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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이어령의 생명자본주의와 ESG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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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이어령 선생이 최근 타계했다. 큰 별이 졌다. 이즈음 그의 생명 자본주의를 다시 돌아본다. 그는 십여 년 전 생명 자본주의 포럼을 발족하고,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생명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말은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오래전 남이섬 주인은 가로수를 심어 관광지로 개발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려와 가로수 아래서 사진을 찍었다. 가로수가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 자본이 된 것이다. 남이섬 전체가 상전벽해가 됐다. 이것이 생명 자본주의다. 가로수를 베어 장작으로 쓰면 그것은 산업자본주의다. 수십 년 키운 나무가 불과 몇 시간 만에 재로 둔갑하는 일회용 자본주의다. 금융자본주의란 ‘돈 놓고 돈 먹기’를 말한다.

인류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산업·금융자본주의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환경오염, 기후변화, 생명 경시, 부의 양극화 등의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제 인류는 생명의 원리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복원함으로써, 자연이 자본이 되는 선순환의 자본주의를 건설해야 한다. 차가운 금융자본주의에서 따뜻한 생명 자본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는 전쟁과 수렵, 살생하는 남성 원리 대신, 생명을 낳고, 키우는 여성 원리가 지배한다. 생명을 살상하는 무기,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산업에서, 의료·교육·문화·양육 등 생명을 키워내고 살려내는 산업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생명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근간으로 하는 ‘ESG 자본주의’와도 맞닿아 있다. 산업혁명 이래 ‘자본’을 경제의 한복판에 놓는 과정에서 간과돼 온 사람, 지구 환경, 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복원하자는 경제철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성찰’의 선봉장은 산업 및 금융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최대 수혜자였던 ‘투자자 그룹’이었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왜일까. 이대로 방치하다간 자본주의 시스템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최대 수혜자들이 자신들의 성공 문법에 메스를 들이댔다. 이는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자본주의 리셋’ 움직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더욱 탄력받았다. 연기금, 국부펀드 등 자산 보유자들이 그 대전환의 핵심 세력이었다.

ESG자본주의는 생명 자본주의와 다른 표현의 같은 경제철학이다. 이어령 선생의 타계를 계기로 생명 자본주의 사상이 재조명되길 바란다. 산업·금융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원형을 오히려 허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한반도 전체가 생명 자본으로 도약하길 바란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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