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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뜨거운 감자’ 공매도의 세계]“대차잔고 70조대, 공매도 폭탄 우려”…전면 재개 놓고 찬반 공방 가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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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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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이모(48)씨는 최근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전량 손절했다. 이 회사 주가는 공매도가 몰리면서 힘을 쓰지 못하더니 지난달 말에는 30만원대까지 하락했다. 한때 128조원을 넘었던 시가총액은 104조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이씨는 “코스피200지수에 편입되면 기관 매수 자금이 들어와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했는데 오히려 공매도의 먹잇감이 됐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충격 속에 2020년 전면 금지됐던 공매도는 지난해 5월부터 코스피200·코스닥150지수 편입 종목에 한해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개미들에게 공매도는 ‘공공의 적’

요즘 주식시장에서는 공매도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공매도 부분 재개 1년이 다가오면서 전면 재개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부분 재개 이후 조금씩 증가세를 보이던 공매도가 최근 가파르게 늘면서 주요 기업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판 다음 주가가 내리면 주식을 사서 갚는 매매 기법이다. 매매 기법 자체가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것이어서 공매도는 과거에도 지금도 주식 투자자들에겐 ‘공공의 적’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공매도가 제도적으로 기관이나 외국인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어 더욱 적대적이다. 심지어 기관·외국인이 특정 종목의 주가를 낮추기 위해 공매도를 한다고 의심하는 개인 투자자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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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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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코스피 일평균 공매도 거래대금은 5077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5월 공매도 부분 재개 이후 기록한 일평균 4279억원을 넘어섰다. 월별로는 올 1월 일평균 5751억원을 기록한 뒤 3월 4883억원으로 전년대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공매도가 몰리면 주가는 대체로 약세를 보인다. 공매도 투자자가 내는 매도 주문이 한꺼번에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선 공매도가 반가울 리 없다. 게다가 공매도 특성상 공매도 상위 종목 대부분은 개인 투자자의 매수 상위 종목과 겹친다. 이씨가 투자한 LG에너지솔루션만 하더라도 3월 개인 순매수 8위에 오른 종목이다.

하지만 공매도가 허용된 지난달 11일부터 5일간 LG에너지솔루션엔 8260억원어치의 공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3월 개인 투자자 순매수 3위에 오른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에는 공매도 잔고가 4365억원가량 쌓였다. 두산중공업은 3월 초 대선 이후 원전 정책 기조 변화 수혜 가능성이 부각되며 3거래일 만에 12.3%나 올랐으나 공매도 공세 속에 상승폭을 모두 반납한 상태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개인은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보고 투자를 하고, 이로 인해 주가가 오르면 주가에 거품이 끼었다고 보는 게 공매도 투자자”라며 “투자자 순매수 종목과 당연히 겹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HMM의 최근 흐름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회사는 2월 14일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호실적을 발표한 뒤 3월 초까지 주가가 45.3% 급등해 3만5400원을 찍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거래대금 가운데 공매도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3%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주가가 뛰자 공매도 비중이 치솟기 시작했고, 지난달 말에는 25.75%까지 상승했다. 하루 거래되는 주식 4주 가운데 1주가 공매도였단 얘기다. 이후 HMM의 주가는 7일 2만5800원까지 떨어졌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물동량이 위축되고 중국의 상하이 봉쇄로 중국 내 항만 적체가 발생하는 등 불안 요소가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증시 미치는 영향 제대로 조사해야

공매도 공세는 국내 증시의 ‘대장주’ 삼성전자도 피해가지 못한다. 3월 개인 투자자 순매수 1위에 오른 삼성전자에는 지난달 11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7000억원이 넘는 공매도 주문이 몰렸다. 이 영향으로 올 1분기 역대 최고치인 77조원의 매출(잠정)을 달성하고도 ‘6만전자’로 주저앉았다. 호실적에도 공매도가 몰린 건 반도체 업황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외국인이 지난달에만 삼성전자 주식 2301만주를 팔아 치운 것이나, SK하이닉스에도 공매도가 몰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김영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연초 97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미국 마이크론 주가가 70달러대로 떨어지고 공매도가 몰리는 등 반도체 업종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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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이라고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개인 순매수 1위 종목이자 코스닥 시가총액 1위 종목인 에코프로비엠에 공매도 잔고가 1898억원이나 몰리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코스닥 시가총액 2위 펄어비스는 공매도 잔고가 2739억원에 이른다. 공매도 투자자들은 주가에 거품이 끼었다고 보는 것이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코스피200에서는 공매도 잔고와 주가 사이에 뚜렷한 경향이 나타나지 않는 반면 코스닥150에서는 공매도 잔고 감소와 주가 반등의 비례적 경향이 있다”며 “코스닥150 구성 종목의 경우 아무래도 시장 자체가 작다보니 공매도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선 공매도가 당분간 줄지 않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공매도 대기자금인 대차잔고가 지난달 23일 71조9770억원을 찍은 뒤 70조원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매도가 금지됐던 지난해 4월 말 48조원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20조원가량 늘어난 셈이다. 특히 공매도 상위 종목 대부분은 대차잔고(주식을 빌린 뒤 갚지 않은 물량)도 많다. 대차잔고가 급격히 줄어들지 않는 한 이들 종목에 당분간 공매도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단 얘기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국내에선 ‘차입 공매도’(주식을 빌린 뒤 공매도 주문을 넣는 거래)만 허용하고 있어 합법적 공매도 거래를 위해선 사전에 대차 거래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공매도 전면 허용은 시기상조란 반응이 지배적이다. 지금 상황에서 공매도를 전면 재개했다간 국내 증시에 폭탄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5일 “정부와 금융당국 일각에선 개선책을 내놓지 않고 공매도 전면 재개를 주장하고 있는데, 공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한 뒤 재개해도 늦지 않다”며 “지금은 한국 증시에서 공매도의 영향을 제대로 조사해야 하는 단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과도하단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공매도 제도는 1969년 신용거래융자 제도와 함께 도입됐는데 두 제도는 방향만 다를 뿐 완전히 동일한 제도”라며 “개인 투자자들이 신용거래융자 제도를 자주 활용하는데, 일부 불법 공매도를 예로 들며 공매도 제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지수 편입 땐 103조 자금 유입 전망

전문가들은 공매도를 언제까지나 막아둘 수만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처럼 공매도를 제한해선 한국 증시가 선진 시장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천억 달러의 추종 자금을 거느린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에 편입되기 위한 조건 가운데 하나도 공매도 전면 허용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증시가 MSCI 선진국지수에 편입될 경우 853억 달러(약 103조원)가량의 투자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추정된다. 코스피 일평균거래대금(약 19조원)의 5배에 달하는 자금이 한 번에 유입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에선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시도한 바 있다. MSCI는 매년 6월 선진국지수와 신흥국지수를 재분류하기 때문에 올해 편입을 노리기 위해선 늦어도 5월엔 공매도를 전면 재개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5월 공매도 부분 재개 이후 전면 재개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전면 재개 논의는 미루고 있다. 전상경 한양대 교수(파이낸스경영학)는 “MSCI는 주가에 거품이 꼈을 때 제대로 된 가치를 찾아가게 하는 도구인 공매도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라며 “주식 시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합리적인 가격이 얼마인지 찾기 위해서인데 개인 투자자 손실을 우려하다 시장이 왜곡되면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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