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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뜨거운 감자’ 공매도의 세계]국내 공매도 차입 기준, 미·유럽보다 훨씬 엄격…과도하게 규제하면 시장 위축시키고 주가 정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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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호 11면

SPECIAL REPORT

한국거래소의 공매도 종합상황실에서 직원들이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한국거래소]

한국거래소의 공매도 종합상황실에서 직원들이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한국거래소]

공매도에서 개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코스피 2%, 코스닥 4% 정도에 그친다.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과 기관으로, 공매도의 주된 당사자는 미국·유럽·홍콩·싱가포르 등지의 헤지펀드(사모펀드의 일종)나 글로벌 투자은행(IB)이다. 사모펀드는 공매도에 필요한 주식 차입(借入)이나 대여(貸與)를 하는 데 드는 수고를 덜기 위해 IB 즉,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증권대여 등 헤지펀드가 요구하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투자회사)를 통해 공매도를 한다.

대표적인 프라임 브로커로는 우리가 잘 아는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이 있다. 헤지펀드가 프라임 브로커를 이용하는 것은 자체적으로는 공매도에 필요한 주식 대여가 쉽지 않고, 거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증권 보관 업무 등을 하는 국제보관기관(global custodian)은 증권 차입자에게 엄격한 자격과 기준을 요구하는데, 헤지펀드나 소규모 증권사는 이 요건을 충족하는 게 쉽지 않다. 자본이 풍부한 프라임 브로커는 증권을 차입해 이를 다시 헤지펀드에게 대여하는 ‘중개’가 가능하고, 헤지펀드가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헤지펀드는 차입 물량의 확보를 위해 프라임 브로커와 전문 전자거래플랫폼(전자정보처리장치) 또는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차입 물량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다. 프라임 브로커는 자체 보유 물량이 없을 경우 국제보관기관이나 국내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물량을 차입해 헤지펀드에게 재대여한다.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의 경우, 이러한 과정을 통상 전자거래플랫폼을 통해 진행한다. 쉽게 말해 인터넷 뱅킹처럼 전산상에서 물량이 오고가는 것이다. 그래서 대여·재대여·공매도 물량에 대한 검증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모든 거래가 전산상에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트레이더를 통해 대여·재대여 등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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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 브로커가 총수익스와프(TRS·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익이나 손실을 헤지펀드에게 이전하고 수수료·이자를 받은 상품)와 같은 파생상품 계약을 통해 헤지펀드를 대신해 직접 공매도 포지션을 취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거래소를 통해 공시되는 공매도 잔고는 이러한 파생상품을 통해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공매도 잔고 대량 보유자 공시에 모건스탠리 등 프라임 브로커의 이름이 대거 올라와 있는 것도 그래서다. 실제 공매도 주체인 헤지펀드가 어디이고 누구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외국인이나 기관에게만 공매도 규제가 느슨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차입을 했거나 차입 계약을 완료한 경우에만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다. 로케이트(locate)라고 해서 ‘결제일까지 차입을 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grounds to believe)가 있으면 자유롭게 공매도를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 시장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른바 ‘무차입’ 공매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주식 투자자들이 기관이나 외국인의 무차입 공매도를 의심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8년 한 글로벌 IB가 무차입 공매도로 제재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무차입 공매도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외국인 투자자는 모두 금융당국에 등록돼 관리되므로 의도적으로 범법 행위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다만 앞서 설명한 대로 수작업에 의한 실수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실수 등에 의한 ‘이상(異常)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미국·유럽 등지에서는 시스템의 전산화로 해결하고 있다. 전산화된 방식으로 대차거래 물량이 확보되면 일괄처리(STP) 방식의 공매도가 가능해진다. 일괄처리 방식은 차입 물량의 탐색(차입 물량이 있는지 물어보는 공매도의 첫 단계)부터 공매도 주문의 제출까지 수작업 없이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수 년간 운용사와 증권사들이 시스템 전산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고, 점차 결실을 맺고 있다.

공매도는 글로벌 시장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한 투자전략, 유사종목 간 가격 차이, 현물주식과 선물주가지수와의 가격 차이, 현물주식과 옵션 간의 가격 차이, 현물주식과 주식관련 사채와의 차이, 현재 주가와 적정 주가와의 가격 차이 등을 이용해 다양한 차익거래 투자전략에 이용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매도는 주가의 불균형 현상을 해소하고 주식의 유동성을 제고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기관이나 외국인이 특정 종목의 주가를 낮추기 위해 공매도를 한다는 인식이 있으나, 실제로 이들은 국내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한 경우가 많다. 공매도는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쓰는 전략일 뿐, 공매도 자체를 주된 거래로 하는 경우는 미미하고 매우 드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과 기관 간 차입에 필요한 담보비율 차이 등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들에게 요구되는 담보비율은 140%로 기관(최소 105%) 대비 높고, 개인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만 빌릴 수 있는 데 비해 기관들은 제한없이 빌릴 수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은 어떤 형태의 증거금을 제공하더라도 증거금율을 충족시키면 달리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해외 기관은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담보를 평가한다. 105% 담보를 제공하더라도 담보인정비율이 반영된 ‘감정가’ 기준으로 계산이 되기에 실질적 담보 비율이 개인들보다 높을 수 있다. 또 개인 투자자와 달리 차입 후 대여자로부터 회수 요청(리콜)이 있을 경우 언제라도 상환해야 한다. 필자가 글로벌 IB에서 공매도 상품을 제공하는 트레이더로 근무하던 2008년 금융위기 때 하루에도 수백 개 이상의 상환 요청을 받은 기억이 있다. 만약 개인 투자자가 이 같은 상황에 몰린다면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지금의 제도가 꼭 개인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공매도를 두고 여전히 찬반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데, 미국이 공매도 제도에 유연하게 대처해 온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공매도 규제는 결국 시장 위축은 물론 주가 정체라는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오로지 개인 투자자가 입게 된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공매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와 유관기관의 노력이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규제만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는 없다. 규제 보다는 선진시장의 사례를 참고해 개인을 포함한 민간과 정부가 협력해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공매도 전면 재개를 앞두고 있는 우리도 바람직한 공매도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하재우 ㈜트루테크놀로지스 대표이사. 미국 워싱턴대에서 정보시스템·금융을 전공했다. 모건스탠리 홍콩지사에서 10년간 공매도와 대차거래 업무를 담당했고, 이후 미국계 블록체인 회사 R3 한국총괄대표를 역임했다. 공매도 전 과정의 전산화를 지원하는 스타트업 ㈜트루테크놀로지스를 창업,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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