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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서 우크라 총알 보낸다"…돈쭐 나는 '애국노 기업'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직장인 이모(28)씨는 최근 지인 모임이 있을 때마다 우크라이나 제과기업 과자를 사 간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주변의 관심도를 높이고,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돕자는 취지에서다. 이씨는 “온라인에 우크라이나 과자 구매 인증 글이 올라온 걸 보고 호기심에 구매하기 시작했다. 과자를 사 먹을 때마다 우크라이나에 총알 하나라도 보내주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달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한 수입과자판매점의 매대. 우크라이나 과자 제품 진열대 위에 ″우크라이나를 응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종이에 적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달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한 수입과자판매점의 매대. 우크라이나 과자 제품 진열대 위에 ″우크라이나를 응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종이에 적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밈(meme)’ 된 우크라 기업

러시아와 장기전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시민들의 이색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식품·비디오게임 등 우크라이나 기업이 만든 제품을 구매한 뒤 온라인에 인증 글을 올리는 식이다. 일부 기업의 제품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밈(meme)’으로 자리 잡았다.

우크라이나의 전임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가 설립한 제과기업 ‘로셴’이 대표 사례다. 이 회사의 유명 제품인 과자와 사탕을 구매해서 우크라이나를 돕자는 운동이 온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다. 포로셴코가 직접 무장을 한 채 수도 키이우에서 대(對)러시아 항전을 벌이는 모습이 외신을 통해 보도된 게 발단이었다.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EPA=연합뉴스]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EPA=연합뉴스]

퇴임 후 막대한 규모의 부정부패가 드러나면서 해외로 망명했던 포로셴코가 나라를 지키러 돌아왔다는 사연이 알려지자 구매 운동에 탄력이 붙었다. 운동에 참여한 일부 네티즌은 “애국노(애국과 매국노를 합친 말로 온라인상에서 포로셴코의 별명) 기업 후원했다” “먹어서 응원하자”는 게시물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렸다.

수입 과자를 주로 취급하는 자영업자들도 뜻밖의 특수를 누리고 있다. 서울에서 수입과자판매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원래 소수의 마니아층이 찾던 제품이었는데, 전쟁이 난 이후 우크라이나 과자를 사 가는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크라이나를 응원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매장 한쪽에 로셴 제품을 쌓아둔 과자 판매점 사진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네티즌이 로셴 사탕을 구매한 뒤 쿠팡에 올린 후기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 네티즌이 로셴 사탕을 구매한 뒤 쿠팡에 올린 후기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소셜미디어 타고 퍼지는 이색 후원

지난달부터 온라인에선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하는 온정의 손길이 이어져 왔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후원 계좌를 안내하거나 기부를 인증하는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왔다. 우크라이나 현지 숙소를 예약한 뒤 숙박비만 내고 이용하지 않는 이른바 ‘착한 노쇼(No Show)’ 운동이 등장하기도 했다.

성금 기부 등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이색적인 후원에 나선 시민이 늘어난 건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지난달 착한 노쇼 운동에 참여한 박현아(32)씨는 “정부나 단체를 통해 기부하기보단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고 싶었다. 착한 노쇼 운동을 소셜미디어에 인증한 게시물이 자주 보여서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시완이 '착한 노쇼'로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응원했다. [뉴스1, 임시완 인스타그램]

임시완이 '착한 노쇼'로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응원했다. [뉴스1, 임시완 인스타그램]

최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집단 학살했다는 증거가 연이어 나오면서 시민들의 후원 행렬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외신 등은 러시아군이 키이우 북서부 도시 부차에서 민간인 410여명을 고문·살해했다고 전했다. 아직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 남아 있어 민간인 피해자는 더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보도 이후 국내 구호단체에 우크라이나를 돕고 싶다는 문의도 급증했다고 한다. 한 복지재단 관계자는 “대선 등 굵직한 국내 이슈로 시들해졌던 후원 문의가 요 며칠 새 부쩍 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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