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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뜨거운 감자’ 공매도의 세계]400년 전 동인도회사 “해괴한 투자로 고통”…한미약품, 악재 속 공매도로 하루 18% 급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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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호 09면

SPECIAL REPORT 

셀트리온은 지난 10여 년간 ‘공매도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공매도에 시달렸다. [연합뉴스]

셀트리온은 지난 10여 년간 ‘공매도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공매도에 시달렸다. [연합뉴스]

“보유하지도 않은 주식을 내다 파는 해괴한 투자 방식에 선량한 투자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 온 글이 아니다. 1609년 세계 최초의 주식 상장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경영진이 의회에 제기한 청원이다. 당시 동인도회사는 해고된 전직 직원 아이작 르 메르의 악의적 공매도 공격에 직면했다. 이 사건은 최초의 공매도로 기록돼 있다. 전례가 없었던 탓에 동인도회사는 법정 소송까지 벌여야 했다. 대법원까지 간 소송 끝에 동인도회사는 일부 승소했고, 네덜란드 정부는 1610년 2월 공매도 규제안을 마련했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같은 일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동인도회사의 청원과 유사한 내용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대개 개인 투자자의 청원이지만, 이따금 동인도회사처럼 기업 입장에서 공매도를 규제 혹은 폐지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한다. 공매도의 힘이 얼마나 세길래 4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걸까. 주요 공매도 사례를 통해 공매도의 위력을 짚어봤다.

#공매도의 대명사 ‘셀트리온’

국내 증시에서 셀트리온은 지난 10여 년간 ‘공매도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공매도의 공격 대상이었다. 2008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셀트리온은 2010년부터 외국계 투자자들의 공매도 타깃으로 떠올랐다. 신약 등에 대한 기대감 속에 주가는 급등하는데, 연구개발 기간이 긴 제약·바이오 기업 특성 때문에 공매도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공매도 때문에 셀트리온 주가는 오를 만하면 내리고, 오를 만하면 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이에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2013년 4월 매각을 추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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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1공장. [연합뉴스]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1공장. [연합뉴스]

당시 서 회장은 “공매도 때문에 연구 자금을 주가 방어에 쓰고 있으니 회사를 위해서라도 글로벌 제약회사에 경영권을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서 회장은 매각 의사를 철회했지만 공매도와의 악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올 초엔 공매도가 몰리면서 2주 만에 주가가 26%나 하락했다. 2018년부터 부각됐던 분식회계 논란이 공매도에 불을 붙인 것이다. 분식회계 논란은 지난달 11일 금융당국으로부터 ‘고의성 없는 과실’이라는 판정을 받으며 일단락됐다. 덕분에 주가도 소폭 반등했다. 그러나 이 회사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여전히 공매도를 향한 분노를 거두지 않고 있다.

#골드만삭스 불법 공매도

2018년 6월엔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소문으로만 돌았던 외국계 증권사의 불법 공매도가 사실로 확인된 사건이 터졌다. 그해 5월 30~31일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은 국내 증시에서 300여 종목에 매매 주문을 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은 대차(대여)를 확정하지 않고 대규모 공매도 주문을 낸 것이다. 국내 증시에선 차입공매도(공매도 주문을 낼 때 미리 주식을 빌리는 거래 방식)만 허용하고 있는데, 골드만삭스는 이를 어기고 무차입 공매도를 한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분석에 따르면 당시 골드만삭스가 공격한 기업 156곳 가운데, 119곳의 주가가 7거래일 안에 하락했다. 하락한 기업들의 시가총액 감소액은 총 1258억원에 이른다. 당시 공매도 공격을 받은 삼부토건은 7거래일 동안 주가가 11% 빠졌다. 경실련 측은 “미결제 사고로 금융당국에 적발되지 않으면 외국인들은 얼마든지 무차입공매도가 가능한 것이 한국 증시”라며 금융당국에 주주권익 보호를 촉구했고 금융당국에선 불법공매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등 공매도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은 이 사건으로 75억원의 과태료를 냈는데, 이듬해 2월 또 다시 무차입 공매도를 했다. 이 사건으로 기관·외국인의 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의심은 계속되고 있다.

#내부정보 활용 공매도 ‘한미약품’

공매도가 불법 주식 거래와 연루되면 화력은 더 세진다. 2016년 한미약품 사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해 9월 한미약품은 공시를 통해 글로벌 제약회사 베링거인겔하임과의 신약 라이센스 계약 해지 사실을 공개했다. 공시가 나오면서 한미약품 주가는 이날에만 18% 넘게 빠졌다. 대규모 호재가 사라진 것이라 주가 하락도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회사 측이 신약 라이센스 계약 해지를 공식 발표하기 30분 전 대규모 공매도 투자가 이뤄진 것이다. 공식 발표 전 이미 공매도 물량 10만4327주가 시장에 쏟아지면서 주가가 곤두박질 친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로 인해 주가가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며 분노했다. 공매도 세력이 내부정보를 이용했을 것이란 의혹이 커지자 검찰도 수사에 들어갔다. 이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회사 관계자 45명을 기소하면서 내부정보 유출은 사실로 밝혀졌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오랜 기간 국내 증시를 흔든 공매도 관련 사건·사고는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에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라며 “그러나 모든 제도가 그렇듯 이 과정을 통해 더 완벽하게 변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액주주의 반란 ‘게임스톱’

미국의 게임스톱 매장. 게임스톱은 큰손들의 공매도로 논란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게임스톱 매장. 게임스톱은 큰손들의 공매도로 논란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개인 투자자나 기업이 마냥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지난해 1월 미국에서 벌어진 게임스톱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게임기·게임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파는 곳인데, 헤지펀드는 온라인 게임이 확장하자 이 회사의 주가가 내릴 것으로 보고 대규모 공매도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부정적 사업전망과 공매도가 몰리면서 1주당 10달러까지 내렸던 주가는 공매도에 대항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반전을 맞았다. 유년기 게임팩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던 개인 투자자들이 게임스톱을 매수하며 공매도 세력에 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게임스톱 주가를 400달러(1월 말)까지 끌어올리면서 공매도 세력의 항복을 받아 내기도 했다. 정치권과 재계 등 각계각층에서 지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당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소유하지 않은 집은 팔 수 없고, 소유하지 않은 차도 팔 수 없는데 소유하지 않은 주식은 어째서 팔 수 있나”라며 개인 투자자들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이후 이 회사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올 들어서도 3월 한 때 90달러대까지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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