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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축 아이콘 사라진다"…남산 40년 지킨 '힐튼'의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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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힐튼호텔. 현재 부동산자산운용회사에 매각된 상태다. [사진 서울건축]

서울 남산 힐튼호텔. 현재 부동산자산운용회사에 매각된 상태다. [사진 서울건축]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 남산 힐튼호텔 내부. 건축가 황두진이 촬영했다. [사진 황두진]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 남산 힐튼호텔 내부. 건축가 황두진이 촬영했다. [사진 황두진]

역사 속으로 그냥 사라지게 둘 것인가, 아니면 창의적으로 보존할 것인가. 그것은 부동산인가, 아니면 문화인가.

'힐튼호텔의 미래' 심포지엄 #건축관련 9개 단체 공동기획 #"한국현대건축 이정표" #"창의적 재해석 가능하다"

서울 남산 기슭에 40년 가까이 자리한 힐튼호텔의 미래를 놓고 토론하기 위해 건축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시청 앞 도시건축전시관에서 ‘힐튼호텔과 양동정비지구의 미래’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린 것. 한국건축가협회, 대한건축사협회, 새건축사협회 등 건축 관련 총 9개 단체가 공동 기획한 이 행사는 국내에서 건축가와 역사학자, 비평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한 건축물을 두고 논의하기 위해 모인 매우 이례적인 자리로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현재 서울 힐튼호텔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지난해 12월 국내 부동산펀드 운용사(이지스자산운용)가 힐튼호텔을 약 1조원가량에 인수했고, 이 운용사는 호텔을 헐고 2027년까지 오피스·호텔 복합시설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건축계를 포함해 문화계에선 "한국현대건축의 아이콘이 사라진다"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이날 토론을 진행한 건축가 황두진씨는 "이제 한국사회는 근대건축물 뿐만 아니라 현대건축의 보존을 놓고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며 "이번 토론은 개발이냐, 보존이냐 하는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시각이 아니라 보다 입체적인 시각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보자는 뜻에서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힐튼호텔이 토론의 주제로 떠오른 것은 이 건물이 전문가들 사이에 '한국 현대건축의 아이콘'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준공된 건물 중 동시대 세계 건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던 몇 안 되는 건물이라는 것.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정제미로 건축 거장 미스 반 데 로에(1886~1969·이하 미스)의 건축 철학을 계승한 건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설계자 김종성은 '근대건축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스로부터 건축을 배우고 그의 설계사무실에서 근무했다. 1966년 일리노이 공대 건축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건축대 학장(서리)을 지내다 1978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세계적인 수준의 호텔을 지어달라"는 제안을 받고 귀국했다. 힐튼호텔 뿐만 아니라, 서울 경희궁터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서린동 SK사옥, 경주 선재미술관, 서울 올림픽공원 내 역도경기장,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등이 그의 설계작이다.

"한국 현대건축의 이정표"

호텔이 완공된 1983년 메인 로비 풍경, 사진 Im Chung Eui, [사진 김종성]

호텔이 완공된 1983년 메인 로비 풍경, 사진 Im Chung Eui, [사진 김종성]

힐튼호텔 내부 모습. [사진 서울건축]

힐튼호텔 내부 모습. [사진 서울건축]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힐튼호텔은 단순한 상업적인 건물이 아니라 한국 현대건축 20세기 말의 이정표가 되는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건축사적인 맥락에서 호텔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근대의 징표였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호텔은 건축적으로 수준 높고 도시 재개발과 직접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현대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에 유일무이한 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다. 수준 높은 디테일과 완성도 면에서 다시 재현하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힐튼호텔은 우리 사회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이것을 허물기보다는 이 자산을 가지고 21세기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겠다는 시각으로 건물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제화될 우려 있다" 

김세훈 서울대 환경대학원(도시환경설계) 교수 역시 "힐튼호텔이 김종성 건축가의 역작이고 국민들의 기억 속에 간직된 랜드마크"라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힐튼호텔과 같은 대형 상업건물과 같은 현대건축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그 건물이 잘 활용되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그렇지 않을 땐 자칫 건축물을 박제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말하자면, 힐튼의 경우 중간에 운영자가 바뀌면서도 운영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건축물은 아름답지만 층고는 낮아 호텔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그는 "현대 건축을 지키려는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지만 자칫하면 민간 사업주에게 이런 건축물을 보존하고 또 호텔 운영을 지속하라는 강요로 변질되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축이든 기존 건물을 상당 부분 유지하든 장소의 기억을 유지하고 무엇보다 힐튼호텔의 시대적 가치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축의 가치, 시민이 공유해야"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현대건축이 보존되려면 우리 사회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문제는 건축계 내부에서 소통되는 의견과 달리 일반인들은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모두 인정하는 건축의 가치를 사회가 함께 공유하지 못하는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건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증언하는 수많은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대중의 인식도 많이 확산됐다"면서 "지금이라도 건축문화 유산의 가치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뉴욕 현지에서 영상으로 토론에 참여한 설계자 김씨는 "건축의 수명은 100년도 갈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능과 용도는 바뀌게 마련"이라며 "기존 640실을 200실로 호텔로 만들고 기존 호텔의 아트리움을 보존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이윤도 창출하고 건축문화도 보존하는 윈윈 전략 방안을 찾기를 바란다는 얘기다.

[사진 이은주]

[사진 이은주]

[사진 이은주]

[사진 이은주]

천의영 한국건축가협회장(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은 "1983년 이전에 지어진 호텔은 대부분 일본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었다"며 "힐튼호텔은 한국 건축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다. 이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소통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는 배형민 교수와 김세훈 교수 외 이광환 해안건축 소장, 고병기 서울프라퍼티인사이트 에디터, 심경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이 발제자로 참여했으며 한국건축역사학회 김영철 배재대 교수, 이정형 중앙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1983년 12월 문을 연 5성급 호텔로 문을 연 힐튼호텔은 대우개발이 운영하다가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말 싱가포르 부동산 투자전문회사 훙릉의 자회사인 CDL에 2600억원에 매각됐다. 2004년 CDL의 호텔운영업체인 밀레니엄과 새로 계약을 맺으면서 밀레니엄힐튼호텔로 재출범했으나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에 다시 매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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