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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위드 오미크론 시대, 이젠 일상으로 돌아갈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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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병율 차의과대학 보건대학원장

전병율 차의과대학 보건대학원장

“수요일·목요일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분들 생각하면 당장 달려가고 싶어요. ‘감기’ 때문에 암 환자들이….” 코로나19에 확진된 암 수술 명의가 보내온 문자다. 오미크론으로 환자가 급증한 뒤 지금 병원은 병상 부족보다 확진된 의료진 격리에 따른 의료 공백이 더 심각하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코로나19를 ‘제1급 감염병’으로 분류해 입원 치료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하루 약 30만 명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입원은 물론 가족이 모두 감염되는 경우 자가격리 규정을 제대로 지키기 어렵다. 코로나 사태 초기처럼 누가 음식과 약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숨고 싶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샤이 오미크론’ 환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등급을 인플루엔자와 같은 4급으로 낮추자는 건의가 나온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기존 방역체계 코로나 대응 한계
사회적 비용 줄일 방안 모색해야

코로나를 1급 감염병으로 분류해 차단과 확산을 방지하던 초기 방역 체계는 이제 무너졌다. 그런데도 일부 전문가들은 “아직도 정점을 지나지 않아 방역을 완화하면 사태를 악화시켜 의료 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라거나 “더 강력한 변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와 경고로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한다.

러시아가 침공하기 직전 우크라이나의 코로나 누적 환자는 5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확진자를 격리하면서 전쟁을 치르지는 않는다. 나라를 지켜야 할 더 긴급한 현안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전쟁은 아니지만, 우리도 너무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감염자와 환자는 다르다. 감염됐다고 모두 증상이 나타나고 앓는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홍역은 감염되면 거의 다 환자가 되지만 소아마비는 감염 후 5%만 증상이 나타난다. 우리가 예방접종을 하는 이유도 감염되더라도 발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더군다나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검사는 유전자를 수십 배 증폭시켜 비활성화된 바이러스 조각이라도 찾으면 양성이 된다. 이런 방법은 감염병 발생 초기, 발생 규모도 적고 특정 지역에 한정됐을 때 감염원을 찾아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유용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누구나 감염에 노출될 수 있고, 역학조사를 포기할 만큼 발생 규모가 큰 상황에서는 의미가 퇴색한다.

둘째,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 요즘 코로나 희생자 유족이 빈소와 화장장을 구하지 못해 장례 기간이 크게 지연될 정도로 사망자가 단기간에 급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상 회복이 지연될수록 사회·경제적 비용은 상상할 수 없이 커진다. 자영업자들과 실직자들의 손실, 학생들의 대면 교육 기회 상실, 심각한 코로나 블루 등 부작용이 한둘이 아니다.

셋째, 한국처럼 이렇게 오래 강력한 거리두기를 시행하는 다른 선진국을 찾기 어렵다. 선진국들이 아무 근거 없이 방역을 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질병관리청이 외국의 코로나 정보와 전략을 분석하고 교훈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을 들은 적이 없다. 물론 주기적인 항체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방역정책을 정하는 것이 과학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조사가 불충분하더라도 연령별 감염자, 중증환자, 사망자, 백신 예방접종자 수는 물론이고 의료시스템 대응 능력 등을 종합해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것도 과학적 방법이다.

사스·신종플루·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이 몇 년 간격으로 되풀이 발생했지만, 이번 코로나19처럼 국민이 2년 넘게 피로와 고통을 당하지는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손실보다 더 큰 미래의 짐이 하루하루 쌓여가고 있다. 특정 집단의 희생만으로 코로나19 위기가 끝나지는 않는다. 우리가 모두 어느 정도의 아픔을 나누면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역병이 끝난다. 강제가 아니라 자유인의 현명한 선택이 빛나야 한다. 어둠을 뚫고 나갈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병율 차의과대학 보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