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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최저임금, 지역·업종별 차등화가 해법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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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호 30면

최저임금 과속 인상은 고용 참사 불러

주요국은 오래전부터 차등 적용 정착

고용주가 감당할 수 있어야 고용 늘어

최저임금은 19세기 말 뉴질랜드에서 처음 등장해 호주를 거쳐 영국에서 근대적인 형태를 갖추게 됐다. 1911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도입, 1928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채택한 뒤 1930년대 세계 경제공황 이후 각국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1953년 근로기준법에 도입 근거를 만들어놨으나 오랫동안 잠자고 있다가 전두환 정부에서 도입해 1988년부터 실시했다. 노동자의 권리가 중시되고 최저임금을 적용해도 될 만한 경제 여건을 갖추게 되면서다.

이렇게 자리를 잡았던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1만원 도달 공약을 내걸면서 크게 헝클어졌다. 문 정부는 “저임금 근로자에게 최소한의 생활급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정권 출범 직후 초고속 인상에 나섰다. 2017년 6470원이던 최저임금은 2019년 8350원까지 단숨에 1880원 급등했다. 인상률은 2년 만에 29.1%에 달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즉각 한국 경제를 뒤흔들었다. 자영업자들은 알바부터 자르고, 그래도 버티기 어렵자 오래된 종업원도 내보내기 시작했다. 생활급은커녕 일할 기회를 잃고 소득이 끊어지는 고용 참사였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2017년 160만8000명에서 지난해 130만7000명으로 30만1000명 감소했다. 알바라도 한 명 데리고 일하는 자영업자가 많이 줄었다는 의미다. 반면에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같은 기간 407만4000명에서 420만6000명으로 13만2000명 늘었다. 인건비 부담 때문에 알바조차 안 쓰는 ‘나 홀로 사장’들이다.

결국 고용시장의 판을 흔들자 피해를 본 사람은 누구인가. 공무원·공기업·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최저임금 수혜 대상에서 벗어나 있어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2700만 근로소득자의 88%가 일하는 중소기업, 그리고 700만 자영업자에겐 고용 기피 바람이 불었다. 영세할수록 인건비 부담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경제학회는 최저임금 10% 인상할 때마다 전체 고용이 최대 34만8000명 줄어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내놓았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문 정부가 만든 일자리는 박근혜 정부보다 40만개 적다는 연구결과도 내놓았다.

지난 5년 최저임금 정책은 문 정부 경제 참사의 최대 상징으로 기록될 만하다. 다음달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간판 아래 강행된 최저임금 과속 인상의 폐해를 수습해야 한다. 최저 임금이라지만 고용주가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오래전 최저임금이 정착된 선진국이 지역·업종·연령 등 복합적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차등화·다양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에선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지역 현황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한다. 현재 도쿄는 1041엔이지만, 물가가 낮고 농어업이 많은 이와테·나가사키는 821엔을 적용한다. 이렇게 하면 이와테 같은 시골 동네의 자영업자는 알바 네 명 대신 다섯 명을 쓸 수 있어 고용이 늘어난다.

미국과 캐나다 역시 연령·주별로 최저임금을 따로 정한다. 그리스는 사무직·비사무직으로 나누고, 호주는 직업별·연령별 규정을 따로 두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15~21세 근로자는 연령에 따라 성인 최저임금의 30~75%를 적용받고, 연금을 받는 고령 근로자와 장애인 근로자 등은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는다. 이들에겐 기회가 늘어난다. 영국도 연령별로 차등 적용한다.

최저임금은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장치다. 국내에서도 최저임금 대상자는 20~24세와 60대 이상 고령자에 집중돼 있다. 이들 연령대는 노동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계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면 더 많이 고용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최저임금 제도를 수용하는 게 옳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정교한 설계를 통해 최저임금 차등적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이 휩쓸어 쑥대밭이 된 고용시장을 정상화하는 길이다. 국민은 지난 5년 과속 인상의 역효과를 생생히 체험했다. 이제 그만하면 실험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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