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정치권이 인사 개입하면 군의 단합 깨뜨려

중앙일보

입력 2022.04.1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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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선진 강군 육성은 통수권자의 책무

최윤희 전 합참의장

최윤희 전 합참의장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2월 2일 만장일치로 대한민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조선 능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류로 지칭되는 문화는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다. 기뻐하고 자랑할 일이다.

그러나 선진국이 되면 국가 안위는 저절로 지켜지는 것일까? 역사는 패권 국가의 부침을 통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됐으나 아직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며 언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지 모른다. 2019년 기준 남북한 경제력은 54배의 차이가 났다. 그런 북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핵무기에 이어 탄도탄, 핵잠수함, 극초음속 미사일 등 끊임없이 새로운 무기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하나같이 우리의 독자적인 능력으로 대응이 곤란한 첨단 전략무기다.

정치 바람에 흔들리는 군 인사, 서로 반목하며 단합 깨져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세우려면 수뇌부 인사권 보장해야
표심에 영합하는 안보 포퓰리즘은 국방 근간 무너뜨려
군인의 존재 이유는 상무정신 … 군 경시 풍조 바로잡아야

막강한 한·미 동맹의 능력으로도 벅찬 위협이다. 북한 핵무기는 한순간에 우리를 궤멸시킬 수 있다. 그런 북한을 문재인 정부는 적으로 보지 않는다. 장병들의 대적관 확립을 위한 정신교육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한다. 적아(敵我)를 구분 못 하는 장병들의 경계 태세가 무너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애꿎은 초병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세계 패권 전략은 주변국에 심대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인접한 대한민국을 노골적으로 압박한다. 미국을 비롯한 우방들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하나로 뭉쳤으나 우리는 홀로 선처를 바라고 있다. 힘의 논리로 작동하는 국제 정치에 자비란 없다. 오직 힘으로 국가 정책을 뒷받침할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피땀 흘려 이룩한 선진 대한민국을 지킬 선진 강군 육성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말로만 평화’ 안보 포퓰리즘 폐단

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평시 적정 국방비 규모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전쟁이 없다면 그 돈은 그냥 낭비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명언이 있다. 기록으로 남겨진 3617년 역사 중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268년뿐이었다.

이제 북한은 언제고 대한민국을 초토화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남의 일인 양 말로만 평화를 외친다. 강력한 국방력 구축보다 국민 복지 향상에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으려 한다. 대선 기간 중 후보들은 수백조원에 달하는 돈을 복지 향상에 쏟겠다고 공약하였다. 국민 복지도 중요하나 제한된 재원을 놓고 우선순위가 있다. 나라가 있고 복지가 있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면 국민 복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러한 행태는 결국 국민의 안보 불감증을 불러왔다. 북한의 가공할 핵·미사일 위협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 것이다. 차기 정부는 국방비를 획기적으로 늘려 필요한 전력을 증강하고 한·미 동맹을 공고히 다져야 한다.

의무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되며 일선 지휘관들이 전전긍긍한다. 장병들의 전투 기량은 떨어지고 양성 교육훈련 소요가 대폭 늘어났다. 열심히 양성하여 활용할 만하면 전역한다. 설상가상으로 출산율이 떨어지며 병력 자원도 대폭 감소했다. 현 복무 기간을 유지하면 50만 상비 병력 유지도 어렵다고 한다. 이는 장교 충원의 문제도 야기했다. 복무 기간이 긴 장교가 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안보 포퓰리즘은 국방 태세의 근간을 흔드는 해악이다. 즉각 중단돼야 한다. 어느 선진국도 정치적 목적으로 안보 포퓰리즘을 이용하지 않는다.

소신 있는 군인들은 어디로 갔나

군인에게 진급과 보직은 대단히 중요한 명예이며 가치이다. 그래서 군의 인사권은 공명정대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군의 단합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군 수뇌부는 이를 위해 그동안 온갖 유혹과 압박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를 전횡하며 군의 위계질서가 무너졌다. 오로지 직속 상관에게 충성해야 할 군인들이 엉뚱한 곳에 눈길을 돌린다.

그런가 하면 부당한 인사로 인해 서로 반목하며 군의 단합을 깨뜨리고 있다. 실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들이 요즘 장군들은 왜 그렇게 소신이 없느냐고 질책한다. 정치권이 군인들을 그렇게 길들였기 때문이다. 길들여진 군인들은 소신 있는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한다. 군의 단합과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확립을 위해 군 수뇌부의 인사권은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의 임기는 군 인사법상 2년이다. 국가 비상사태 시 연장이 가능하나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이는 3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하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짧다. 미국은 4년, 영국은 임기 없이 3년 내외다. 문제는 그 짧은 임기마저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데 있다. 지난 10여년간 군 수뇌부의 평균 보직 기간은 1년 6개월이었다. 합참의장은 1년 8개월, 육군총장은 1년 5개월, 해군총장은 1년 8개월, 공군총장은 1년 6개월에 그쳤다.

그러다 보니 취임 후 1년이 지나면 공공연하게 조기 교체설이 나돈다. 추상같아야 할 군의 지휘 체계가 흔들리는 것이다. 수많은 부하를 지휘하는 군에서는 엄정한 기강에도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난다. 엄격한 가정 교육과 학교 훈육이 사라지며 그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그럴 때마다 수뇌부를 해임하면 남아 날 사람이 없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물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 평생 젊음을 바쳐 나라를 지키고 명예롭게 군문을 나서도록 해 주어야 한다. 군 수뇌부의 임기를 연장하고 보장해야 한다.

장성급 전투부대장 1년마다 교체

우리나라 장성급 전투부대장의 보직 기간은 대개 1년 내외이다. 반면 우리와 연합 작전을 하는 미군 부대장은 3년 이상 복무한다. 그러다 보니 복무 기간에 3명의 한국군 부대장과 업무 협조를 한다. 기이한 현상이다. 장성급 부대의 지휘관을 매년 바꿔가며 전비 태세를 향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새로운 부대의 현황 파악을 하는 데만도 최소 3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주요 전투부대장의 보직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첨단 무기로 컴퓨터 게임 하듯 전쟁을 하나 전투 현장에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상황을 맞는다. 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이를 입증했다. 군의 교육훈련은 이런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시행돼야 한다. 아무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도 군의 교육훈련이 변할 수 없는 이유이다. 강인한 교육훈련을 하며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평소 훈련에서 흘리는 땀과 눈물이 전장에서 흘릴 피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요즘 군 PX에서 최고 인기 상품은 장병들 피부 관리용품이라고 한다. 틈만 나면 피부를 관리하고 얼굴이 타는 야외 훈련을 싫어한다. 그런 교육훈련을 받은 장병들이 과연 전장의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각 있는 부모라면 강인한 교육훈련을 고마워해야 한다. 하루빨리 정신교육을 포함한 실전적인 교육훈련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이번에 북한의 치명적인 위협에 실효적인 대응이 가능토록 이번에 한·미 연합훈련을 복원해야 한다. 굳건한 한·미 동맹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국부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험이다.

군인 예우하는 미국 대통령

우리 역사 속에는 국민의 상무정신이 면면히 흐른다. 신라의 화랑도 정신은 삼국 통일의 근간이었고 임진왜란 때 의병, 일제강점기 독립군, 6·25전쟁 때 학도병은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 상무정신은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한 발판이기도 하다. 국민 성원과 지지가 없는 군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군 경시 풍조가 만연하며 국민의 상무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거기에 윤택해진 국민의 삶 또한 군인의 길을 힘들게 한다. 열악한 군인 가족의 삶과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잦은 이사와 자녀들의 전학, 휴일도 없이 일한다. 그나마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준 것은 국가를 위해 헌신 봉사한다는 명예심이었다. 국가는 군인의 명예를 지켜줘야 한다. 상무정신의 고양은 국가의 책무이다. 전사자들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 그중에서도 국가 안보와 직결된 선진 강군의 실현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선진 강군 육성은 군 통수권자의 결단에 의해 가능하다. 새 정부가 선진 한국에 맞는 강군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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