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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방역 포장용? 文 '엔데믹 언급'에, 전병율 "코미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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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7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해외 여행객들이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해외 여행객들이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김부겸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잇따라 엔데믹(endemic)을 언급하면서 한국이 엔데믹 상황에 가까워진 것처럼 알려졌지만, 전문가들은 이 용어를 사용한 게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현 정부가 임기를 마치면서 코로나19 방역을 잘 끝냈다고 포장하려고 검증되지 않은 말을 꺼냈다고 해석한다.

오명돈·전병율 교수가 보는 엔데믹 논란

김 총리는 1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서울발 기사를 인용해 "대한민국은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세계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본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 아시아 국가들이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라는 기사에서 "한국이 첫 엔데믹 국가가 될 것"이라는 미국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국무회의에서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이 코로나를 풍토병 수준으로 낮추는 선도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하며 우리의 일상회복 전략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K방역 자랑도 잊지 않았다.

엔데믹 언급이 왜 문제일까. 엔데믹은 토착화된 풍토병을 말한다. 아프리카 등지에서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 같은 감염병이 대표적이다.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 중앙포토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 중앙포토

"모기에 많이 물리면 말라리아 환자가 늘어난다. 우기가 끝나 모기가 줄면 환자도 준다. 잠잠하다 이듬해 또 온다. 그곳 주민들도 말라리아가 늘 생긴다는 걸 받아들인다. 정부도 특별한 병원, 검사소를 만들지 않고, 환자도 일반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는다. 이런 게 엔데믹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코로나 19 상황은 여기에 들어맞지 않는다."

오 교수는 독감도 엔데믹의 예로 든다. 그는 "우리 국민은 독감을 일상적인 걸로 받아들인다. 독감 시즌이 오면 진단·치료·접종 이런 걸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선별진료소가 아니라 일반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다"고 말한다. 일상진료체계에 들어오느냐, 국민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냐, 이 두 가지 지표가 엔데믹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전병율 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비슷한 설명을 내놓는다.

전병율 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 중앙포토

전병율 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 중앙포토

"코로나19가 앞으로 매년 생길지 말지 아직 모른다. 만약 사계절에 생기면 엔데믹이 될 것이다. 반면 새로운 변이가 안 생긴다면 아예 사라져 종식될 수도 있다. 코로나19의 특성을 모르는 상황에서 엔데믹이라는 용어를 써서는 안 되는데, 뭘 잘 모르고 쓰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엔데믹을 얘기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익명을 요구한 방역당국 관계자 A씨는 좀 더 아픈 얘기를 한다. A씨와 일문일답.

엔데믹이 가까워졌나.
(엔데믹은)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아닌데. 엔데믹이 되려면 때때로 유행하되 크게 퍼지지 않고, 질병이 정형화돼서 지속해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를 엔데믹으로 만드는 게 목표일 뿐이다. 
언제 엔데믹이 될까.
9,10월에 백신을 맞고 유행이 크게 확산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 겨울을 무사히 지나면 엔데믹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게 최선의 시나리오이다. 안정적으로 엔데믹으로 가려면 올해 말도 이르다고 본다. 2~3년 걸릴 수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팬데믹을 다룰 때 엔데믹이라는 말을 함께 사용한 적이 거의 없다. WHO가 과거에 국제공중보건위기(PHEIC)를 선언한 적이 있다. 신종플루(2009년), 폴리오(2014), 서아프리카 에볼라(2014), 지카(2016), 콩고민주공화국 에볼라(2018) 등이다. 대개 PHEIC 선언을 팬데믹 선언으로 받아들인다. WHO는 대개 사태가 잠잠해진 다음에 PHEIC 종료를 선언한다. 전병율 교수는 "WHO가 엔데믹을 얘기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2015년 메르스가 한국에 유행한 후 정부가 종식선언을 했다. 잠복기(14일)의 두배인 28일 동안 신규 환자가 발생하지 않자 종식을 선언했다. 메르스는 팬데믹이 아니었다.

WHO 테드로스아드하놈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지난해 말~올 초 2022년 코로나19를 전망할 때 엔데믹이라는 용어를 쓴 적이 없다. 그는 "팬데믹의 급성기를 끝내는 것이 우리의 우선 과제"라며 "올해 중반까지 모든 국가가 인구의 70%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등 WHO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면 연내 코로나19 국제적 보건 비상사태를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 급성기' '국제 보건 비상사태'라는 용어를 썼다.

다만 오명돈 교수, 전병율 교수는 일상회복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 교수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감염됐을 것으로 본다. 백신 접종 면역까지 더하면 면역 획득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을 것"이라며 "앞으로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크고 작은 고비를 겪게 되겠지만, 이것이 델타나 오미크론보다 더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 교수는 "의료체계도 충분히 감당할만한 수준이기 때문에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갈 만한 여건이 됐고, 돌아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 교수도 "정부가 엔데믹을 말할 게 아니다"며 "현재 의료체계가 대응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고, 그래서 경제·직장·학교 등의 일상생활을 정상으로 돌려야 할 때가 됐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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