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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갈수록 팽창…‘공공지식인’은 실종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83호 20면

마지막 지식인

마지막 지식인

마지막 지식인
러셀 저코비 지음
유나영 옮김
교유서가

한 해 수만 권의 책이 쏟아지지만, 꼭 봐야 할 것 같은 책은 갈수록 줄어든다. 어쩌다 흥미를 느껴 집어 들면 외국인 저자다. 대학 캠퍼스에 넘쳐나는 외국 박사들은 다 무얼 하는 걸까. 고상한 논문 작성에 매달리다 보니 수준 떨어지는 대중서 집필은 뒷전인 걸까. 그렇다면 대중과 호흡하지 않는 학문은 무슨 소용일까.

이런 현상 혹은 추정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미국인 역사학자가 1987년에 첫 출간한 이 책은 미국 지성계의 지식인 부재 현상을 꼭 집어서 지적한다. 여기서 지식인은 공공지식인(the public intellectual). 전문 분야의 사적 발견에 만족하지 않고 알기 쉬운 언어로 대중에 적극적으로 가닿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멀게는 갈릴레오·프로이트부터, 책에서 마지막 지식인으로 뭉뚱그린 50년대 미국의 C 라이트 밀스, 루이스 멈퍼드,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베티 프리단 같은 사람들이, 저자에 따르면, 어려운 얘기를 무척 쉽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60년대부터 책 출간 시점인 80년대 중반까지 미국 지성계에 공공지식인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게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한 세대의 실종”이라고까지 했다. 당대 지식인 전부를 적으로 돌리는 도발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현상들을 제시하고 원인을 따져본 책이다.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도시 구조 변화도 건드리지만 지식인 소멸의 가장 큰 원인으로 역시 대학 팽창을 꼽았다. 인구가 급증해 이들을 가르치는 대학의 교수 자리가 크게 늘어나자 보헤미안 같은 삶을 살던 독립 저술가들이 대거 대학에 안착하며 문제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학의 젊은 교수들은 더 이상 폭넓은 대중과의 교류를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캠퍼스가 그들의 집, 동료가 곧 독자다. 승진·급여 등을 전문가 동료들의 평가에만 의존하다 보니 관심 쟁점과 통용되는 언어에 영향을 받게 된다. 난해한 학술용어만 사용하다 보니 결국 대중어 소통 능력을 상실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거창하면 공격받을 소지도 생기는 법이다. 책에 수록한 2000년 개정판 서문에서 그동안 쏟아진 비난을 소개했다. 먼 나라, 수십 년 전 얘기를 우리가 왜 읽어야 하나. 우리 지성계 현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기자만의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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