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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대체가능’해진 NFT아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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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호 31면

유주현 문화부문 기자

유주현 문화부문 기자

IT용어인 ‘NFT(Non Fungible Token·대체불가능 토큰)’가 올해 문화예술계 최고의 키워드가 됐다. 문화 기자에게 NFT 관련 보도자료가 매일 도착한다. 지난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비플의 ‘에브리데이즈’가 초고가에 낙찰되며 이목을 집중시킨 이후 ‘NFT아트’가 미술계 총아로 급부상한 탓이다.

지난달 24일엔 국내에서 가장 비싼 그림(132억)으로 꼽히는 김환기의 ‘우주’를 NFT화한 3개 에디션이 서울옥션블루 경매에서 총 7억3000만원의 낙찰액을 기록해 화제였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붉은 점화’ 등 김환기의 다른 대표작도 줄줄이 NFT화가 예고된 상태로, 멀티미디어 VFX(시각특수효과)기술까지 적용해 몸값을 키우고 있다.

NFT아트가 뭘까. 동영상 파일처럼 복제 가능했던 디지털 아트에 블록체인상의 고유한 인식값을 부여해 원본성과 희소성을 보장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정품 인증’을 받은 디지털 작품을 비싸게 사고 팔게 됐다는 뜻이다.

김환기의 ‘붉은 점화’로 제작한 하이퍼큐브 NFT아트. [사진 아트토큰]

김환기의 ‘붉은 점화’로 제작한 하이퍼큐브 NFT아트. [사진 아트토큰]

그런데 ‘대체불가능’이란 말은 어폐가 있다. 판화나 사진에 에디션을 매겨 팔 듯 주소의 인식값이 고유하니 무단 복제가 안 될 뿐이다. 실제로 ‘우주’를 비롯해 요즘 판매되는 NFT 작품들은 에디션을 매긴 여러 점이 존재한다. 오히려 대체불가능했던 평면회화 원본을 디지털로 ‘대체가능’해진 셈이다.

예술품으로서의 오라도 의문이다. 디지털 파일 형태의 작품을 개인이 소유해 봤자 PC 모니터로나 볼 수 있다면 무슨 소용인가. ‘우주’를 65인치 LG올레드 TV에 담아주는 이유다. 지난 2월 LG전자는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와 콜라보로 NFT작품을 스마트TV로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 서비스를 출시했다. 커다란 캔버스 같은 고화질 벽걸이 TV로 집에서 김환기 작품을 감상한다면 압도될 법도 하다.

그런데 우리 집에도 김환기 작품을 프린트한 액자가 있다. 미술관 아트숍에서 구입한 MD굿즈다. 몇 만원짜리 굿즈도 통상 한정판으로 제작되니 그 액자도 희소성이 없지 않은데, NFT아트와 MD굿즈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까.

실제로 NFT아트는 전시나 공연 같은 문화 행사의 마케팅 도구가 된 느낌이다. 지난달 뮤지컬 ‘프리다’는 ‘공연계 최초 NFT아트 출시’를 내걸고 공연장에서 특별전을 열었는데, 조악해 보이는 그림들이 비좁은 공간에 빼곡했다. 유명 작가와 아트테이너들을 앞세워 최근까지 서울과 경기, 부산에서 열렸던 ‘Amulet_호령전’도 원화와 NFT 버전을 동시에 전시하며 눈길을 끌었지만, 쇼핑몰 한복판에 디스플레이된 그림들은 작품보다 상품 같았다.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132억원짜리 ‘우주’의 디지털 버전을 3명의 개인이 2억원 대에 소유하게 됐으니 미술시장 대중화로 볼수도 있다. 그런데 ‘호령전’에 참여했던 한 작가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림을 누가 그렸느냐가 아니라 누가 보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면서 작품이 영상제작자의 손을 거쳐 자기 의도를 떠나 재해석된 것이 흥미롭다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벗어난 2차 콘텐트가 과연 예술일까 파생상품일까.

값을 매길 수 없었던 디지털 아트에 시장이 열렸다지만, 진지한 디지털 아티스트가 주인공으로 나서는 게 아니라 명망 있는 평면회화 작가들이 영상제작자로 하여금 디지털 복제품 생산을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NFT아트의 가치 주장을 위해 원화를 불태우지 않으려면 개념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원본이 존재하는 2차 콘텐트로서의 NFT아트라면 ‘한정판 디지털 굿즈’에 걸맞는 가격이 매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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