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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퍼스펙티브

지금 필요한 건..보수정치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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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해방과 전쟁으로 좌파소멸
극우정치 박근혜탄핵으로 종언
문재인정부 좌파실험도 실패
윤석열정부 새 정치이념 기대

이념으로 본 한국정치

〈해방직후 유진오와 김성수의 대화〉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 꼭 한 달만인 1945년 9월 15일. 초대헌법을 만든 유진오 교수(법학ㆍ고려대)가 고려대ㆍ동아일보ㆍ경성방직 창립자인 우파거물 김성수와 마주앉았다.
‘정부수립 방법은 선거밖에 없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선거에서 진다면 공산당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유진오)

‘그러다 우익이 지면 어떻게 하나. 아무 소리 못하고 공산당 천하가 되게?’(김성수)

1948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과 함께 열린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 장면. 지금은 사라진 중앙청(구 일제총독부 건물)에서 열렸다. 이승만 정부출범은 해방직후 강세였던 좌파세력의 소멸과 동시에 한국정치이념의 우편향을 상징한다. 사진은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제66회 광복절을 맞아 2011년 공개한 사진. 연합뉴스

1948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과 함께 열린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 장면. 지금은 사라진 중앙청(구 일제총독부 건물)에서 열렸다. 이승만 정부출범은 해방직후 강세였던 좌파세력의 소멸과 동시에 한국정치이념의 우편향을 상징한다. 사진은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제66회 광복절을 맞아 2011년 공개한 사진. 연합뉴스

유진오가 회고록에 남긴 이 에피소드는 한국정치 이해의 출발점으로 주목된다. 해방직후 정국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인 동시에 이후 한국정치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예고한다.

먼저 팩트. 해방직후 공산주의 좌파세력이 우파보다 훨씬 강세였던 상황이 확인된다. 유진오는 헌법학자로서 이상을 얘기했지만 김성수는 정치가로서 현실을 얘기했다.
항복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마지막 총독(아베 노부유키 대장)이 권력을 넘겨주고자 사전협상했던 조선대표는 좌파 여운형이었다. 사실 아베 총독은 여운형에 앞서 김성수측과 접촉했지만 거절당했다. 친일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파는 총독의 인수인계를 받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여운형은 공산주의 조직과 제휴해 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9월 8일 상륙한 미군에 ‘전국에 135개 지방인민위원회가 설치됐다’고 통보했다. 실제로 인민위원회는 일본관료가 떠난 자리를 차지하고 지방행정을 이끌었다. 물론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미군정의 행정력이 미치는 않는 상황에서 지방인민위원회는 1945년말까지 실질적인 지방정부였다.

당연히 1945년 9월 15일 상황에서 총선은 곧 좌파의 승리가 분명했다.
이후 한국정치는 정반대, 우파 일변도로 흘렀다.
김성수의 위기감은 미군의 등장으로 해소됐다. 사실 해방 당시엔 한반도를 소련군이 점령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일본 총독부의 잘못된 예상 탓이다. 소련군이 이미 한반도에 진입한 상황에서 미군은 일본 오키나와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38도선을 경계로 확정한 건 8월 12일이다.

1946년부터 급속하게 진행된 냉전은 미국으로 하여금 우파를 지원하게 만들었다. 위기에 몰린 남한 공산주의자들은 1946년부터 폭력투쟁노선은 택함으로써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좌파는 완전히 사라졌다. 정치판에선 여당과 야당이 대립했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우파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노무현과 586 정치인이 출현하기 이전까지는.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한국정치에서 좌우를 가르는 기준은 ‘반공이냐 아니냐’로 단순화됐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척도가 단순하다는 것은 갈등과 분열이 첨예하다는 얘기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는 흑백논리는 정치적 경쟁자를 협치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파일색..철학 없는 한국정치〉

현실정치에서 유진오와 김성수의 꿈을 이뤄준 사람도, 깨어준 사람도 이승만 초대대통령이었다. 우파들이 두려워했던 좌파를 물리쳐준 중심도 이승만이었지만, 유진오와 김성수가 구상했던 내각제를 비토함으로써 이들의 집권기회를 뭉개버린 주인공도 이승만이었다.

해방직후 친일청산 태풍이 부는 가운데 김성수에서 필요한 건 ‘독립운동가 간판’이었다. 마침 이승만은 인기 좋은 독립운동가였지만 세력은 없었다. 1946년 7월 23일자 동아일보 ‘초대대통령 선호도’조사(행인 6천여명 인터뷰)결과 이승만은 29% 김구 11% 김규식 10% 여운형 10% 박헌영 1%였다.
김성수는 맥아더 원수의 포고령(9월 9일자)이 발표되자 9월 16일 한국민주당(한민당. 민주당의 뿌리)을 창당했다. 이승만은 한민당의 후원을 받아 1948년 5월 초대국회에서 198표 중 189표를 얻는 압도적 지지를 받아 임시의장에 올랐다.
초대국회는 최초의 헌법을 만든 제헌의회다. 그런데 의장이 된 이승만은 유진오가 만들어온 ‘내각책임제’헌법을 비토했다. 미국처럼 대통령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민당과 권력을 나누지 않겠다는 의지다.
유진오는 밤을 새워 ‘대통령제’헌법으로 수정했다. 7월 17일 헌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7월 20일 이승만은 국회에서 198표 중 180표를 얻어 사실상 만장일치 대통령이 됐다. 김구 16표로 2등.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1951년 12월 자유당을 만든다. 한민당 대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수기 정당’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치이념과는 무관하게 대통령 1인을 모시는 ‘시녀 정당’의 탄생이다. 한민당은 야당이 되었다. 지금까지 민주당으로 통칭되는 야당의 뿌리다. 호남(전북 고창)출신 김성수 주변엔 호남정치인들이 몰려들었다.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을 밝힌 채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안 처리를 6일 앞두고 전국 70여 개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개최된 이날 촛불집회에는 200만명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시민들이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했다. 2016.12.3/뉴스1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을 밝힌 채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안 처리를 6일 앞두고 전국 70여 개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개최된 이날 촛불집회에는 200만명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시민들이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했다. 2016.12.3/뉴스1

〈우파 박근혜, 좌파 문재인의 몰락〉

자유당으로 시작된 ‘거수기 정당’의 시대는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으로 이어진다. 집권여당이 정치철학와 무관한 독재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여의도 출장소’로 불렸다. 이데올로기적으로 구분하자면 군부출신 극우파다.
독재정권에 반대해온 야당 민주당 세력 역시 좌파라기보단 보수중도에 가깝다. 독재정권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야당이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론 자유민주주의자였으며, 반공이란 척도로 보자면 같은 보수우파에 포함된다.

이런 정치구도는 2017년 박근혜 탄핵과 2022년 문재인 정권의 마감으로 일단락됐다.

박근혜 정권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결과물이다.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동정과 근대화 신화가 혈육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다. 박근혜는 반세기전 통치방식을 재현하려다 실패했다.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이 박정희 시절 유신헌법을 만든 중앙정보부 파견검사라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시대착오적 회귀는 비극을 안고 출발했다.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정권의 재도전이다. 노무현 정권은 민주당으로 통칭되는 호남중심 보수야당으로부터의 탈출드라마다.
노무현은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노무현의 열린우리당은 탄핵바람을 타고 17대 총선에서 압승했다. 학생운동권 NL(민족해방)계열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출신 등 좌파이념으로 무장한 386정치인들이 대거 유입돼 친노를 형성됐다.
노무현과 386는 좌파의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이어진 재보궐선거에 패하면서 여소야대가 된데다 지지율마저 떨어졌다. 노무현은‘반미 좀 하면 어때’라고 말하면서도 친미정책(한미FTA)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정권을 뺏기고 비극적 최후를 맞았으며, 386 친노들은 ‘폐족’을 자처하며 와신상담했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586이 된 386들이 되찾은 정권이 문재인 정부다. 2020년 총선은 180석이란 압도적 의석까지 주었다. 586은 맘껏 정권을 휘둘렀다. 결과는 참패다. 586 그룹에선 대권후보조차 찾지 못했다. 이재명이란 외부수혈을 택했지만 실패했다. 실패하고서도 이재명에 끌려다니고 있다. 586의 좌파이념 역시 40년전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한 시대착오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인수위 간사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인수위 간사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MB2 넘어설 정치철학 필요〉

윤석열 정권은 이런 한국정치사의 흐름 위에 서 있다. 시대착오적 정치이념이 몰락한 시점에서 시대정신을 반영한 정치철학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석열 정권은 여러모로 ‘이명박(MB)’정권을 닮았음은 사실이다. MB계 정치인들이 주도하기에 MB정권이 보여주었던 실용주의적 면모도 보이고 있다. MB는 전임(노무현)정권의 국무총리(한덕수)를 주미대사로 재기용했다. 바로 그 한덕수를 윤석열은 15년만에 다시 국무총리로 내정했다.
MB보다 더 MB스럽게 보일 정도의 실용주의 능력주의 엘리트관료중심이다. 이는 물론 보수적 가치들이지만 보수정치철학의 일부에 불과하다.
현대건설회장 출신 MB는 뛰어난 사업가였지만 정치철학은 부족했다. MB는 무리한 공약(한반도대운하)을 꼼수(4대강사업)로 바꿔 밀어붙였다. 결과만 따지는 건 사업가의 사고방식이다. 정치에선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반대세력(쇠고기수입 반대 촛불)과 소통하려는 노력 대신 물리력(명박산성)으로 단절했다. 광우병 주장이 비과학적이고 과장이었다고 하더라도 다수가 그렇게 믿으면, 그게 현실이라 받아들이고 경청하는 것이 정치다.
윤석열 정권이 MB2라는 비난과 우려를 벗어나자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철학이 필요하다. K트럼프라는 비난과 우려를 벗어나자면 우파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정치철학은 정치인이 국민을 설득하는 수단인 동시에 유권자들이 권력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2004년 영국 보수당 마이클 하워드 대표가 천명했던 ‘보수주의자의 신조’는 참고할만하다. ‘보수주의자 신조’는 하워드 개인적으로 ‘정치를 하는 이유’이며, 보수당 차원에선 21세기에 맞는 ‘새 보수당’을 다짐하는 형식의 홍보전략이다. 보수당은 2010년 정권을 되찾아 지금까지 집권 중이다.

〈보수주의자의 신조〉

마이클 하워드 영국 보수당 대표.
2004.01.02.

보수주의자의 신조를 발표한 마이클 하워드 보수당 대표가 2004년 12월1일 영국을 국빈방문한 노무현 대통령과 버킹검궁에서 환담 하고 있다.

보수주의자의 신조를 발표한 마이클 하워드 보수당 대표가 2004년 12월1일 영국을 국빈방문한 노무현 대통령과 버킹검궁에서 환담 하고 있다.

1.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I believe it is natural for men and women to want health, wealth and happiness for their families and themselves.

2. 인간의 본성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I believe it is the duty of every politician to serve the people by removing the obstacles in the way of these ambitions.

3. 국민은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서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을 때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I believe people are most likely to be happy when they are masters of their own lives, when they are not nannied or over-governed.

4. 국민은 커야 하며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I believe that the people should be big. That the state should be small.

5. 형식주의, 관료주의, 규정과 조사, 각종 위원회와 정부기관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오히려 우리를 억압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외부간섭은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I believe red tape, bureaucracy, regulations, inspectorates, commissions, quangos, ‘czars’, ‘units’ and ‘targets’ came to help and protect us, but now we need protection from them. Armies of interferers don‘t contribute to human happiness.

6. 모든 국민은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I believe that people must have every opportunity to fulfil their potential.

7. 책임 없는 자유는 없다고 나는 믿는다.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I believe there is no freedom without responsibility. It is our duty to look after those who cannot help themselves.

8. 기회 균등의 중요성을 나는 믿는다. 불공정은 우리를 화나게 만든다.

I believe in equality of opportunity. Injustice makes us angry.

9. 부모는 자녀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고 나는 믿는다.

I believe every parent wants their child to have a better education than they had.

10. 모든 자녀들은 부모가 노년에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나는 믿는다.

I believe every child wants security for their parents in their old age.

11. 누군가의 가난이 다른 사람의 부 때문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I do not believe that one person’s poverty is caused by another’s wealth.

12. 누군가의 무지가 다른 사람의 지식이나 고학력 때문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I do not believe that one person’s ignorance is caused by another’s knowledge and education.

13. 누군가의 질환이 다른 사람의 건강 때문에 나빠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I do not believe that one person’s sickness is made worse by another’s health.

14. 영국인들은 자유로울 때만 행복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I believe the British people are only happy when they are free.

15. 영국(국가)은 아무리 강한 적이 침범하더라도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I believe that Britain should defend her freedom at any time, against all comers, however mighty.

16. 행운, 노력, 재능, 다양성을 통해 영국이 고귀한 과거와 약동하는 미래를 가진 위대한 사람들의 고향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이들을 위해 봉사하게돼 행복하다.

I believe that by good fortune, hard work, natural talent and rich diversity, these islands are home to a great people with a noble past and exciting future. I am happy to be their serv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