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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허리띠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던 10년전 약속은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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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공식 집권 10년 맞은 김정은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지난 2018년 10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다. 개인적으로는 9년 10개월 만의 방북이었다. 안내를 맡은 북한 당국자들은 새로운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안면이 있거나 새로 인사를 나눈 북한 당국자들 모두 같은 질문을 해댔다. “오랜만에 평양에 와보니 어떻냐”며 달라진 평양에 대한 ‘평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평양의 거리보다 달라진 건 북한 당국자들의 태도였다. 대표적인 장면 하나.

“안내 선생! 저거 사진 하나 찍어도 되나요?”

“찍으시라요.”

“저것도 일없죠?(괜찮죠?)”

“아니, 찍으라는데? 묻지 말고 찍으시라요.”

북한이 새로 조성한 여명거리를 지날 때는 오히려 사진 촬영을 권하기도 했다. 북한은 외부인, 특히 남측 인사들의 사진촬영을 대단히 민감해한다. 자신들의 낙후한 모습이 알려지는 걸 꺼려서다. 예전엔 기자들의 카메라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촬영한 사진을 삭제하라고 요구하기 일쑤였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엔 출국 전날 촬영한 사진을 전부 인화해 ‘검열’할 정도였다. 때문에 북한에서 촬영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지정된 장소 이외에선 불가였다. 달라진 북한 당국자들의 모습이 낯설어 다시 한번 물었다.

집권초 자신의 직책, 사람, 경제 바꾸며 ‘변화’에 방점
최근엔 변화 거부, 경계하던 ‘구태의연 모드’로 회귀
핵, 미사일, 정찰위성 등 각종 카드 총동원 움직임도
다시 자력갱생 내세우며 한반도의 봄, 겨울로 급선회
북한 주민 고달픈 삶 지속되며 경제회복도 더뎌질듯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이던 2012년 4월 15일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집권후 첫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더이상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이던 2012년 4월 15일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집권후 첫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더이상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이번엔 짜증 섞인 반말조의 대답이 돌아왔다.

“정 선생!! 구태의연하게 왜 그런걸 자꾸 물어? 옛날의 우리가 아니야.”

‘그 전의 모양이나 상태가 변함이 없고 여전하다’(『조선말대사전』)는 부정적인 뜻의 구태의연이라는 표현은 북한 매체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지만 북한 당국자들을 20년 가까이 만나면서 ‘구태의연’을 직접 들은 건 2018년 방북 때가 처음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 매체에 ‘구태의연’이 등장하는 빈도가 늘었다는 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하들을 질책하거나 교양자료에 수시로 등장하고 있음을 짐작게 했다.

김 위원장이 공식 집권한 지 11일로 10년이 된다. 그는 최고지도자에 오른 뒤 변화라는 화두를 던졌다. 자신이 맡은 최고지도자 직책의 명칭을 제1비서·위원장·총비서(이상 당 최고위직), 국방위 제1위원장·국무위원장(국가수반 직책) 등으로 바꿨다. 국가 운영의 규범으로 삼고 있는 노동당 규약이나 헌법도 여러 번 수정·보충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상징인 공식 시장도 400개 넘게 만들었다.

참모들의 교체는 말할 것도 없다. 죽을 때까지 원로들의 자리를 보존해 주던 아버지 시대와 달리 경륜이나 명분보다는 실적을 강조했다. 지난해 초 당 경제부장 김두일을 임명한 지 한 달 만에 경제계획을 잘못한다며 교체한 일도 있다. 세대교체는 물론이고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었다. 김 위원장 집권 때 30여 명의 정치국 간부(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 가운데 ‘살아남은 이’는 최용해 상임위원장이 유일하다. 문고리 권력을 상징하는 최다 수행자 면면(1~5위)도 2012년 장성택, 최용해, 김기남, 박도춘, 김양건에서 지난해 조용원, 박정천, 김덕훈, 이일환, 권영진으로 바뀌었다. 야전군 지휘관 역시 40대 후반으로 교체했다. 당·정·군 모두 새 얼굴이 등장했다.

김여정과 현송월(이상 당 부부장), 김성혜 전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 여성들의 약진도 변화 중 하나다.

아버지(김정일)는 1996년 2월 간부들을 모아 놓고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고 했다. ‘혁명계승론’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3대까지 세습한 북한이지만 김 위원장의 방점은 변화였다. 그의 입장에서 변하지 않는 간부들의 태도는 구태의연이었던 것이다.

구태의연으로 회귀

그런데 최근 서방을 향한 북한의 태도는 과거로 빠르게 유(U)턴하고 있다. 2018년 김 위원장은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전용기를 빌려 북·미 회담(싱가포르)에 나갈 정도로 변화에 의욕적이었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유예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2018년 4월)하고, 핵실험장을 폭파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김 위원장이 스위스 유학생 출신이어서 과감히 변화를 받아들인다고 평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다시 미사일 카드를 꺼냈다. 장거리 순항미사일에 이어 요격이 어려운 극초음속미사일, 이스칸데르, 에이테큼스와 같은 미사일을 만들더니 지난달 24일 ICBM을 쏴 레드라인을 넘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서해 철산군 동창리의 위성발사장(장거리로켓 발사장)을 찾아 개보수를 지시(지난달 11일 보도)했다. 함남 신포의 잠수함 건조장에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준비하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입이라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5일 유사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담화를 내고, 폭파했던 핵실험장을 복구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자신들이 가진 군사적 위협카드를 총동원하려는 눈치다.

이처럼 한반도의 봄은 겨울로 회귀하고 있다. 지난해 남과 북이 경쟁하듯 SLBM 시험발사에 나서더니 정찰위성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의 “힘에 의한 평화”와 “우리의 총창위에 평화가 있다”는 북한의 입장이 마주보고 달리는 형국이다. 마치 냉전시대의 군비경쟁을 보는 것처럼.

북한은 과거에도 한국이나 미국의 정권 교체기에 무력시위를 통한 ‘이상한 허니문’ 상황을 만들곤 했다. 기선제압을 하려거나 낭떠러지 끝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는 모습을 보고 핵을 다시 보검으로 삼으려는 취지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핵과 미사일은 변화를 바라지 말라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무기’다. 즉, 변화를 통한 미래 대신 과거의 도구를 꺼내든 꼴이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2017년 북한의 핵실험(6차)과 ICBM(화성-15형) 발사 이후 반짝 ‘한반도의 봄’이 도래했던 것처럼 최근의 급랭이 반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적어도 당분간 상황 악화가 우려된다. 김 위원장도 미국과의 장기전을 규정하고 자력갱생을 주문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계란에 사상을 주입하면 바위를 깰 수 있다”며 사상전을 강조하고 있다. 고위급 인사들이 회의도중 ‘지원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워야 한다’며 자력갱생 결의를 다진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을 동원한 장기전은 북한 주민들의 고달픈 삶이 지속된다는 뜻이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를 신조로 여기도록 교육받은 북한 주민들은 그의 지시에 토를 달긴 어렵다. 다만 북한 주민들은 10년 전 김 위원장의 집권 이후 공개적으로 한 첫 약속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4월 15일) 행사 때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던 연설을.

핵실험 의심 풍계리, 유발지진 30차례

북한의 핵실험장이 있는 함북 길주군 풍계리가 이상하다. 북한이 핵실험장 복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이곳에서 자연지진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일부 전문가들은 2017년 9월 실시한 6차 핵실험의 충격으로 풍계리에서 대규모 핵실험이 쉽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실제 6차 핵실험 이후 지난달 4일까지 풍계리 일대에서 핵실험에 따른 충격으로 발생하는 유발지진(규모 2.0이상)이 30차례 발생했다. 유발지진 발생횟수가 2017년 7회에서 3→2→3회로 줄어들었지만 지난해엔 9회와 올해 6회로 다시 늘고 있다. 여전히 풍계리 인근의 지각이 불안정하다는 방증이다. 북한이 7차 핵실험에 나선다면 지금껏 공개되지 않은 제3의 장소에서 진행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북한이 무너진 갱도만 복구한다면 얼마든지 풍계리에서 추가 핵실험이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다. 기상청이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유발 지진이 발생한 곳으로 추정한 30곳은 대부분 핵실험장 갱도 입구에서 북동쪽에 집중됐다. 남서쪽 방향으로 뚫어 놓은 3번 갱도는 이상이 없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핵실험장은 만탑산 일대에 4개의 입구를 가지고 있다”며 “2~5차 핵실험을 한 2번 갱도와 3번 갱도는 서로 다른 산이고 내부 구조도 다르다고 봐야 하기에 3번 갱도에서 핵실험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단, 북한이 2018년 5월 공개한 갱도 도면이 사실일 경우 대형 핵실험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북한이 공개한 지도의 3번 갱도는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고 지표에서 수직으로 각각 510m, 430m 깊이”라며 “안전심도(폭발이 지상으로 확산하지 않는 깊이)를 고려하면 3번 갱도에선 15~20㏏(1㏏=TNT 1000t) 안팎의 비교적 소형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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