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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국민 공감도 정당성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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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를 두고 여당과 검찰이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 대한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없애는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4월 안에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전국 18개 지방검찰청 검사장들은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모여 일곱 시간 마라톤 회의 끝에 반대 의견을 냈다.

전국 검사장 회의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김오수 검찰총장 주재로 열렸다. 전국 검사장들이 모두 모여 총의를 모은 건 2020년 7월 3일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현 대통령 당선인) 검찰총장에 대한 채널A 사건 지휘권을 배제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데 대해 재고 요청 의견을 모은 뒤 처음이다.

검사장들은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을 성급히 추진하지 말고 국회에서 특위를 구성해 각계 전문가와 국민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의견을 도출했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모두발언에서부터 “검찰 수사 기능이 폐지된다면 검찰총장인 저로서는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친 만큼 사실상 예견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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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장들은 회의 직후 최선임인 김후곤(57·사법연수원 25기) 대구지검장의 브리핑을 통해 “일선 청을 지휘하는 지검장들은 2021년 1월 형사사법제도 개편 이후 범죄를 발견하고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고, 진실 규명과 사건 처리의 지연으로 국민들께서 혼란과 불편을 겪는 등 문제점들을 절감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점조차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와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않고 충분한 논의나 구체적 대안도 없이 검찰의 수사 기능을 폐지하는 법안이 성급히 추진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께 돌아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검사장 회의 외에도 최근 검찰에선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8일 대검이 “정치권의 검찰 수사 기능 전면 폐지 법안 추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낸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이 세 시간여의 회의 끝에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는 검찰 수사 기능 전면 폐지 법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날 김오수 총장과 전국 검사장들까지 분명한 반대 입장을 내면서 사실상 검찰 조직 전체가 민주당과 전면전을 벌이는 양상이 됐다.

민주당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검찰공화국 만들기에 검찰이 행동대장을 자임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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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대응을 논의하는 전국지검장회의가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 지검장 18명과 김오수 검찰총장, 박성진 대검 차장, 예세민 기조부장이 참석했다. [뉴시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대응을 논의하는 전국지검장회의가 1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 지검장 18명과 김오수 검찰총장, 박성진 대검 차장, 예세민 기조부장이 참석했다. [뉴시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김오수 검찰총장이 검수완박에 반대한 데 대해 “공무원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도 매우 부적절한데 조직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오히려 이들을 부채질하고 있으니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을 그 대상인 국가기관이 거부하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본분을 망각한 검찰을 정상화하기 위해 수사권 분리 입법 논의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2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고 검수완박 법안의 당론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당초 강온 양론의 충돌이 예상됐지만, 강경론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강경파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은 라디오에서 “개혁은 속도가 굉장히 중요하다. (김영삼 정부에서) 하나회를 청산한 것이나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던 것도 전광석화처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지금이 검수완박할 때냐”(중진 의원)며 강경파와 경합하던 당내 온건론자들의 목소리는 이날 찾아보기 어려웠다. 변호사 출신인 초선 이소영 의원(비대위원)이 비대위 회의에서 “검찰 개혁의 명분과 내용이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국민들이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일 때에만 실제 사회 변화와 제도 안착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게 이날 나온 ‘신중론’의 전부였다.

김오수

김오수

양측 갈등이 일촉즉발로 흐르면서 검찰을 포함해 법조계도 들끓었다. 서울중앙지검·대전지검·청주지검·제주지검 등의 소속 간부 및 평검사들이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e-PROS)’를 통해 ‘검수완박’ 반대 성명을 냈다. 주유엔대표부 법무협력관을 지낸 황우진(47·32기) 대구서부지청 형사1부장은 검찰 수사권을 폐지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민주당의 주장과 관련해 “유엔에서 전 세계 외교관들과 국제형사시스템 구축을 논의하면서 한 번도 국제사법기구에서 검사의 수사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을 ‘K사법제도’에 빗댔다.

변호사 단체에도 반응이 잇따랐다. “정권비리, 권력비리를 수사하지 못하게 막는 이른바 ‘검수완박’은 검찰 개혁이 아니라 국민을 속이는 사기극”(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검찰 수사권 폐지는 공소권도 불구로 만들어 국가의 범죄 처단 기능을 크게 손상시킬 것”(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이란 비판이 다수였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이 반(反)민주당 전선을 형성하는 분위기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최고위 회의에서 “(검수완박에는) 문재인 정권의 실세들에 대한 수사 방해 의도와 대선 패배 결과에 대한 불복이 담겨 있다”고 비판했다.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검수완박’은 ‘이재명 비리 방탄법’”이라며 “민심과 맞서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입법 강행에 나설 경우 본회의에서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등 물리적 저지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도 “검수완박의 시기, 방식, 내용도 모두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여 대표는 이날 “검찰 개혁을 둘러싼 논란과 진영 대결로 인해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대통령을 맞이하게 된 정황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여 대표는 검찰을 향해서도 “의견이나 입장 제시를 넘는 행위는 국회에 대한 도전이나 겁박이 아니라 국민을 향한 도전이고 겁박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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