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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 붙잡고 권총 꺼내 때렸다…'악몽의 3시간' 무죄, 왜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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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범죄영화 같은 판결문을 보실까요.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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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72)씨는 폭력을 행사하기로 마음먹고 지난 2013년 초 필리핀 앙헬레스에 있는 피해자(59)를 찾아갔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일행과 피해자의 고환을 붙잡아 당기고 “왜 돈을 갚지 않아 나까지 오게 하느냐”면서 권총을 꺼내 들고 소음기를 붙인 뒤, 권총 손잡이와 주먹과 발로 피해자의 얼굴과 몸을 때렸습니다. 성기를 담뱃불로 지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씨는 일행과 함께 약 3시간 동안 피해자를 구타했습니다.

조씨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성기 부위 화상 등 피해를 입힌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법알 사건번호 18] 권총으로 때리고 성기 불에 지진 혐의 ‘무죄’… 왜?

조씨는 재판 과정 내내 강하게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범행 장소에 간 적도 없고 공범은커녕 피해자와도 모르는 사이라고 했죠.

동업자들을 증인으로 세워 그 시기에는 자신이 마닐라에 머물렀을 뿐 앙헬레스라는 도시에는 간 적이 없다고 했고, 공범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와는 아예 전혀 모르는 사이라서 공동으로 때린 일 역시 없다는 주장이 담긴 동영상과 사실확인서를 내기도 했죠.

1심에선 징역 3년이 선고됐는데요. 1심부터 피해자는 “보복이 두렵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내면서 재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항소심부터는 조씨와 합의했고 거동이 불편하다며 불출석 사유서만 냈죠. 그리고 전화는 결번이거나 이사로 주소지가 알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조씨가 누구냐고요? 바로 1970~80년대 ‘서방파’, ‘OB파’와 함께 국내 3대 폭력조직으로 손꼽히며, 한때 조직원이 1만명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진 ‘양은이파’의 두목 조양은씨입니다.

1998년 8월 27일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가 2년의 형기를 마치고 서울 영등포구치소에서 출소, 기자들의 질문에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8년 8월 27일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가 2년의 형기를 마치고 서울 영등포구치소에서 출소, 기자들의 질문에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서 질문

끝내 피해자가 나오지 않은 이 재판. 결국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왜일까요?

관련 법률은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4항에서는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그 기재 내용에 관하여 원진술자를 신문할 수 있었던 때에는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조계 판단은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도 조씨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다고 11일 밝혔습니다. “핵심 증인인 피해자 진술에 증거능력이 없다”는 이유입니다.

피해자는 검찰과 경찰에서는 피해사실을 진술했지만, 재판에서는 이를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증인소환절차가 채 마무리되지 못한 채 1심 변론이 마무리됐습니다.

1심은 수사기관에서 조사된 피해자 진술 등을 기초로 ‘유죄’를, 2심은 피고인이 실질적 반대 신문권이 보장되지 않아서 증거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이 맞다고 본 것이죠.

형사소송법에서는 반대신문권, 그러니까 피고인 입장에서 증인을 상대로 자신을 변호할 만한 질문을 할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질적 반대신문권의 기회가 부여되지 않은 채 이뤄진 증인의 법정 진술은 위법한 증거로서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대법원 판례입니다. 아니면 피고인이 명시적으로 물을 기회를 포기하는 경우여야만 합니다.

이에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은 수사기관에서 작성된 조서 등 서면증거에 대하여 일정한 요건 아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데 이는 실체적 진실발견의 이념과 소송경제의 요청을 고려하여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므로, 그 증거능력 인정 요건에 관한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법알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이야기로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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