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옷핀·알약·나사 등 평범한 사물서 비범한 아름다움 찾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83호 19면

‘협업의 여왕’ 안윤

MZ세대가 열광하는 패션 브랜드 ‘앰부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윤이 ‘오! 라이카’ 사진전에 걸었던 자신의 사진(녹은 아이스크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인섭 기자

MZ세대가 열광하는 패션 브랜드 ‘앰부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윤이 ‘오! 라이카’ 사진전에 걸었던 자신의 사진(녹은 아이스크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인섭 기자

요즘 MZ세대에선 한정판 신발을 구매했다가 되파는 ‘슈테크(슈즈+재테크)’가 유행인데, 핫 아이템 중 하나가 ‘앰부쉬(AMBUSH)’와 협업한 나이키 덩크 하이다. 발매가 21만9000원 제품이 3배 가격인 60만원 대에 거래되고 있다.

‘매복’이라는 흥미로운 뜻을 가진 앰부쉬는 재미교포 안윤씨와 재일교포 유영기씨 부부가 2008년 도쿄에서 창립한 브랜드다. 일본에서 힙합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남편에게 안윤이 목걸이를 만들어준 게 미국 힙합 뮤지션 칸예 웨스트의 눈에 띄면서 주얼리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다. 옷핀·볼트&너트·병뚜껑 등의 일상적인 제품을 모티브로 금과 보석을 조합한 안윤의 디자인은 비욘세·리한나 등 최정상 뮤지션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2016년에는 의상까지 사업을 확장시켰다. 2년 뒤인 2018년에는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 맨의 주얼리 디렉터로 지명되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2019년 디올이 BTS의 월드투어 의상과 주얼리를 제작했을 때 안윤의 디자인 또한 무대에서 빛났다.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시애틀로 이민을 떠난 안윤은 보스턴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말하자면 그는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패션 디자이너다. “학습을 통한 어떤 룰에서도 자유롭다는 점에선 장점이고, 위험부담이 크다는 점에선 단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직접 부딪치면서 경험하고 습득하는 게 내 스타일이라 실수를 하더라도 틀을 깨는 과정에서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다.”

2022 FW 컬렉션 의상. [사진 앰부쉬]

2022 FW 컬렉션 의상. [사진 앰부쉬]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고, 현재는 일본에 거주하는 세계시민. 안윤의 이런 성장과정은 국적·인종·문화의 경계를 뛰어넘는 그만의 독특한 감성을 낳았고, 그 매력에 빠진 나이키가 2018년 처음 협업을 제안하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특히 나이키가 90년대를 모티브로 한 NBA 컬렉션을 여성 디자이너와 협업한 것은 처음이다. 이후 루이비통,  NBA, 컨버스, 모엣 샹동 등과 협업했고 국내 안경 브랜드 젠틀 몬스터와도 협업하는 등 안윤의 이름 앞에는 ‘협업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펑크부터 힙합까지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펑크는 백인 노동계급, 힙합은 흑인 노동계급의 꿈·희망·에너지를 노래했다. 영어도 잘 못하는 아시아 소녀는 미국에서 성장하며 끊임없이 정체성과 존재감을 스스로 증명해야했는데 그때마다 그 음악들은 큰 힘이 됐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는 게 음악의 힘이고, 나의 패션 디자인 또한 지금의 우울한 젊은이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

옷핀에서 영감을 얻은 주얼리. [사진 앰부쉬]

옷핀에서 영감을 얻은 주얼리. [사진 앰부쉬]

그가 성의 경계가 없는 유니섹스·젠더리스 디자인을 추구하는 이유도 같다.

알약에서 영감을 얻은 주얼리. [사진 앰부쉬]

알약에서 영감을 얻은 주얼리. [사진 앰부쉬]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다. 주얼리 디자인을 시작한 처음부터 내가 여성이라서, 아시아인이라서 ‘이럴 거다’ 하는 선입견에 끊임없이 반항해 왔다. 남들이 그어놓은 선을 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와 앰부쉬는 없었을 것이다. 반지·목걸이 등은 장신구일 뿐, 남성용·여성용 구분은 필요 없다. 그것은 미학적 관심의 차원일 뿐, 사용처는 내가 직접 정해야 한다. 언제나 내 생각이, 내 이야기가 기준이 돼야 한다.”

라이터에서 영감을 얻은 주얼리. [사진 앰부쉬]

라이터에서 영감을 얻은 주얼리. [사진 앰부쉬]

안윤을 만난 건 4월 1일 끝난 ‘오! 라이카’ 사진 전시장에서였다. 20세기 초현실주의 사진의 거장 랄프 깁슨 등 6인의 아티스트가 함께한 사진전에 그도 참여했다. 사진전의 주제는 ‘익숙하지 않은(Out of the Ordinary)’이었는데 그의 사진들은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비롯해 나무·물웅덩이 등 평범해보였다. “익숙하다는 건 뭘까? 매일 아침 걸으면서 보는 도쿄의 아침 풍경은 늘 똑같아서 익숙해 보이지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된다.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평범함(익숙함)과 비범함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데, 그 순간을 결정하는 건 온전히 나의 생각이다. 옷핀·라이터·알약·나사 등 평범한 일상의 사물에서 주얼리로서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