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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살인’ 주연 김상경 “가습기 살균제 사건, 내 일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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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영화 ‘공기살인’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피해자 가족의 시선에서 풀어냈다. 배우 김상경(오른쪽)이 주연을 맡았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CJ CGV]

영화 ‘공기살인’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피해자 가족의 시선에서 풀어냈다. 배우 김상경(오른쪽)이 주연을 맡았다. [사진 TCO더콘텐츠온, CJ CGV]

배우 김상경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 보상 과정에 대해 “주객이 전도됐다”고 비판했다. 8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공기살인’(감독 조용선)의 언론 시사 간담회 자리에서다. 이 작품의 주연으로 출연한 그는 “2020년 사회적 참사 조사위원회에서 피해 사례를 신고받을 때도 ‘(10년 전)영수증을 갖고 와서 아픈 걸 밝히시면 저희가 생각해보겠습니다’고 했다는데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일침을 놓았다. 그러면서 “피해를 준 사람이 피해자에게 당신이 얼마나 아픈지 알아듣게 설명하라고 하는 건 주객이 좀 전도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얼마나 아픈지 설명하라니 주객 전도돼”

22일 개봉하는 ‘공기살인’은 10년 넘게 이어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피해자 시선에서 재구성한 영화다. 임신부·영유아 등이 석연찮게 급성 폐 질환으로 잇따라 사망하자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지목되며 사건이 불거졌다. 1994년 출시돼 17년간 1000만 병가량 팔린 각종 가습기 살균제에 독성 물질이 포함된 게 밝혀지면서다. 2020년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피해자가 자그마치 95만 명, 사망자는 2만여 명에 이른다. 공론화 11년 만인 지난달 생산 기업들과 피해자 간 최종 배·보상 조정안이 나왔지만, 분담금이 가장 많은 옥시레킷밴키저 등 대표적 업체들의 수용 거부로 공방이 끝나지 않고 있다.

영화는 이를 ‘공기살인’이라 명명했다. 『소원』『터널』 등 영화 원작을 쓴 소재원 작가의 소설 『균』을 토대로 조용선(‘노브레싱’) 감독이 6년간 자료 조사와 검증을 거쳐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조 감독은 “처음 가습기 살균제 이야기를 제안받았을 때 다른 참사처럼 슬프게 다뤄야 하나 했는데 사건 전모를 알면 알수록 분노했고 내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건이 이슈화된 뒤 벌어진 일들을 굳이 시간 순서에 상관없이 배열했다”며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라 영화를 만드는 6년간 관련 데이터가 매년 업데이트돼 제 컴퓨터에 저장된 촬영고(촬영용 대본) 수가 97개나 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생산업체들이 어떻게 피해자들을 입막음하려 했는지에 집중하다 보니 4명의 캐릭터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조용선 감독

조용선 감독

영화는 특정 인물의 사례를 좇기보다 사건에 얽힌 의료·법조·정·재계 등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와 책임소재를 극 중 인물 군상에 녹이는 데 집중했다. 의사인 주인공 태훈(김상경)은 2011년 갑작스러운 폐 질환으로 6살 아들이 위독해지고 아내(서영희)가 같은 증세로 숨지자 의문을 품고 검사인 처제 영주(이선빈), 동료 의사들과 힘을 합쳐 진상 조사와 소송에 나선다. 극 중 가습기 살균제 생산업체인 외국계 기업의 외국 국적 대표는 대형로펌과 거짓 연구결과 등을 동원해 법망을 피해간다. 오히려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는다”며 재고 처리에 더 열을 올린다. 정부는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조 감독은 “영화에 나온 사건이 진짜 있었던 것인지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네이버 검색만 해도 쉽게 알 수 있다”며 “피해자들을 만나 조사도 했지만, 개인사를 노출하기보다 피해 발생에 (관계자들이) 대응한 그 지점을 많이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변하고 싶었던 피해 상황이 너무 방대해 다 담을 수 없다는 게 괴로웠고 자칫 영화에 잘못된 정보가 전달돼 가해 집단들이 피해자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될까 괴로웠다”며 “그럴수록 더 냉정해져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민감한 소재이다 보니 투자·캐스팅도 쉽지 않았다. “흥행은 보장하지 못하더라도 창피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보겠다”(김상경)며 배우들이 뭉쳤다고 한다. ‘살인의 추억’ ‘화려한 휴가’ ‘일급기밀’ 등 실화 소재 영화에 잇따라 출연해온 김상경은 “저는 가습기 살균제를 쓰지 않고 처음 기사를 봤을 때 남의 일이라 생각했지만, 영화를 통해 내 일처럼 느끼게 됐는데 그게 영화의 힘”이라며 “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 자신했다.

“실제와 다른 결말은 기업·정부 향한 경고”

영화에서 배우 이선빈은 가습기 살균제로 언니를 잃은 검사 출신 변호사를 연기했다.

영화에서 배우 이선빈은 가습기 살균제로 언니를 잃은 검사 출신 변호사를 연기했다.

배우들에겐 실제 피해자들의 고통이 무겁게 다가왔다. 이선빈은 “실수 하나 용납되지 않는 작품이어서 누구보다 (실제 사건을) 공부를 많이 해야 했고 진실과 감정 사이의 선을 특히 잘 조절하려고 노력했다”며 “자칫 잘못하면 누군가를 기만하는 역할이 될 수 있어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살이 점점 빠지고 마지막 촬영 마친 날은 코피가 너무 많이 났다”며 “어떤 작품보다 제가 위험할 수도 있으리만큼 조심스럽게 정말 깊이 있게 다가갔다”고 소개했다. 이선빈은 전작 ‘술꾼도시여자들’(tvN)로 5일 프랑스 칸 국제시리즈 페스티벌에 참석했다가 ‘공기살인’ 간담회를 위해 9일 귀국했다.

조용선 감독은 “결말을 실제와 다르게 한 이유는 제도권·기업·정부에 저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경고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극 중 어린 아들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썼던 피해자 역의 서영희는 “코로나를 2년 넘게 겪고 오늘 영화를 보면서 지금 감정으로 연기했다면 조금 더 피해자들한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너무 죄송했다”고 말했다. 업체 직원을 연기한 윤경호는 “희망이 될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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