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애플이 1000억 들인 '윤여정판 대부' 파친코…일본만 딴지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애플TV+드라마 '파친코' 시즌1의 5번째 에피소드가 지난 8일 공개됐다. 주인공 선자(윤여정, 왼쪽)는 아들 모자수(아라이 소지)와 1931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며 떠났던 고향 부산을 50년만에 다시 찾아간다. 사진 애플TV+

애플TV+드라마 '파친코' 시즌1의 5번째 에피소드가 지난 8일 공개됐다. 주인공 선자(윤여정, 왼쪽)는 아들 모자수(아라이 소지)와 1931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며 떠났던 고향 부산을 50년만에 다시 찾아간다. 사진 애플TV+

지난 8일 애플TV+로 공개된 드라마 ‘파친코’ 5화에선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된 조선 여성들의 비극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왔다.
1931년 일본 오사카에 건너갔던 주인공 선자(윤여정)는 50년 만에 고향 부산에 돌아가, 어머니가 하던 하숙집 일을 함께 도우며 친자매처럼 지낸 복희 언니(김영옥)와 해후한다. 백발 성성한 복희 언니는 고통스레 선자가 떠난 후의 일들을 들려준다. “어떤 아재가 찾아와가 만주 공장에 좋은 일거리 있다고 우릴 소개시켜 준다카데….” 이렇게 운을 뗀 복희 언니는 “전쟁 끝나고 와보니 너희 어머니 안 계시더라. 솔직히 말해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가 이래 변한 꼴, 보이고 싶지 않았다”며 만주에서 상상 못 할 참극을 겪었음을 암시한다. 듣고 있던 선자는 주름진 얼굴로 눈물을 글썽인다. 드라마에 따로 부연 설명이 나오진 않지만, 일제강점기 역사를 아는 시청자라면 머릿속에 ‘일본군 위안부’란 단어를 떠올릴 만한 대사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해외서 호평 #무료 공개된 1화 유튜브서 1449만 시청 #일제강점기 역사 아우른 윤여정판 '대부' #영대본 한국말 번역 심혈…3.1운동도 언급

애플 1000억원 투자한 미드, 일제 탄압 들춰 

'파친코'에서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의 허름한 하숙집 딸 선자는 이후 생선 중개상 한수(이민호), 평양에서 온 목사 이삭(노상현) 등과 인연을 맺으며 일본으로 건너간다. 사진은 아역 배우 전유나가 연기한 1910년대 어린 선자, 김민하가 1930년대 선자를, 윤여정이 1980년대 노년의 선자를 연기했다. [사진 애플TV+]

'파친코'에서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의 허름한 하숙집 딸 선자는 이후 생선 중개상 한수(이민호), 평양에서 온 목사 이삭(노상현) 등과 인연을 맺으며 일본으로 건너간다. 사진은 아역 배우 전유나가 연기한 1910년대 어린 선자, 김민하가 1930년대 선자를, 윤여정이 1980년대 노년의 선자를 연기했다. [사진 애플TV+]

‘파친코’는 한국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미국 회사 애플이 만든 미국 드라마다. 시즌1 총 8부작에 투입된 제작비가 약 1000억원으로 알려졌다. 한국 영화‧드라마가 아닌 이런 대규모 미국 드라마가 일제강점기 조선의 애환을 이렇게 자세히 다루기는 처음이다.
2017년 미국에서 출간해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에 오른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대담한 첫 문장으로 여는 이 소설은 부산 영도의 허름한 하숙집 딸 선자(윤여정‧김민하‧전유나)를 중심으로 자이니치(在日‧재일조선인) 3대의 가족사를 그렸다. 1910년대와 1930년대, 1980년대를 주된 배경으로 부산에서 시작해 일본 오사카와 도쿄, 미국 뉴욕을 오가며 선자와 자손들의 질긴 생존 분투가 펼쳐진다.
드라마는 이를 토대로, 각본가 겸 총괄 프로듀서 수 휴, 공동 감독 코고나다(1~3, 7화 연출), 저스틴 전(4~6, 8화 연출) 등 재미교포 제작진이 대거 뭉쳐 만들었다. 한국‧일본 현지 촬영에 더해 캐나다 밴쿠버에 대형 세트장을 지어 촬영했다.

무료 공개된 1화 유튜뷰서 1449만 봤다 

이번 시즌1은 지난달 25일 1~3화를 전 세계 한꺼번에 출시한 후 매주 금요일 1편씩 새 에피소드를 공개해왔다. 애플이 공식적으로 시청률이나 가입자 수 증가치를 밝히진 않았지만, 애플이 유튜브를 통해 전체를 공개한 1화는 조회 수가 1449만건에 육박했다(이하 10일 기준).

해외에서도 호평이 쏟아진다. 글로벌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선 언론‧평단 신선도가 100% 만점에 98%, 대중은 94%에 달했다. ‘파친코’ 출연진은 ‘미나리’로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을 제외하면 젊은 선자 역의 신인 김민하를 비롯해 이민호‧정은채, 재미교포 진하, 실제 자이니치인 아라이 소지 등 대부분 영미권에선 낯선 한국계 배우들. 한국어‧일본어‧영어 등 다국어 대사가 뒤섞여 자막 색깔을 구분해 표기해야 했을 만큼 ‘자막의 장벽’이 높은 데도 “올해의 위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지난 몇 년 중 최고”(영국 글로브 앤 메일)란 극찬이 나온다. 미국 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파친코’는 가족의 회복력과 여성의 힘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가 고통의 비참한 초상화가 균형을 이룬다”고 평가했다.

NYT "'파친코' 한복, 한국 역사의 렌즈" 

드라마 속 한국 문화‧역사에 대한 관심도 높다. NYT는 9일 ‘역사를 관통하는 한 의복의 여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파친코’에 나온 한복 의상을 “한국 역사의 렌즈”라며 주목했다. “한복은 역사가 2000년이 넘는다”며 고유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신분‧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소재와 모양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넷플릭스 좀비 사극 ‘킹덤’이 인기를 얻자 갓을 비롯한 조선 전통 모자가 주목받은 것과 흡사하다.

'파친코'에는 시대와 신분, 직업,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지은 한복 의상이 등장한다. 채경화 의상 디자이너가 참여했다.[사진 애플TV+]

'파친코'에는 시대와 신분, 직업,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지은 한복 의상이 등장한다. 채경화 의상 디자이너가 참여했다.[사진 애플TV+]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25일 ‘파친코’ 리뷰 기사에서 “미국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한국( 및 일본) 역사인 1910년대에 시작된다”고 짚었다. 같은 날 시사지 뉴스위크는 ‘파친코’ 속 일제강점기를 조명한 기사에서 “‘파친코’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은 한국문화를 말살하려고 했고 거의 72만5000명의 남성을 일본과 그 영토에서 일하도록 강요하고 수천 명의 한국 여성을 ‘위안부(comfort women)’, 즉 일본 군인의 성노예가 되도록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오겜 출시 전 기획, 윤여정의 '여성판 대부'

시사지 타임 역시 지난달 18일 기사에서 ‘파친코’를 ‘역대 최대 규모 다국어 쇼 중 하나’로 주목하고, 이 작품이 넷플릭스 글로벌 히트작 ‘오징어 게임’(2021)이나 아카데미 4관왕 수상작 ‘기생충’(2019)의 후광으로 제작된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재미교포인 공동 총괄 프로듀서 테레사 강 로우는 지난달 18일 제작진과 참석한 한국 취재진 화상 간담회에서 2017년 원작을 처음 접한 후 느낀 공감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가정마다 저마다의 선자가 존재한다.” 흔히 남성 중심으로 서사돼온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여성 가장의 시선에서 묘사했다는 점에 끌렸다는 얘기다. 테레사 강 로우는 기획 초반부터 미국의 이탈리아 마피아를 그린 ‘대부’ 시리즈를 많이 참고했다고 했다. 여성판 ‘대부’ 시리즈로 접근한 셈이다.

 '파친코'에서 이민호는 유부남이란 사실을 감추고 선자에게 아들을 잉태시키는 조선인 중개상 한수를 연기했다. [사진 애플TV+]

'파친코'에서 이민호는 유부남이란 사실을 감추고 선자에게 아들을 잉태시키는 조선인 중개상 한수를 연기했다. [사진 애플TV+]

역사의 굴곡을 다뤘지만 현재까지 미치는 파장을 추적해 동시대성을 획득했다는 점도 드라마의 장점으로 꼽힌다. 코고나다 감독은 “생존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많은 이민자 가정,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현재진행형 스토리”라고 했다. 글로벌 시장에 통하는 요소다.

영대본, 한국말 번역엔 '스파이더맨' 번역가

3~4개월씩 오디션을 거쳐 발탁된 배우들은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는 사투리를 절묘하게 살려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영어 원작을 토대로 미국 현지 작가팀이 영어로 쓴 각본을 한국 배우들이 연기할 한국말 대사로 번역하는 작업도 섬세하게 이뤄졌다는 평가다. ‘데드풀’ ‘보헤미안 랩소디’ ‘스파이더맨’ 등 500여편의 영화 및 뮤지컬 대사를 한국말로 옮긴 황석희 번역가가 참여했다. 그는 지난 2020년부터 번역 작업만 1년 넘게 진행했다. 해외 제작진이 한국말 작품을 만들면서 생겨난 새로운 작업 과정이다.
 황석희씨는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영어와 한국어의 정서와 표현이 달라 한 회 분량 대본을 한국어로 옮기는 데만 미국 제작진과 열댓번씩 수정한 대본을 주고받았다고 소개했다. 황씨는 "어린 선자가 ‘내는 죽어도 싫어예’ 하는 대사의 경우 영어론 ‘never’였던 걸 한국말 ‘죽어도’로 번역한 다음 영어로 다시 직역해(Even if I die) 수 휴한테 보냈더니 ‘7살짜리가 그렇게 극단적인 표현을 쓸 리가 없다’더라. 한국에선 많이 쓰는 말이라고 하나하나 설득했다”고 했다. 영문 대본에서 혁명‧시위를 뜻하는 영어 단어로 표현됐던 ‘3‧1운동’을 정확한 명칭으로 바꾸기도 했다. 원작 소설의 일부만 시즌1에 담은 제작진은 이후 ‘파친코’ 새로운 시즌을 이어가겠다는 목표다.

서경덕 교수 "일본, 가해 역사 알려질까 봐 두려워해"

애플TV+드라마 '파친코' 시즌1의 5번째 에피소드에선 배우 정은채가 오사카 자이니치 마을에 먼저 정착해 살던 이삭의 형 요셉(한준우)의 아내 경희를 연기했다. [사진 애플TV+]

애플TV+드라마 '파친코' 시즌1의 5번째 에피소드에선 배우 정은채가 오사카 자이니치 마을에 먼저 정착해 살던 이삭의 형 요셉(한준우)의 아내 경희를 연기했다. [사진 애플TV+]

‘파친코’는 일본에도 공개됐다. 민감한 소재여선지 애플TV+는 홍보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일본 주요 언론에 ‘파친코’에 대한 기사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온라인에선 역사 왜곡 반일 드라마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4일 페이스북을 통해 “일본의 일부 누리꾼들은 SNS에서 '한국이 새로운 반일 드라마를 세계에 전송했다', '한일합병은 한국 경제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 '역사가 왜곡된 드라마' 등 비난을 쏟아 내고 있다"면서 "이는 글로벌 OTT를 통해 일본의 가해 역사가 전 세계에 제대로 알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