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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뎃[단독]독립운동가 최재형 미스터리…'현충원 허묘'가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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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은 1909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권총을 마련해 주는 등 의거를 막후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한다. 임시정부 재무총장을 역임한 그는 1920년 4월7일 일제에 의해 피살됐다.[중앙포토]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은 1909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권총을 마련해 주는 등 의거를 막후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한다. 임시정부 재무총장을 역임한 그는 1920년 4월7일 일제에 의해 피살됐다.[중앙포토]

사단법인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는 7일 최재형 선생 순국 102주년 기념식을 열고, 1970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조성됐다가 석연찮은 이유로 감쪽같이 멸실된 채 빈터로 남아 있는 최 선생의 허묘(虛墓·빈무덤, 번호는 108위)를 부부합장묘로 복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념사업회는 올해 한국과 키르기스스탄 수교 30주년을 맞아 최 선생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의 키르기스스탄 현지 묘소에서 유골을 국내로 봉환하고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 선생의 옛집 마당의 흙과 유품도 가져올 예정이다.
 최 선생 부부 합장묘 건립을 순국 102주년을 맞아 추진하는 데는 기구한 사연이 숨어 있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 선생은 상하이 임시정부 재무총장(장관)을 역임한 고위직 독립운동가다. 최 선생은 1920년 4월 7일 재판도 없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총탄에 희생됐다. 일제가 최 선생의 유해를 감추는 바람에 1970년 11월 17일 서울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최 선생의 허묘를 만들었다. 정부는 앞서 1962년 최 선생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 지낸 독립운동가 #1920년 4월 일제에 의해 연해주에서 피살 #1970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허묘 조성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방한 유족 첫 참배 #유족연금 몰래 챙겨온 '가짜후손' DNA로 적발 #2009년 재방문한 유족, 묘역 철거 사실 알고 충격 #러시아에서 이런 사연 기록 남겨 이번에 공개돼 #"누가 허묘 없앴나? 국방부와 보훈처 진상 밝혀야" #기념사업회 "최 선생 부부 합장묘로 복원 추진"

2006년 최재형 선생의 허묘를 참배하는 후손 최 발렌틴.

2006년 최재형 선생의 허묘를 참배하는 후손 최 발렌틴.

 그러나 1991년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최 선생의 유족이 1995년 처음 고국 땅을 밟았는데 그동안 최 선생의 유족으로 등록해 유족연금을 받았던 최모씨가 유전자(DNA) 검사에서 허위로 드러나 유족연금 수령 자격이 박탈됐다. 가짜 후손이 30여년간 유족연금을 몰래 챙겼다는 얘기다. 최 씨는 그 후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에야 비로소 최 선생의 막내딸 최 엘리자베타가 유족연금 수급자로 국가보훈처에 등록됐고, 2005년 막내딸이 사망하자 손자 최 발렌틴(2020년 2월 작고)이 이어받았다. 최 발렌틴은 2006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애국지사묘역의 최 선생 허묘에 참배하고 당시 사진까지 남겼다.

최재형 선생 후손 최 발렌틴이 2009년 재차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을 찾았으나 허묘가 사라져 놀라는 장면.

최재형 선생 후손 최 발렌틴이 2009년 재차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을 찾았으나 허묘가 사라져 놀라는 장면.

 하지만 2009년 최 발렌틴이 재차 현충원에 참배하러 갔으나 허묘가 갑자기 멸실되고 빈터만 남은 사실을 확인하고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최 발렌틴은 2010년 러시아에서 출간한 저서『최재형』에 사진과 함께 이런 충격적인 사연을 실었다.
 당시까지 이런 사실이 한국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는 바람에 2011년 최재형 장학회로 시작한 기념사업회는 2015년 국립서울현충원 유공자 부부위패비에 최 선생 부부의 이름을 어렵사리 새기는데 일단 만족해야 했다고 한다.

생전의 최재형 선생 손자 최 발렌틴.

생전의 최재형 선생 손자 최 발렌틴.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후손 최일리야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새겨진 최재형 선생 부부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후손 최일리야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새겨진 최재형 선생 부부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산하 국립서울현충원과 국가보훈처의 일 처리에 많은 의문이 있다고 문영숙 이사장은 지적했다. 문 이사장은 "후손이 가짜인 것과는 별개로 최재형 선생의 허묘를 없앤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짜 후손이 드러났으면 진짜 후손으로 변경하면 되는데 후손에게는 연락도 없이 허묘를 멸실시켰다는 것은 최 선생을 독립운동사에서 지운 것과 같다. 행정착오로 가짜 후손을 등록했다면 진짜 후손이 나타났을 때 시행착오를 밝히고 제대로 모셨어야 마땅했다"고 비판했다.
 문 이사장은 "국가보훈처 서울지방보훈청에 최 선생의 허묘가 멸실된 경위 등 정확한 진상을 파악해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국가보훈처는 국립대전현충원과 전국의 호국원 등을 관할하고, 국립서울현충원은 국방부가 직접 관할해왔기 때문에 이번 최재형 선생 허묘 멸실 문제는 국방부가 침묵하지 말고 정확하게 해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 이사장은 "기념사업회와 최 선생 후손들은 1970년 11월에 조성돼 적어도 2006년까지 국립서울현충원에 존재했던 최재형 선생의 허묘를 부부합장묘로 복원하겠다"며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순국선열을 제대로 모셔서 과거 정부와 차별화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편, 기념사업회는 7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최재형 선생 순국 102주년 추모식을 열고 제3회 최재형상 본상 수상자로 아시아발전재단 김준일(사진) 이사장을 선정했다. 단체상에는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온 ㈜쓰리테크놀로지(회장 이장우)를 선정했다.

제3회 최재형상 본상 수상자인 김준일 이사장(가운데). 왼쪽은 최재형 선생의 후손 최 일리야. 오른쪽은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제3회 최재형상 본상 수상자인 김준일 이사장(가운데). 왼쪽은 최재형 선생의 후손 최 일리야. 오른쪽은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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