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비 360억원 의결로 이전은 기정사실
소모적 논쟁 그만, 탈권위 공간 만들어야
문재인 정부가 어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하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위한 360억원의 예비비 지출을 의결했다. 이로써 전례 없던 신구(新舊) 권력 간 갈등이 일단 한고비를 넘게 됐다.
사실 그간 아슬아슬했다. 윤 당선인이 직접 브리핑하며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공식화한 이후 문 대통령이 안보 공백을 이유로 사실상 거부하고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다. 이에 윤 당선인은 “텐트 치겠다”고 맞섰다. 김부겸 총리가 어제 “당선인의 의지가 확실한 이상 결국 시기의 문제이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는데 진즉에 그리 정리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현 정부가 경호를 이유로 4년 내내 미뤘던 북악산 전면 개방 공약을 어제 이행한 걸 보면 결국 결정적인 건 대통령(당선인)의 결단이니 말이다.
이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기정사실이 됐다. “5월 10일 딱 맞춰 집무실 이전을 하긴 불가능하다”(배현진 당선인 대변인)고 하니 5월 중 입주냐, 6월 입주냐 정도가 남은 변수일 것이다. 갈등 와중에 집무실 등 핵심 시설이 들어설 국방부 청사 1~4층 이사가 한미연합훈련(18~28일) 이후로 미뤄지고 이번 예비비엔 집무실 조성과 경호처 이전 비용 등이 포함되지 않아 입주 시기가 유동적이다. 추가 예비비 의결이 필요할 텐데, 갈등이 또 있어선 안 된다. 안보 공백이 없어야 하는 것도 불문가지다.
더불어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을 어떻게 탈권위적 공간으로 만들어 내느냐도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대통령을 ‘제왕’이 아닌 ‘제1 시민’으로 대우하고 대통령의 동선을 대통령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참모들의 동선과 교차하게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선 “국방부 청사가 절대 위계와 상명하복의 작동 원리를 담고 있음이 확연한 건물이다. 그러기에 지난 세기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충실한 소비에트 블록 관청사라고 하면 믿어질 모습”(서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이란 지적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위계·상명하복의 공간에서 탈피하기 위해선 혁신적 발상이 필요하다. 청와대 경호 등 기존 관료들만으론 한계가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도 비서동에 회의실을 만들었는데, 본관과 크게 다르지 않게 권위적 장소가 된 걸 보면 민간 등 제3의 시각이 절실하다.
새로 마련될 대통령 집무실은 윤 당선인만이 아니라 이후에 등장할 대통령들도 머물게 될 공간이다. 보수 정당 출신이든, 진보 정당 출신이든 말이다. 그러니 여야는 이제부터라도 소모적 논쟁을 뒤로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대통령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