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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 가장 흔한 재료, 진흙으로 빚은 아프리카의 기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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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호 26면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지어진 오페라 마을(2016년), 지붕을 들어올려 자연환기가 되게 했다. [사진 하얏트재단]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지어진 오페라 마을(2016년), 지붕을 들어올려 자연환기가 되게 했다. [사진 하얏트재단]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히는 부르키나파소 출신 원주민이 세계 건축계의 최정상을 차지했다. 지난달 미국 하얏트 재단이 발표한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는 프란시스 케레(56)였다. 프리츠커상의 43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수상자다. 1979년 만들어진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린다.

이례적인 수상자를 배출한 듯 한데도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프리츠커상의 지향점을 선명하게 보여준 결과였기 때문이다. 2017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건축사사무소 RCR의 세 공동대표가 지목되자, ‘듣보잡’ 시골 건축들이 큰 상을 받았다는 것에 떠들썩했다. 당시 영국 가디언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little Known)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트리오, 프리츠커상을 받았다’고 기사 제목을 뽑을 정도였다.

오지마을을 깨운 건축

케레의 첫 작품인 간도 초등학교(2001년). [사진 하얏트재단]

케레의 첫 작품인 간도 초등학교(2001년). [사진 하얏트재단]

2010년 들어 프리츠커상의 이런 경향은 더 뚜렷해졌다. 지역의 가치를 담는 건축, 지역에서 행동하는 건축 더 나아가 삶과 사회를 바꾸는 건축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서구, 백인, 남자 중심이던 프리츠커상의 기조가 완전히 바뀌었다”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굉장히 한국적인 상황에서 보편적인 이슈를 담아내 주목 받았듯이 지역성 안에서의 보편적인 가능성을 발굴하고, 사회 공동체에 기여하는 건축에 대해 건축계도 주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축이 지역의 특성을 담아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건축이 과연 그런 힘을 갖고 있을까. 프리츠커상의 심사위원단은 케레의 작업에서 그 가능성을 봤다. “건축에서 유일무이한 등대 역할을 했다” “매우 척박한 땅에서 지구와 지역주민을 위해 지속가능한 건축을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케레는 아프리카의 진흙으로 사회를 바꿨다.

휠체어를 탄 사람을 배려해 창을 낸 건강과 복지를 위한 센터(2014년). [사진 하얏트재단]

휠체어를 탄 사람을 배려해 창을 낸 건강과 복지를 위한 센터(2014년). [사진 하얏트재단]

흔하디 흔한 진흙이라니.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딱 이랬다. 가난한 동네에서 독일로 유학까지 다녀온 케레에게 마을 사람들의 기대가 컸던 터다. 케레가 진흙으로 초등학교를 짓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진흙은 동네에서 가장 흔한 재료이자, 가난한 집의 상징이었다. 당장 “겨우 진흙으로 학교를 짓겠다고 밭에서 일하는 대신 그렇게 오랫동안 유럽에서 공부한 거냐”는 원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케레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흔한 지역의 소재를 활용해 발전시키는 것이 바로 혁신”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척박한 땅에서 일회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건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케레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함께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진흙에 시멘트 등을 섞은 강화 벽돌을 만들었고, 학교 지붕에 특별한 처방을 했다. 마을의 집이 지푸라기로 지붕을 만들었다면 케레는 값싼 금속 막대로 얇은 강판 지붕을 들어 올렸다. 45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날씨에 전기도 잘 안 들어오는 마을에서 자연 환기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는 “척박한 기후와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항상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처럼 건물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최대한 적게 투입하고 조금 다른 장치로 큰 효과를 보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척박한 땅에서 케레가 일궈낸 혁신이었다. 그는 이 첫 프로젝트로 이슬람 ‘아가 칸 건축상’(2004년)을 받았고,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지은 ‘반쪽짜리 좋은 집’. [사진 하얏트재단]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지은 ‘반쪽짜리 좋은 집’. [사진 하얏트재단]

케레가 진흙 학교에 골몰했던 것은 그의 성장 배경과 맞닿아 있었다. 그는 부르키나파소의 간도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전기도, 깨끗한 식수도, 학교도 없는 곳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케레에게 글을 가르쳤던 아버지는 아들이 7살이 되자 도시의 학교로 보냈다. 학교 환경은 열악했다. 한반 학생 수가 150명인데 40도가 훌쩍 넘는 더위에 학교에서 급우가 죽는 일도 있었다.

그가 2013년 테드(TED) 강연에서 밝힌 일화다. 휴일을 맞아 집에 들른 케레가 다시 학교에 갈 때면 그는 마을 풍습에 따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작별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때 간도의 모든 여인이 옷깃을 열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마지막 동전 한 닢을 케레에게 건넸다. 이 모습에 감명 받은 7살 케레가 엄마에게 물었다. “왜 모든 여인이 저를 사랑하는 거죠?” 그러자 엄마는 말했다. “그들이 너의 교육에 도움을 주는 것은 네가 성공해서 돌아와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바라서란다.” 케레에게 ‘공동체’가 각인된 사건이었다.

프란시스 케레가 지은 쇼게 중고등학교(2016년). 건물 바깥에 나무 기둥을 설치해 뜨거운 햇빛을 차단 할 수 있게 했다. [사진 하얏트재단]

프란시스 케레가 지은 쇼게 중고등학교(2016년). 건물 바깥에 나무 기둥을 설치해 뜨거운 햇빛을 차단 할 수 있게 했다. [사진 하얏트재단]

간도 초등학교 프로젝트는 일회성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선생님을 위한 주택, 도서관 등이 잇따라 지어졌다. 케레의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이제 다른 지역의 건설현장을 진두지휘하며 돈을 번다. 그가 마을 사람들을 훈련시켰던 이유이기도 했다. 건축을 통해 마을이 영감을 얻고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밝힌 수상 소감은 이렇다. “부자라고 해서 물질을 낭비해선 안 되고, 가난하다고 해서 더 좋은 품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누구든 좋은 품질과 고급스러움과 편안함을 누릴 자격이 있다.”

하얏트 재단의 톰 프리츠커 회장은 “케레는 엄청나게 극빈한 아프리카 땅에서 지역과 지역민을 위한 지속가능한 건축을 개척하고 있다”며 “그는 건축가이자 봉사자로서 때때로 잊히는 세계의 한 지역에서 수많은 주민의 삶과 경험을 개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란시스 케레. [사진 하얏트재단]

프란시스 케레. [사진 하얏트재단]

한때 건축계는 ‘트로피 건축’에 열광했다. 더 높게, 더 크게, 더 화려하게 짓는 것이 중요한 시대였다. 20세기 초 미국 뉴욕에 지어진 102층짜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첫 사례였다. 중동과 아시아의 신흥 도시마다 초고층 건축물 건설에 골몰했다. 더 높게, 더 크게 지으며 경제력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이런 유행과 더불어 스타 건축가들도 바빠졌다. 이들은 세계의 러브콜을 받으며 일 년 중 상당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오가는 데 써야 했다. 아무리 긴 여정이더라도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기내용 캐리어에 압축적으로 짐을 싸는, 짐 싸기의 달인이 된 건축가들이 많을 정도다.

2010년 들어 프리츠커가 주목하는 건축의 방향성이 조금 달라졌다. 지역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건축가가 상을 받기 시작했다. 2016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저소득층을 위한 ‘반쪽짜리 좋은 집’(half of a good house)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집을 반만 짓고 나머지는 거주민이 스스로 지을 수 있게 비워뒀다. 이 프로젝트는 부족한 정부지원금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거주민에게 동기부여와 성취감을 안겼다. 이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는 대학 시절을 제외하고 고향인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지방의 소도시 ‘올로트(Olot)’를 벗어난 적 없는 건축가였다. 이어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단지를 설계한 인도 건축가, 밀도 높은 도시에서 질 좋은 주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프랑스 건축가 등이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스타 건축가 시대의 종말

매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이런 질문이 쏟아진다. ‘왜 한국 수상자는 없느냐’고. 프리츠커상의 최근 트렌드로 봤을 때 질문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왜 한국에는 우리의 공동가치를 담은 건축물, 산적한 도시·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건축물이 없느냐’고 물어야 한다. 박정현 건축평론가(마티 편집장)는 “특히 공공건축물 중에서 우리의 지역을 대표하고, 우리의 공동정신을 담았다고 꼽을 수 있는 건축물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건축이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건축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지역에 정말로 필요한 공간이 무엇이고 그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살피는 기획의 부재, 무조건 싸게 지으려는 최저가 입찰 방식, 지자체장의 임기에 따라 쫓기는 공사 기간, 공사 과정에서 설계를 마음대로 바꾸는 풍토…. 한국 사회가 만들어 내는 건축물 수준이 이렇다. 강미선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좋은 공공건축물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행정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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