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뜨거운 감자’ 공매도의 세계]‘업틱룰·과열종목’ 제도처럼, 개미 보호하려 만든 규제…되레 개미 접근 막아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83호 10면

SPECIAL REPORT

“해외와 달리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성해 개인 투자자들만 불리하게 하는 공매도 제도를 없애 달라.”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이른바 ‘동학개미’들이 지속적으로 내고 있는 목소리다. 청와대의 온라인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도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공매도 제도의 전면 폐지를 요구한 글이 두 차례나 20만 명 넘게 동의할 만큼 큰 호응을 얻었다. 그사이 정부도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증시의 불안정성이 커지자 정부는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시켰고(2020년), 지난해엔 이를 연장하는 한편 코스피200·코스닥150 등 대형주(株)에 한해 공매도 부분 재개를 결정했다.

동학개미들 공매도 폐지 강력 주장

그러나 올해 안엔 공매도 완전 재개가 유력한 상황이라 동학개미들은 최근 더 뜨겁게 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해외 증시에도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공매도 자체를 불신하는 이유는 국내만 유독 자본력 있는 기관·외국인 투자자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가 짜여있다고 생각해서다. 예컨대 현재 국내 공매도 제도에서 기관·외국인은 상환 요구를 받을 때만 응하면 돼 사실상 상환 기한에 제한이 없다. 하지만 개인은 90일 안에 의무적으로 상환(만기일에 상환 후 다시 빌려야 기한 연장 가능)해야 한다. 그나마 개선된 제도가 지난해 시행되기 전까진 60일 안에 상환해야 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미국 증시에선 주식 대차 계약상의 공매도 상환 기일이 되면 모든 투자자가 반드시 상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개선책으로 개인의 상환 기한을 늘려준 것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동학개미들은 주장한다. 국내 증시의 공매도에선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워낙 낮아서다. 정 대표는 “기관·외국인의 상환 기일을 개인과 마찬가지로 정해두고, 기한 연장도 불가능하도록 하면서 적어도 1개월 안엔 같은 종목에 대해 공매도를 할 수 없게 해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사실 한국은 공매도 규제가 강한 나라다. 역대 정부는 증시에서 개인을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보고 이런 규제 강화에 집중했다. 대표적인 게 ‘업틱룰’(up-tick rule)의 존재다. 업틱룰은 공매도에서 직전 거래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호가를 내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다. 큰손들이 인위적으로 주가 하락을 조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다. 그런데 현재 주요국 가운데 이 같은 업틱룰을 전면 도입한 곳은 한국과 홍콩 두 나라뿐이다. 미국과 일본은 장중 주가가 전(前)거래일 대비 10% 이상 하락한 경우에만 업틱룰을 적용한다. 유럽연합(EU)과 영국, 호주는 아예 업틱룰을 도입하지 않았다.

오직 국내에만 존재하는 규제도 있다. 2017년 시행된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제도다.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공매도 규모가 크게 증가한 종목의 다음 거래일 공매도를 막는 제도다. 이와 함께 한국거래소는 거래일마다 종목·업종별 공매도 거래 현황을 투자자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공표하고 있다. 또 종목과 투자자별로 공매도 잔고를 공시해 공매도의 투명성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나서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은 공매도 잔고 공시를 한국처럼 세세하게 하지 않고 있다. 미국·홍콩·호주는 종목별 공매도 잔고만, 일본·EU·영국은 투자자별 공매도 잔고만 각각 공시하고 있다.

미, 무차입 공매도 20년 이하 징역

문제는 이처럼 개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강력한 규제가 거꾸로 공매도에 대한 개인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매도 잔고 공시는 이에 해당되지 않지만, 업틱룰이나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이 그렇다. 예컨대 업틱룰이 있는 한 공매도에서 매수호가보다 매도호가 쪽으로 큰손들의 주문이 쏠릴 수밖에 없는데, 이때 지정가 매수주문들은 시장가 매수주문이 나와 해소될 때까지 체결되지 못한 채 쌓이기만 한다. 개인은 오래 기다렸다가 더 비싸게 주식을 사야 한다는 얘기다. 개인 입장에서 보면 외려 기관·외국인과 동등한 수준으로 공매도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막는 역(逆)규제인 셈이다. 증권가 등에 따르면 국내 증시 공매도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96~98%는 기관·외국인의 몫이라는 얘기다. 반면 규제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미국과 유럽에선 35~40%, 일본에선 25%가량 비중을 개인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증시의 공매도 비중도 한국은 4%대일 때 미국은 46.7%, 일본은 41.1%에 달했다(2020년 기준).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더구나 지금껏 한국은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수위가 해외 주요국보다 솜방망이 수준으로 낮아 “정작 개인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규제엔 소홀한 게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예컨대 미국에선 고의로 무(無)차입의 공매도를 하고 결제는 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20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달러(약 60억원) 이하 벌금이라는 강력한 처벌 대상이 된다. 영국도 벌금의 상한선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가혹하리만치 벌금을 부과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2010~2020년 불법 공매도로 적발된 법인 101곳 중 56곳이 주의 처분만 받았을 만큼 처벌이 약했다. 이에 한국도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2020년 말 자본시장법을 개정, 1년 이상의 징역(최대 30년, 가중 시 50년) 또는 부당이득액의 3~5배 이하 벌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했다. 다만 이렇게 바꾼 법이 실효성을 동반하는지는 1년 반째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이 구형할 때 감형 요소가 있어 장기간의 징역 사례가 실제로 나오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게 비판론자들의 생각이다.

새 정부,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추진

다음 달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일단 이를 고려 중이다. 최지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5일 “검찰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거래소 간에 불법 공매도 모니터링 시스템과 수사 협력 체계 구축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불법 공매도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 강화에 나설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불법 공매도 근절은 개인한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동학개미들의 주장대로 공매도 제도 자체를 전면 폐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결국 이들이 기관·외국인과 동등한 조건으로 공매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새 정부가 만들어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동엽 국민대 재무금융회계학부 교수는 “공매도는 기관·외국인과 개인 간의 정보 비대칭 문제 해소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며 “공매도가 없는 경우 특히 중소형주 등은 특정 종목에 대한 부정적 투자의견이나 새로운 정보가 반영되지 않아 주가가 왜곡되고, 거품이 크게 형성돼 개인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은 규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공매도에 대한 (개인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규제가 지나치게 강화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투연은 공매도 제도를 유지하되 기울어진 운동장은 바로잡으면서 개인 접근성을 끌어올리려면 ▶기관·외국인의 상환 기한을 개인과 똑같은 90일로 변경 ▶현재 105%인 기관·외국인의 담보비율(주식을 빌렸을 때 잔고로 유지)을 개인과 똑같은 140%로 변경 ▶기관·외국인의 증거금 도입을 법제화 ▶종목당 시가총액의 3~5% 범위 안에서만 공매도가 가능한 총량제 도입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제안서를 4일 인수위에 전달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