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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직접 지워서' 죄 안된다고? 아동학대 의심 원장 판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학부모가 어린이집 내 아동학대를 의심해 폐쇄회로(CC) TV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자 영상 기록을 삭제한 어린이집 원장에게 대법원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관련 법에 CCTV 영상정보를 분실하거나 훼손당한 어린이집 운영자는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스스로 영상을 훼손하는 경우는 빠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영유아보육법 위반(예비적 죄명: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울산의 한 어린이집 원장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울산지방법원에 환송한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11월 자신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아이의 부모로부터 '담임교사가 아이를 방치한 것 같으니 CCTV 녹화내용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받자 공공형 어린이집 취소 등을 우려해 CCTV 기록을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CCTV 수리업자를 불러 영상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은닉하고, 이를 새로 교체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아동학대 의심 상황이 담긴 영상을 전부 삭제했다.

검찰이 A씨를 기소하면서 적용한 법 조항은 영유아보육법이었다. 이 법에 따르면 어린이집 운영자는 아동학대 방지 등 영유아 안전과 어린이집의 보안을 위해 CCTV를 설치·관리해야 하고, 그 영상 정보가 분실·도난·유출·변조·훼손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영상 정보에 대한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당한 운영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영상 정보를 '훼손당한' 자가 아닌 직접 훼손했기 때문에 검찰의 공소사실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1심 재판부는 "영유아보육법은 영상정보를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당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며 "이 사건처럼 어린이집 운영자가 스스로 영상정보를 훼손하거나 분실한 경우에는 이 조항을 적용해 처벌할 수 없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에 항소한 검찰은 영유아보육법 위반의 공소사실을 주위적 공소사실로 유지하면서, 예비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죄명을 적용해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이를 받아들인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A씨에게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영유아보육법에서 '훼손당하는'의 주체는 '영상정보'"라며 "어린이집 운영자가 저장장치를 버리거나 파기하는 행위의 결과 영상정보는 훼손을 당하는 것이므로, 이런 경우 '훼손당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영상정보를 직접 훼손한 어린이집 운영자가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자'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을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확장해석한 것이라며 1심과 마찬가지로 A씨에게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영유아보육법은 CCTV를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관리 의무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을 두고 있을 뿐 개인정보보호법과 같이 '다른 사람의 개인 정보를 훼손·멸실·변경·위조 또는 유출한 자'를 처벌하는 명시적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이러한 규정 태도는 '영상정보를 스스로 '훼손·멸실·변경·위조 또는 유출한 자'에 대해서 형사처벌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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