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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7대 팔린 4억 맥라렌, 다 법인차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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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주요 고가 수입차(수퍼카) 10대 중 8대 이상은 법인이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차량을 법인에만 판매한 브랜드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법인차 번호판 색깔을 바꿔 ‘꼼수 탈세’를 막겠다”고 공약했고, 정부도 이를 검토하고 있어 수퍼카 시장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11일 중앙일보가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의뢰해 7개 럭셔리카 브랜드의 국내 판매 실적을 분석했더니 총 판매 대수 2390대 중 2026대(84.8%)는 개인이 아닌 법인에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은 마세라티, 벤틀리, 람보르기니, 페라리, 롤스로이스, 애스턴마틴, 맥라렌 등 7개 브랜드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전체 승용차 146만9000여대 중 법인차는 42만9000여 대(29.2%)였는데, 수퍼카는 그 비중이 세 배에 가깝다.

특히 영국 스포츠카 맥라렌이 지난해 국내에서 판 차 27대는 전량 법인이 사 갔다. 맥라렌은 자동차 레이싱 대회 F1(포뮬러원)에 출전하면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모든 차량을 영국에서 100% 생산하는 수퍼카다. 럭셔리카의 대명사로 불리는 롤스로이스는 같은 기간 94%를 법인이 구매했다. 페라리(89.4%)와 람보르기니(85.6%), 마세라티(82.9%), 애스턴 마틴(81.6%), 벤틀리(80.6%) 역시 십중팔구는 법인차였다.

지난해 법인차 판매 비중 높은 브랜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난해 법인차 판매 비중 높은 브랜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법인차는 기업이나 개인사업자 등이 업무 용도로 사거나 리스·렌트해 운용하는 업무용 차량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수퍼카를 구매해 사주 일가가 개인 용도로 사용해 탈세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다.

법인차 판매 비중이 높은 수입차는 대부분 초고가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맥라렌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한 차량의 한 대당 평균 가격은 4억400만원이었다. 법인차 비율이 94%인 롤스로이스는 대당 평균 구매 단가가 6억900만원이다. 페라리(5억1500만원), 람보르기니(3억7100만원)도 대당 수억원대를 호가한다.

지난해 법인 차량 평균 구매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난해 법인 차량 평균 구매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법인차를 사면 구매비·유류비 등을 법인의 경비로 인정받을 수 있다. 기업이 세금을 낼 때 총소득에서 경비를 제외한 금액의 일정 비율을 납부하는데, 법인차로 인정받은 경비를 제외하면 그만큼 법인세·소득세가 줄어든다. 특히 법인세율은 과세 표준이 2억원을 넘어가면 10%에서 20%로 상승하기 때문에 고가의 수퍼카로 법인세 ‘탈세’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 국세청은 거의 매년 ‘무늬만 회사차’를 적발한다.

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관리가 어려운 고가의 수퍼카를 업무용으로 쓰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 사주나 그 가족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족이 개인적으로 쓰는 차를 법인 명의로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1월 법인 차량의 번호판 색상을 연두색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법인차 번호판 색깔이 일반 차량과 확연하게 다르면 탈세 행위를 수월하게 적발할 수 있고, 심리적인 위축 효과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차량 용도별 자동차 번호판 색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차량 용도별 자동차 번호판 색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국토교통부도 이에 대해 긍정적이다. 김태흥 국토부 자동차운영보험과 사무관은 “(대통령 당선인 공약 사항은) 국토교통부 고시(자동차등록번호판 등의 기준에 관한 고시) 개정만으로 실현할 수 있고, 이를 반대하는 여론도 많지 않아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라며 “용역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상반기쯤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론 차량 번호판 색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탈세 억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운행 기록부를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선팅을 진하게 하는 등 법인 번호판 연두색 제도를 무력화할 방법은 많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법인차 이용 규제가 엄격한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 사례를 참고해 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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