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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거리엔 '한국 벚꽃' 날리자…"벚꽃 해방" 나선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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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한국 꽃일까, 일본 꽃일까? 정답은 둘 다 맞다.

한국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서로 유전적으로 다른 별개의 종이다. 두 나무는 엄마 나무가 같지만, 아빠 나무가 다르다. 일본 왕벚나무(소메이요시노)는 올벚나무를 모계로 하고 오오시마벚나무(외벚나무)를 부계로 한다.

한국 제주 왕벚나무는 모계는 올벚나무로 소메이요시노와 같지만, 부계가 산벚나무다. DNA로 연구하는 방법론이 개발된 후 2014년 김승철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팀을 비롯한 학자들이 이를 밝혀냈다.

한국 벚꽃·일본 벚꽃 “아빠가 달라요”

소메이요시노 벚나무와 왕벚나무는 DNA 상으로도 다르지만 전문가는 육안으로도 구별할 수 있다. 꽃을 피운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겨울눈을 싸고 있는 아린(芽鱗)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7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한 시민이 핸드폰을 이용해 벚꽃을 찍고 있다. 뉴스1

소메이요시노 벚나무와 왕벚나무는 DNA 상으로도 다르지만 전문가는 육안으로도 구별할 수 있다. 꽃을 피운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겨울눈을 싸고 있는 아린(芽鱗)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7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한 시민이 핸드폰을 이용해 벚꽃을 찍고 있다. 뉴스1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1908년 프랑스 선교사 에밀 타케 신부가 한라산 북측 관음사 뒷산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해 학계에 처음 알렸다. 1932년 도쿄대의 고이즈미 겐이치 박사가 한라산 자생지를 확인하고 ‘일본 벚꽃은 한국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밝혔다. 1962년 박만규 박사가 이를 재확인하면서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역시 한라산’이라는 설이 굳어졌다. ‘벚꽃은 한국 꽃’이라는 명제는 적어도 수십년간은 학계에서 사실이었다.

그래서 벚꽃은 ‘왜색’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꽃을 일본이 마치 자기네 꽃인 것처럼 가로챈다’는 상반되는 인식 속에 놓여 있었다.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건 ‘일본 왕벚나무’

다만 현재 한국에 심겨 있는 벚나무는 대부분 일본 왕벚나무(소메이요시노)다. 제주도산 왕벚나무는 한라산 중턱에 200여 그루와 전남 해남 등 국내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고 있다.

제주시 봉개동에 피어 있는 제주 왕벚나무. 우리나라 자생종인 왕벚나무는 제주도와 해남 일부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 [출처 왕벚프로젝트2050 제공]

제주시 봉개동에 피어 있는 제주 왕벚나무. 우리나라 자생종인 왕벚나무는 제주도와 해남 일부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 [출처 왕벚프로젝트2050 제공]

지난 2월 18일 공식 출범한 사단법인 ‘왕벚프로젝트 2050’은 수령을 다 한 일본 왕벚나무를 한국 왕벚나무로 대체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생태학자, 원예 전문가, 언론인 등 111명이 모였다.

‘왕벚프로젝트 2050’의 초대 회장을 맡은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은 “왕벚나무의 수령은 60~80년이다. 수령을 다 한 나무를 대체하면 2050년경에는 지금 심겨 있는 나무들이 노쇠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왕벚나무로 갱신될 수 있을 거로 본다”고 말했다.

이 작업을 위해 지난 4일 ‘왕벚프로젝트 2050’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첫 생태조사를 했다. 국회와 여의서로(윤중로)에 있는 벚나무 총 636그루를 전수조사했다. 그중 94.3%가 일본 소메이요시노 벚나무였고, 한국 벚나무는 한 그루도 없었다.

지난 4일 왕벚프로젝트2050의 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와 여의서로(윤중로)에 핀 벚나무들을 대상으로 생태조사를 벌인 결과 94.3%가 소메이요시노벚나무인 것으로 드러났다. [출처 왕벚프로젝트2050 제공]

지난 4일 왕벚프로젝트2050의 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와 여의서로(윤중로)에 핀 벚나무들을 대상으로 생태조사를 벌인 결과 94.3%가 소메이요시노벚나무인 것으로 드러났다. [출처 왕벚프로젝트2050 제공]

현진오 왕벚프로젝트2050 사무총장은 “진해, 경주 등 벚꽃 명소와 항일 유적지, 국회 등을 우선으로 생태 조사를 앞으로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백여년 간 역사에 시달린 벚꽃

왕벚프로젝트2050는 창립선언문에서 “추악한 인간사에 포획된 벚꽃을 놓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벚꽃이 일제강점기 동안은 일본의 통치 수단이 되고 해방 후에는 한국인의 미움을 받는 등 역사에서 놓여나지 못한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지난 4일 왕벚프로젝트2050의 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핀 벚나무들을 대상으로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출처 왕벚프로젝트2050 제공]

지난 4일 왕벚프로젝트2050의 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핀 벚나무들을 대상으로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출처 왕벚프로젝트2050 제공]

지금은 웨딩촬영 장소로도 인기 있는 창경궁에 벚꽃이 심긴 것도 일제강점기 때다. 1971년 경향신문에 따르면 밤 벚꽃놀이가 시작된 것은 1926년이다.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사이토가 전임 총독인 데라우치의 무단통치에 우리 백성들이 심한 반발을 하고 있다는 보고에 그 대안으로 마련한 문화통치의 일환이었다.

이에 해방 이후에는 애국지사들이나 시민들이 벚나무를 베어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1986년 창경궁 ‘창경원’에서 궁으로 복원할 때는 일제가 심은 벚나무를 없애야 하는지 남겨둬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벚나무를 살구나무나 무궁화 나무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끊이지 않는다.

벚꽃의 ‘자연으로 있을 권리’ 돌려주려면

지난 2월 18일 신구대학교식물원 행사장에서 '왕벚프로젝트2050'의 창립총회가 열렸다. 왕벚프로젝트2050은 수령을 다한 소메이요시노벚나무를 한국 왕벚나무로 대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출처 왕벚프로젝트2050 제공]

지난 2월 18일 신구대학교식물원 행사장에서 '왕벚프로젝트2050'의 창립총회가 열렸다. 왕벚프로젝트2050은 수령을 다한 소메이요시노벚나무를 한국 왕벚나무로 대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출처 왕벚프로젝트2050 제공]

신 회장은 “꼭 소메이요시노가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선조들을 고통에 빠뜨리면서 들어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우리나라에도 고유종이 있는데 후손들이 계속 일본 특산종을 봐야 하는 건 안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제주왕벚나무는 자연 교잡종이라 인위 교잡한 소메이요시노보다 유전자 다양성이 높고 기후 변화도 더 잘 적응할 수 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이어 “나무는 나무대로 살아온 역사가 있고 그 역사는 우리보다 훨씬 더 깊고 길다”며 “그런데도 나무는 제도도 권리도 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조차 오해를 받아 왔다. ‘벚꽃’의 꽃필 권리를 찾아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벚나무를 꽃 피울 수 있어야 비로소 벚꽃을 그저 북반구 아열대·온대지방에 분포하는 ‘자연’으로 둘 수 있다는 의미다.

제주시 봉개동에 피어 있는 제주 왕벚나무. 우리나라 자생종인 왕벚나무는 제주도와 해남 일부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 [출처 왕벚프로젝트2050 제공]

제주시 봉개동에 피어 있는 제주 왕벚나무. 우리나라 자생종인 왕벚나무는 제주도와 해남 일부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 [출처 왕벚프로젝트2050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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