을 받은 시장경제를 대체하는 위험천만한 실험들이었다. 자본주의 괴물을 때려잡자는 그 정권은 실상 더욱 거대한 괴물이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대처 전 영국 총리. 자본주의 고향이지만 돈 버는 걸 점잖지 못하게 여기던 그곳에서 외친 대처의 소신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좋은 의도만 있었다면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돈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강도당해 죽게 된 이를 보살펴 달라며 주막에 데나리온 둘(이틀치 일당)을 내어준 ‘선한 사마리아인’(누가복음) 얘기다.

대처의 논리는 명확하다. “효과적 자본주의엔 사유재산과 친기업 문화가 필수다. 의욕을 고취할 조세제도가 있어야 하고, 규제는 최소한이어야 한다. 정부는 이익을 창출할 기업가의 활동에 최대한의 자유를 줘야 한다.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 기업이 경쟁력을 갖게 해야 새 산업과 일자리를 만든다. 민간이 가장 생산적이다. 이 길밖엔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대처 스타일』 등 참조) 대처의 별칭은  TINA였다.

그 방식은 숱한 논란을 낳았다. 1990년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부작용, 금융자본의 탐욕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였다.  “자신들이 부자가 되려고 자유시장 정책을 가난한 이들에게 강권해 더 어렵게 만드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이란 논란이다. 하지만 지도자 대처의 진정한 교훈은 강단 있고 꿋꿋했던 신념과 일관성이었다. 5년 대통령이 지지도나 코앞 선거의 표에만 천착할 경우 숱한 반(反)시장과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져든다. 거야(巨野)의 몽니도 거셀 터다. 그러나 정치는 선택이다. 결단이다. 성실과 창의로 부를 쌓는 노력이 존중받고, 모두가 성장할 사회. 세계 10대 자본주의 강국엔 유일한 방향이다.

건전한 재정 내의 약자에 대한 복지 안전망, 거래와 기회의 공정을 최대한 지켜 주는 건 현대 정부의 최소한의 책무다. 그 나머지는 모두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맡겨 달라. 잘 보이지 않는 정부, 최상의 정부다. 기업 주도의 신산업·일자리 창출, 규제 철폐, 노동·고용의 유연성, 공급에 의한 부동산 해결, 소시민의 주식 투자 활성화로 중산층 시민을 늘려 가라. ‘대통령 윤석열’의 진정한 전선(戰線)은 확고한 시장경제다. 비바람이 몰아쳐 굴복과 우회의 달콤한 속삭임도 들릴 터다. 하지만 갈 길은 하나다. 심판은 늘 현명했던 시민과 역사의 몫일 터다. ‘TINA 윤석열’과 ‘선봉장 한덕수’의 시장경제 분투를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