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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류근관 특별기고

국가 통계데이터 제대로 만들려면 부처 칸막이 없애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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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가 통계데이터 거버넌스 개편

류근관 통계청장

류근관 통계청장

증거에 기반한 정책 집행과 실용주의에 입각한 국정 운영을 하려면 국가 통계데이터의 원활한 활용이 필수적이다. 연금개혁을 하려면 포괄적으로 연금 실태가 파악돼야 한다. 실효성 있는 가계대책을 마련하려면 가계부채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

한데 국가 통계데이터의 원활한 연계 이용이 쉽지 않다. 조직이 문제다. 현재 중앙통계기관인 통계청은 기획재정부 외청이다. 정부 직제상 청은 소속된 부의 고유업무를 맡아 처리한다. 통계청이 직접 생산하는 66종의 국가 통계 가운데 경제통계는 약 20종으로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러 기관이 생산하는 전체 국가 통계 1276종으로 확장해도 경제통계는 일부분이다. 경제개발기에는 경제가 전부였고 통계도 경제통계가 전부였다. 지금은 아니다. 과거 유산으로부터 벗어나자.

연금개혁 화두인데 포괄적 연금통계는 부처 어디에도 없어
증거 기반 정책하려면 국가 통계데이터 제대로 활용해야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연계·활용 모두 가능한 모형 개발
‘통계데이터처’로 총리실의 실질적 총괄·조정 뒷받침 가능

새 정부 ‘디지털플랫폼정부’에 필요한 것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TF를 구성해 국정운영 과정의 의사결정에 데이터·과학화 기반 시스템 도입을 위한 정책을 발굴 중이다. 지난주 한국행정학회 포럼에서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새 정부에서 구축하려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핵심은 정확한 통계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증거기반 정책”이라며 “통계청이 통계처로 격상돼 증거기반 정책관리의 주무기관으로서 국가데이터 거버넌스 허브가 되길 희망한다”라고 강조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통계청장으로 일한 지난 1년여 기간에 절실히 느낀 바다.

통계청이 개념화한 허브-스포크 모형

통계청이 개념화한 허브-스포크 모형

새 정부의 디지털 비전은 정부데이터 개방, 원스톱 행정업무 시스템 구축, 국민 개개인 맞춤형 서비스, 산업 성장에 기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 장벽을 허물고 더 많이 개방하면, 민간 디지털 경제를 선도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 최적화된 솔루션을 도입하고 최고의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가 없으면 작동할 수 없다. 연계되지 못하고 분절된 데이터는 성능을 떨어뜨린다. 검증되지 않은 자료는 자칫 오작동마저 일으킨다. 연금개혁, 인구절벽, 고용·물가 등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경제·사회문제는 고차방정식으로 연결돼 있다. 문제를 풀기에 개별 부처만으로는 힘에 부친다. 부처 간 연계되고 상호검증된 통계데이터로 풀어야만 정확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가계부채통계 등은 범부처 자료 필요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증거기반 정책을 뒷받침할 국가 통계데이터의 현주소는 어떨까. 우리 사회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과 고령화 속도는 1위이고, 출산율은 아래로부터 1위다. 연금개혁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정작 개인 및 가구별 연금 수급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포괄적 연금통계는 부처 어디에도 없다.

통계청은 지난 1년 동안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각종 연금 데이터와 통계청의 통계등록부를 연결해 연금실태 전모를 파악하는 포괄적 연금통계 개발을 추진해 왔다. 다양한 공적·사적연금과 관련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퇴직연금은 고용노동부, 개인연금은 국세청, 주택연금은 금융위원회·주택금융공사 등 담당부처가 제각각이다. 이들 자료의 연계를 합의하는 데만 1년이 흘렀고, 자료 수집 및 연계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더는 연금개혁을 미룰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부처 간 데이터 칸막이로 골든타임을 놓칠까 걱정스럽다.

이른바 데이터 3법 개정 이후 통계데이터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범부처 자료를 활용해야 만들 수 있는 사회통합지표, 가계부채통계,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탄소 제로(Net Zero) 등도 데이터 연계·활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부처 간 데이터 칸막이는 증거기반 정책을 뒷받침할 새로운 국가 통계 개발의 속도를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 환경 변화는 빠른데 의미 있는 통계 생산은 턱없이 느리다.

근거 없이는 근거기반 정책도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민간데이터는 금융위원회와 과학기술부가 중심이 된 거버넌스 하에서 금융·바이오 분야 마이데이터(My Data) 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공공데이터는 우리나라의 공공데이터 개방지수가 OECD 회원국 중 1위에 오를 정도로 행정안전부에서 잘 관리하고 있다. 이처럼 민간데이터와 개방 대상 공공데이터는 비교적 큰 문제 없이 잘 작동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국세, 4대 보험 등과 같은 비공개 공공데이터와 통계청의 각종 통계데이터 및 등록부, 부처별 데이터를 포괄하는 국가 통계데이터의 거버넌스는 여전히 취약하다. 정부의 국정 운영에 있어 증거 기반 정책이 중요한데 증거에 해당하는 통계데이터의 활용체계는 여전히 부실한 셈이다. 근거 없이는 근거기반 정책도 없다.

이는 분산형 국가통계제도 하에서 허브(hub)의 부재로 인한 부처 간 데이터 연계·활용 한계가 가장 큰 원인이다. 데이터는 쌓이고 연계될수록 가치가 급증하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가 작동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가장 중요한 국가 통계데이터에서만큼은 이러한 잠재적 가치가 충분히 실현될 기반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

허브-스포크 모형, 해외서도 인정

실용주의에 입각한 증거기반 정책의 구현은 국가 통계데이터 거버넌스의 획기적 전환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 해답은 작년부터 통계청이 허브-스포크(hub and spokes)로 개념화한 모형에서 찾아본다.

허브-스포크 모형은 통계청의 통계등록부(hub)와 각 기관이 보유한 데이터(spokes)를 동형암호 등 가장 최신의 정보기술로 연결하고, 암호화한 상태에서 안전하게 분석하는 틀이다(그림). 각 기관의 데이터를 한곳에 모을 필요도 없다. 데이터 보유기관은 자료를 자신의 데이터 센터 밖으로 내주지 않고 연결할 수 있도록 협조만 하면 된다. 그러니 현재 부처마다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빅데이터 센터 건립 추세와도 잘 어울린다.

자료 연계와 자료 분석을 암호화한 상태에서 하고, 그 암호화된 분석 결과마저도 안전하게 관리한다. 그러니 극단적으로 ‘적과의 동침’마저도 허용한다. 암호화된 결과를 푸는 이치는 은행의 개인 금고를 열 때 은행이든 개인이든 혼자서는 열 수 없고, 둘이 합심해야만 열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원리는 그동안 개인정보보호 문제로 자료제공을 거부하던 개별 부처의 명분이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 통계등록부(statistical registers)와 개인정보보호(privacy protection) 두 가지를 핵심축으로, 관계 부처 간 자료가 필요할 때만 안전하게 믹스앤드매치(mix & match) 방식으로 연계·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통계청이 개발한 허브-스포크 모형은 데이터 비밀보호 기능이 탑재된 사실상의 디지털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고 국정 운영에 꼭 필요한 기관 간 자료 연계 및 부처 간 협업을 지원하게 된다. 개인정보보호와 데이터 연계·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어 국가 데이터 플랫폼으로 제격이다.

최근 한 달 사이 국제학회와 국제기구에 우리나라 통계청이 개발한 국가 통계데이터 거버넌스인 허브-스포크 모형이 소개됐다. 이 모형은 국가 데이터 플랫폼으로 안성맞춤이다. 그 구체적 적용사례로 통계청의 기업통계등록부와 한 지방자치단체의 소상공인 자료 등 두 기관의 통계데이터를 최신 동형암호 기술로 연계·분석한 성공 사례도 발표됐다.

이를 두고 수리통계혁신연구소(iMSi) 워크숍에 참석한 세계 최고의 암호학자들은 최신 정보보호 기법의 선구적인 활용사례라고 평가했다. 유엔과 OECD 통계위원회 의장단 회의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국가 통계데이터 거버넌스의 세계 표준을 선도할 절호의 기회다.

정부조직 개편에 ‘통계데이터처’ 반영됐으면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증거가 중요하듯, 정부에는 국정운영의 흔적인 통계데이터가 중요하다. 총리실은 정책에 대한 총괄·조정의 공식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예산집행과 성과측정의 실질적인 권한은 통계데이터를 가진 각 부처에 있다. 증거기반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해야 할 데이터 시대에 부처 간 데이터 칸막이는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방해하고 총리실의 실질적인 정책 총괄 및 국무조정 기능을 훼손한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데이터 변화 속도와 데이터 연계 수요 증가를 감안할 때, 국가 통계데이터 거버넌스 개편은 시급하다. 정보통신 수요가 급증하던 과거 우리 정부는 체신청을 정보통신부로 적기에 조직 개편해,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적 정보 통신 강국으로 우뚝 서는 데 기여했다. 데이터 시대에 통계청을 통계데이터처로 개편하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 꼭 필요한 정부 조직 개편이라 본다. 총리실이 국무총괄·조정에 있어 실질적 권한을 갖도록 국가 통계데이터로 뒷받침하자. 국정 운영에 있어 실용주의가 정착된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류근관(62)

중동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경제통계학·계량경제학을 가르쳤다. 2020년 12월 18대 통계청장에 임명됐다.

류근관 통계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