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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교체기의 인사권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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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경제산업디렉터

김원배 경제산업디렉터

신구 권력이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다. 인사권 문제를 놓고 벌써 몇 차례 충돌했다.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던 한국은행 총재 인선을 두고 청와대와 당선인 측의 설명이 달랐다. 청와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의 의견을 수렴한 인사”라고 했지만, 당선인 측에선 “협의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지난달 말 퇴임한 이주열 전 한은 총재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연임했다. 이 전 총재의 연임이 발표된 것은 2018년 3월 2일, 청문회는 3월 21일 열렸다.

한은 총재 인선 늦어 금통위 불참
대우조선 사장은 ‘알박기’ 논란에
기관 성격에 맞는 해법 찾아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왼쪽)가 청문회 준비를 위해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왼쪽)가 청문회 준비를 위해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한은 총재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 지난달 23일이니 임명 절차가 4년 전보다 20일 이상 늦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날짜는 19일로 잡혔다. 청문회 기준으론 4주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14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는 의장인 한은 총재 없이 열린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은 통화신용 정책을 통해 물가안정을 달성하는 것이다.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한은 총재가 임명 절차를 마치지 못해 금통위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은 총재의 경우 전문성과 중립성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됐고 임기제도 정착됐다. 결정적 흠결이 없고 정치적 색채만 강하지 않다면 청문회 등에서 큰 논란이 될 일도 없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7일 라디오에 나와 한은 총재 인선 등에 대해 “인사권은 분명하게 대통령이 가진 것이다. 정해진 인사권을 문 대통령이 행사하지 않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권한엔 책임이 따른다. 인사권이 있고 그걸 행사할 의지가 있음에도 한은 총재 없는 금통위를 만든 것 역시 상식적이지 않다.

산업은행이 최대 주주(55.68%)인 대우조선해양 사장 임명을 놓고는 양측이 거칠게 충돌했다. 신임 사장이 문 대통령 동생과 대학 동기이고,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이사회 날짜를 대선 전날로 당겼다는 것 등이 논란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선 ‘알박기’ 인사라고 반발하며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모욕당한 기분이다.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임명했다는 입장이다. 의심할 여지도 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절차에 결정적 하자가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다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이뤄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보듯, 절차라는 것이 ‘낙하산’을 가리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판결문에서 “청와대와 환경부는 소위 낙하산 논란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원추천위원회 위원들에게 내정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숨긴 채 형식적인 공모 절차를 거쳐 내정자를 내정된 직위에 임명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장관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항소심 형량대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인수위가 감사원에 대우조선해양 사장 선임 문제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하니,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이것과 관계없이 이런 논란은 대우조선해양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사실상의 공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조7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하루속히 흑자 전환해 민간에 매각되는 것이 급선무다. 이것이 새 정부에서 본격화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새 사장이 알박기 논란에 휩싸인 것 자체가 악재다. 권력이 바뀌면 여기에 줄을 대 기존 질서를 뒤집으려는 세력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까.

권력 교체기에 주요 공직과 공공기관 인사권을 누가 행사하느냐는 어려운 문제다. 형식 논리로는 대통령에게 있지만, 실제 일을 같이하는 당선인의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런 것은 법으로 해결할 수 없다. 좋은 선례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한은처럼 중립성 보장이 필요하고 임기제가 확립된 곳은 공백이 없도록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은 곳은 적어도 당선인이 결정된 이후엔 인사권 행사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곧 출범할 윤석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적어도 지금 내가 비판한 일을 5년 뒤 후임자에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