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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덮친 플라스틱 쓰레기…해빙과 심해 퇴적물까지 오염시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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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 연구팀은 5일 북극해가 플라스틱 쓰레기 오염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사진은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바다 얼음 위의 북극곰. 2013년에 촬영된 것이다. AFP=연합뉴스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 연구팀은 5일 북극해가 플라스틱 쓰레기 오염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사진은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바다 얼음 위의 북극곰. 2013년에 촬영된 것이다. AFP=연합뉴스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으로 여겨지는 북극 바다에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밀려든다는 뉴스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고된 내용을 종합한 결과, 북극 생태계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와 노르웨이·캐나다 등 국제연구팀은 5일(현지 시각) '네이처 리뷰스(Nature Reviews) 지구와 환경'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간의 직접적인 활동이 없는 북극 심해저에도 플라스틱 오염이 만연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세계적으로 연간 3억 6800만 톤의 플라스틱 제품이 생산되고, 이 중 1900만~2300만 톤이 바다로 들어간다"며 "북대서양과 북태평양의 쓰레기 일부가 해류를 타고 북극해로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북극 지역의 해류와 강물 유출량. [자료: Nature Reviews, 2022]

북극 지역의 해류와 강물 유출량. [자료: Nature Reviews, 2022]

해류 타고 대서양·태평양에서 유입

2017년 7월 핀란드 쇄빙선 MSV 노르디카가 캐나다 북극 군도의 빅토리아 해협을 통해 북서 항로를 횡단하면서 해빙이 깨지고 있다. AP=연합뉴스

2017년 7월 핀란드 쇄빙선 MSV 노르디카가 캐나다 북극 군도의 빅토리아 해협을 통해 북서 항로를 횡단하면서 해빙이 깨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이것 외에도 북극해로 흘러드는 강을 통해 플라스틱 쓰레기가 유입된다.

북극해가 전 세계 바다의 전체 부피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에 불과하지만, 강에서 바다로 배출되는 전 세계 물의 10% 이상이 북극해로 흘러든다. 한적한 북극이라고 하지만 이들 강 유역에는 3700만 명이 살고 있다.
시베리아 강물에는 ㎥당 44~51개에 이르는 많은 미세플라스틱(크기 5㎜ 이하)이 들어있고, 늦은 봄 얼음이 녹을 때 더 많은 미세플라스틱이 들어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극해 연안 도시의 경우 적절한 폐기물 처리시설이나 하수 처리시설이 부족해 적지 않은 쓰레기가 곧장 바다로 흘러든다.

어선에서 버린 쓰레기도 적지 않다. 북극해 노르웨이 영토인 스발바르 제도 해변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 가운데 27~100%는 조업 어선들이 버린 것이다. 폐기된 어망의 80~90%는 어부들이 수선 작업 후에 일부러 버린 것이다.

미세플라스틱의 역습

미세플라스틱의 역습

대기를 통해 들어가는 것도 많다. 만년설의 빙원에서 채취한 눈 샘플에는 ㎥당 최대 1440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존재한다. 하늘에서 얼음 위로, 그리고 바다 위로 미세플라스틱이 쏟아진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북극 바다에 뜬 얼음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당 1200만 개까지 발견되는데, 해빙이 미세플라스틱을 북극해로 수송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만년설 ㎥에 미세플라스틱 1440만개

시베리아에서 채취한 눈 샘플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 입자. 지난해 3월 러시아 톰스크의 한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통해 관찰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시베리아에서 채취한 눈 샘플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 입자. 지난해 3월 러시아 톰스크의 한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통해 관찰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과정을 거쳐 들어온 플라스틱이 북극해 곳곳에서 발견된다. 북극해 표층 바닷물에서는 플라스틱 파편이 ㎢당 최대 7.97개, 미세플라스틱은 ㎥당 최대 1287개가 발견되고 있다. 심해 밑바닥 바로 위의 바닷물에서도 ㎥당 최대 375개의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된다.

해저에 가라앉은 플라스틱 조각은 ㎢당 최대 2만4500개까지 검출됐다. 프람(Fram) 해협 밑바닥에서는 2004년 ㎢당 813개였는데, 2017년에는 5970개로 늘어났다.

북극 심해 퇴적물에서 발견되는 미세플라스틱은 퇴적물 1㎏당 최대 1만6041개에 이르는데,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측정 농도에 속하는 것이다. 캐나다 쪽 북극해 퇴적물에서는 아세테이트 셀룰로스와 인디고 데님 같은 극세사 플라스틱이 발견되는데, 퇴적물 1㎏당 섬유 1930개가 나왔다.

북극해 플라스틱 유입과 분포 상황. [자료: Nature Reviews, 2022]

북극해 플라스틱 유입과 분포 상황. [자료: Nature Reviews, 2022]

북극해에 사는 다양한 생물은 이런 플라스틱 오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총 131종의 생물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물 같은 플라스틱 쓰레기에 얽혀 생명을 잃기도 하고, 플라스틱 조각을 삼켜 질식해 죽기도 한다. 말미잘이나 불가사리·새우·게·조개 등 무척추동물은 물론 대구나 상어 등 어류와 갈매기 등 조류, 고래 등 포유류도 플라스틱을 섭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미세플라스틱 자체도 동물 체내에서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든지 염증을 일으키고, 성장과 번식 속도를 감소시키는 영향을 나타낼 수 있다"며 "플라스틱 속에 든 첨가제 등 화학물질이 해양 생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플라스틱 오염과 기후변화 서로 부추겨

캐나다 얼음 코어 시료에서 발견된 미세플라스틱. AFP=연합뉴스

캐나다 얼음 코어 시료에서 발견된 미세플라스틱. AFP=연합뉴스

연구팀은 플라스틱 오염은 기후변화를 악화시키고, 기후변화는 다시 플라스틱 오염을 악화시키는 상승작용을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우선 북극의 기온 상승은 다른 지역의 3배 수준이다. 기온 상승으로 녹아내리고 있는 북극 바다 얼음이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되면 햇빛 반사도가 떨어져 태양에너지를 더 많이 흡수하고, 더 빨리 녹게 된다.
해빙이 녹으면 북극의 해상 교통량이 증가하고, 선박에서 배출하는 플라스틱이 많아지게 된다.

플라스틱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지만, 생산된 플라스틱이 분해될 때에도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2015년에 생산된 화석연료 기반 플라스틱은 다 썩어 없어질 때까지 18억 톤의 CO2를 배출하는 꼴인데, 지금 추세라면 2050년에는 플라스틱과 관련된 CO2 배출이 연간 65억톤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연구팀은 "북극에서의 플라스틱 오염은 국경을 초월한 문제인 만큼 국가적 노력은 물론 국제적 노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온실가스를 줄이는) 파리 기후협정이나 (오존층 파괴 물질을 규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 같은 게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유엔에서는 2024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막기 위한 국제 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논의를 최근 시작했다.

플라스틱 순환·재활용 확립해야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해변에 해양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일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듯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 중앙포토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해변에 해양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일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듯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 중앙포토

연구팀은 플라스틱 오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 폐기물 수집 체계를 개선하고, 플라스틱 순환·재활용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분해 어구를 전 세계적으로 확대 도입하고, 어획 장비에 표시 체계를 도입해 손실이나 폐기를 방지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선박의 페인트에서 떨어져 나오는 조각, 자동차 타이어·브레이크가 마모되면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 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극세사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물개 한 마리가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킹스 포인트 인근 빙산에 앉아 있다. 2019년 7월 촬영. 북극은 지구 전체보다 3배나 빨리 기온이 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물개 한 마리가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킹스 포인트 인근 빙산에 앉아 있다. 2019년 7월 촬영. 북극은 지구 전체보다 3배나 빨리 기온이 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밖에 북극해에서 미세플라스틱 오염 문제에 대한 연구 체계를 확립할 것도 촉구했다.

연중무휴 지속해서 시료를 채취할 수 있는 장비 도입, 지역 시민들의  조사 참여와 모니터링, 시료 채취와 분석 방법의 표준화, 측정 데이터를 모으는 공동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생태계 먹이 그물을 통한 플라스틱의 이동 과정과 영향에 대한 연구, 크기가 더 작은 나노 플라스틱의 영향, 특히 대기를 통해 이동하는 경로에 대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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