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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총리 공관 빼고 다 없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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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선진국과 달리 정부·지자체 공관 홍수  

규모와 관리비 등 보안 이유로 비공개  

세금 낭비, 사적 전용 논란 끊이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즉시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기로 한 결정을 계기로 정부와 지자체 고위층에 제공돼 온 ‘공관’ 제도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대통령과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등 4부 요인에다 감사원장과 국방·외교부 장관 및 군 수뇌부까지 공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가원수급에만 공관이 주어지는 선진국과는 대조적이며 예산과 운영 방식도 투명성이 원칙인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어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공관과 관련해 가장 많이 불거지는 비판이 ‘세금 낭비’다. 강경화·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각각 9억5000만원과 3억2000여만원을 공관 보수에 썼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16억원이 넘는 돈을 관사 리모델링에 퍼부었다. 외벽에 대리석을 두르는 데만 7억8000만원이 쓰였다. 기관장 부부의 거주 외에는 외빈 행사 등 공공 목적에만 써야 하는 공관을 사적으로 전용한 사례도 많다. 김 대법원장 아들 부부는 최소 평형 호가가 30억원이라는 강남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뒤 15개월간 아버지 공관에 무상 거주한 사실이 알려져 국민의 분노를 샀다. 김 대법원장 며느리가 소속된 대기업 법무팀이 공관에 초청돼 만찬을 한 것도 구설에 올랐다.

공관은 법률이 아니라 기관장의 재량에 좌우되는 훈령과 지침으로 운영된다. 예산 낭비와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으면 이상한 환경인 셈이다. 대부분의 공관에는 요리사와 경비원 등 관리인들이 있지만, 규모와 인건비는 ‘보안’을 이유로 베일에 가려 있다. 성인인 딸이 태국에서 귀국한 뒤 1년 넘게 살아온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부터 ‘국가 안보’를 이유로 관저 운영 비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방에도 공관이 넘쳐난다.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지자체장, 교육감까지 공관이 제공돼 보수·신축 비용을 놓고 세금 낭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기관장을 임명하던 관선 시절 도입된 공관은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27년째 유지되고 있어 ‘관선 시대 유물’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권인 전남은 2006년 15억여원을 들여 도지사 공관을 짓고 매년 관리비로 1억2000만원을 써 비난에 시달린 끝에 2018년 공관을 없앤 일도 있다.

미국은 대통령과 부통령, 일본은 총리와 대법관만 관저를 사용한다. 이게 정답 아닌가. 우리도 개선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시장 공관을 없앤 서울을 비롯해 인천·대구·광주 등 8개 광역단체는 단체장 공관이 없다. 그래도 단체장의 업무 수행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혹자는 외빈 행사 등의 이유로 공관의 필요성을 주장하나, 미국 워싱턴의 블레어 하우스 같은 영빈관 시설을 마련하면 해결될 문제다. 우리도 청와대 개방을 계기로 불필요한 공관 수를 줄여나가 대통령과 총리만 공관을 쓰게끔 정리해야 한다. 또 기관장이나 그 가족이 공관을 사적 용도로 쓰지 못하게 법제화하고, 운영비를 공개하는 한편 관리비·생활비는 본인이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결혼한 성인 자녀는 공관에서 살 수 없게 못 박을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