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휠체어로 상점 800곳 누볐다…’배리어프리’ 지도 만든 서울대생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포장을 위한 공동행동' 소속 학생들이 지난해 여름 서울대 인근 음식점의 출입구 경사로를 측정하고 있다. 사진 서배공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포장을 위한 공동행동' 소속 학생들이 지난해 여름 서울대 인근 음식점의 출입구 경사로를 측정하고 있다. 사진 서배공

“저희 가게엔 그런 사람 안 와요.”
서울대 학생 손정우(20·윤리교육과)씨가 ‘장애인 손님을 위한 경사로를 설치해드린다’고 한 가게 사장에 제안하자 돌아온 답변이었다. 손씨는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서배공) 소속으로 학교 인근 가게에 경사로 설치를 안내해왔다. 서울관광재단에서 운영하는 관광편의시설 접근성 개선 사업에 참여하면 거의 추가 비용 없이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손씨는 가게 50곳을 돌며 경사로 설치를 제안했지만, 신청한 곳은 5곳뿐이었다.

서배공은 관악구 장애인종합복지회관과 협업한 끝에 현재까지 20곳 이상의 가게에 경사로를 설치해냈지만, 그때 들은 비수 같은 말들은 손씨에게 상처로 남았다. 손씨는 “(장애인을) ‘그런 사람’이라고 남처럼 표현하는 걸 들을 때마다 씁쓸했다”며 “안 가는 게 아니라 가게 출입문에 턱이 있어 못 가는 것”이라고 했다.

50곳에 경사로 제안했지만, 5곳만 신청 

서배공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장애인에 대한 물리적·심리적 장벽(‘배리어’)을 없애는 걸 목표로 지난해 4월 설립됐다. 학생 단체지만 학교 밖 시설의 접근성에 대해서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장애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캠퍼스뿐 아니라 학교 인근 상점과 편의시설의 접근성도 높여야 한다’는 이유다.

서배공 소속 학생들이 서울대 인근 상권에서 가게들의 휠체어 접근성을 조사하러 다니고 있다. 사진 서배공

서배공 소속 학생들이 서울대 인근 상권에서 가게들의 휠체어 접근성을 조사하러 다니고 있다. 사진 서배공

장애를 가지고 있는 서배공 김지우(20·사회학과) 대표는 “학교에서 (장애인 접근성에) 신경 쓰는 부분은 주로 수업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 구성원과의 관계 맺음도 대학생활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대 근처에서 선배들과 밥약(밥 약속)을 하거나 동아리 회식을 하려 해도 장소를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장애인 학우가 대외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고, 또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샤로수길 800곳 휠체어 타고 접근성 조사

서배공은 지난해 학교 인근 상점 약 70곳의 휠체어 접근성 정보를 표시한 지도(‘샤로잡을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출입구 경사가 얼마나 가파른지, 턱이 있는지, 내부 공간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은지 등을 서울관광재단의 기준에 맞게 표시했다. 지도 제작에는 학생 13명이 참여했다.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이들은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 샤로수길(관악로14길의 애칭) 음식점과 편의점 등 약 800곳(추산)을 4인 1조로 직접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조사했다.

조사 결과, 세 상권에서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상점은 60여곳에 불과했다. 특히 새로 생긴 가게가 많은 샤로수길의 경우 상점 250곳 중 약 20곳이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었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건물은  두 곳이었다. 서배공은 다른 가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거나, 경사로 설치가 가능한 상점들을 뽑아 지도로 만들고 같은 해 10월부터 온·오프라인으로 이를 배포하고 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관정관에 서배공이 만든 휠체어 접근성 정보 지도가 전시돼 있다. 이병준 기자

서울대 관악캠퍼스 관정관에 서배공이 만든 휠체어 접근성 정보 지도가 전시돼 있다. 이병준 기자

“서울대 셔틀버스도 저상 버스 없어”

이우진(21·자유전공학부) 서배공 학내대응국장은 “서울대 관악캠퍼스는 많은 길이 계단으로 막혀 있고 휠체어가 지나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도로 환경이 많다. 셔틀버스 중에서도 저상 버스가 한 대도 없다”며 “셔틀버스 등 교내 현장 조사를 시작으로 학내 주요 기관들과 협업을 해보려 한다”고 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