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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 후보 FA인데 연봉 2억 깎은 양효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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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양효진. [사진 한국배구연맹]

현대건설 양효진. [사진 한국배구연맹]

여자배구 MVP 후보인 양효진(33)이 연봉 2억원을 깎았다. 자유계약선수(FA)지만 소속팀 현대건설에 남았다. '원클럽 플레이어'로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하기로 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6일 여자부 FA 협상 결과를 공시했다. 현대건설은 양효진을 비롯해 고예림·이나연·김주하를 모두 붙잡는 데 성공했다. 놀라운 건 양효진의 계약금액이었다. 3년 총액 15억원(연봉 3억5000만원+옵션 1억5000만원). 지난 시즌(7억원)보다 2억원이 줄어들었다.

양효진은 올 시즌 MVP가 가장 유력한 선수다.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종료됐지만 소속팀 현대건설은 1위(28승 3패)를 차지했다. 양효진은 블로킹과 속공 1위에 올랐다. 센터로서는 유일하게 득점 순위 10위 안(7위)에 들었다. '효진건설'이란 별명에 걸맞는 활약이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양효진의 연봉을 올려줄 수가 없었다. 이미 V리그 규정상 줄 수 있는 최고액을 받았기 때문이다. V리그 여자부 팀 샐러리캡(연봉합산제한)은 23억원(옵션 포함)이고, 보수총액(연봉+옵션) 한도는 7억원이다.

현대건설 양효진. [사진 한국배구연맹]

현대건설 양효진. [사진 한국배구연맹]

오히려 현대건설은 양효진에게 전보다 깎인 5억원을 제시했다. 팀 성적이 좋아 대다수 선수들이 연봉인상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FA인 고예림은 다른 팀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양효진의 연봉을 깎든지, 다른 선수를 내주든지 양자택일해야 했다.

현대건설은 '정'에 호소할 수 밖에 없었다. 양효진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했다. 페퍼저축은행이 양효진에게 접촉해 왔기 때문이다. 신생팀으로 지난 시즌 최하위에 머물렀던 페퍼저축은행은 양효진에게 최고 대우를 약속했다. 양효진은 FA 종료일 하루 전까지 고민했다.

선택은 친정팀 현대건설이었다. 양효진은 "두 번이나 우승컵을 들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커 다시 도전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2019~20시즌과 이번 시즌에 1위를 하고도 챔프전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양효진은 "(앞선 두 번의 FA 계약에서)늘 최고 대우를 해줬던 구단이라 이번에도 팀 잔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데뷔 때부터 뛰어왔던 팀에서 은퇴 전 꼭 우승컵을 들고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양효진. [사진 한국배구연맹]

현대건설 양효진. [사진 한국배구연맹]

일부 팬들은 양효진과 현대건설의 선택을 아쉬워한다. 샐러리캡의 취지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샐러리캡은 과도한 지출을 막고, 리그 흥행을 저해할 수 있는 전력 불균형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양효진의 선택 덕분에 현대건설은 고예림을 비롯한 다른 내부 FA들도 모두 붙잡으며 전력 누수를 막았다.

하지만 양효진 입장에선 합리적인 선택이다. 양효진은 현대건설에서만 줄곧 뛰었다. 현대건설에서 은퇴한다면 지도자 수업, 영구 결번 등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얻는 것들이 많다. 구단도 "선수 복지 향상 및 향후 선수 생활 이후의 계획을 함께 모색하고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프로농구(NBA)에선 수퍼스타들이 스스로 연봉을 줄이는 대신 '수퍼 팀'을 만들어 우승 반지에 도전하는 사례가 많다. 2010년 르브론 제임스가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시와 뭉쳐 우승한 게 대표적이다. 이른바 '페이컷'을 통해 우승을 노린 것이다. NBA의 경우 연봉 이상의 광고 수익을 받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최근 T1과 재계약한 E스포츠 최고 스타 페이커(이상혁)도 수십억원을 포기하고 소속팀에 남았다.

여자배구 선수들의 경우엔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의 줄임말·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한 선택요소다. 연봉도 고려하지만 팀 분위기, 숙소 및 연고지, 익숙한 환경,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가 등을 많이 고려한다.

이번 FA시장에서 유일하게 이적한 페퍼저축은행 세터 이고은. [사진 페퍼저축은행]

이번 FA시장에서 유일하게 이적한 페퍼저축은행 세터 이고은. [사진 페퍼저축은행]

결국 FA 13명 중 팀을 옮긴 건 이고은(도로공사→페퍼저축은행)이 유일했다. 종전(1억8500만원 )보다 두 배 가까운 인상(3억3000만원) 덕분이다. GS칼텍스 안혜진·유서연도 페퍼 뿐 아니라 여러 팀의 관심을 받았지만 잔류를 택했다.

일각에선 샐러리캡 제도 손질을 주장하기도 한다. 총액을 늘리거나 메이저리그식 사치세 도입을 통해 유연성을 키우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여자배구는 인기에 비해 수익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입장수입과 중계권료 등 수익을 합쳐도 구단이 지출하는 운영비에 한참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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