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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카톡으로 전 직원 임금명세서를…중소기업 노무관리 허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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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해 11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임금(급여)명세서 교부가 의무화된 지 약 5개월이 지났지만 헤매는 이들이 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이 대표적이다.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각 사업장은 어떻게 대응하는지, 제도가 안착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편집자 주]

임금명세서 교부 의무화 그후 - 노무관리 허덕이는 중소기업

"직원들 연차 정산이요? 우린 아직도 수작업으로 해요."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구로구 온수산업단지. 이곳에서 35년째 자리를 지켜 온 싱크대 공장 A사는 최근 근태 업무만 전담하는 직원을 채용했다. 인사, 연차·수당 등 직원 30여명의 데이터를 담당자가 종이에 직접 적어 관리하고 있다. 이번에 근로기준법이 바뀌면서 해당 업무만 하는 인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개정법에 따르면 임금명세서에는 월급총액뿐만 아니라 기본급, 각종 수당, 상여금 등 구성항목별 금액과 산정 기준(계산방법)까지 모두 기재해야 한다.

공장 대표 최 모 씨는 "공장 특성상 1일 생산을 하는 데다 수작업 데이터로 운영해왔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기 쉽지 않다"면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해도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직원들 출퇴근 정보 한땀 한땀 수작업

경기도 고양시 한 제지공장에서 근로자가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경기도 고양시 한 제지공장에서 근로자가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규모가 큰 공장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직원 174명을 둔 인천 서구 서부공단에 있는 한 반도체 장비 부품 생산공장은 직원 근로시간, 남은 연차 등 각종 데이터를 회사 관리부에서 엑셀로 정리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리된 엑셀 파일을 이메일로 전달하면 직원들이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 역시 데이터를 손수 입력하고 재확인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건설현장도 난리통이다. 매일 인력이 바뀌는 현장 특성 때문이다. 인천 서구의 한 건설현장의 인사관리부 직원 박 모 씨는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날마다 달라 명세서 항목에 들어갈 자료 취합에 애를 먹고 있다”면서 “회사의 급여 지급일이 매월 5일인데, 이 때 정작 고용관계가 종료된 근로자들도 많아서 교부가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체계적인 근태·인사 시스템을 갖출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에선 비용만 더 늘었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식품회사를 운영하는 홍 모 대표는 최근 월 30만원을 주고 노무사를 고용했다. 직원 수가 많다 보니 세무사를 통해 임금명세서 관리를 맡기기도 어려워 취업규칙 등 노무 관리를 통째로 맡기기로 했다. 그는 "노무사를 쓰려고 하니 수백만 원의 가입비를 따로 받는 곳도 있었다"면서 "법 지키려고 하니 나가는 돈이 더 많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월급 내역 카톡 배송 실수도

경기도 파주 한 식품회사 대표가 서류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경기도 파주 한 식품회사 대표가 서류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카카오톡으로 월급명세서를 하나씩 보내려다 실수로 모든 직원의 월급 내역을 한꺼번에 공유한 것. 이후 한 달에 한 번, 월급 주는 날이 가장 긴장되는 날이 됐다. 홍 대표는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각종 규제에 챙겨야 할 것은 더 많아졌다"며 "사람 쓰는 게 가장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급여명세서 작성 업무를 도왔던 세무사들도 울상이었다. 근로자의 임금과 관련된 일은 엄밀히 따지면 노무사가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영세·중소기업에선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급여명세서 작성 업무를 세무사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세무사들은 부가세·종합소득세 등 수수료를 받고 세무기장을 해 주면서 기본적인 급여명세서 작성 업무를 덤으로 해줬다. 서울 강남구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세무사 김 모 씨는 "세무사는 권한도, 책임도 없이 하는 일인데도 법이 까다로워지면서 업무가 쌓이고 있다"며 "만약 임금명세서를 잘못 작성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책임져야 하니, 이제 급여명세서 업무는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 무료 프로그램 배포했지만 

고용노동부가 무료로 배포한 임금명세서 작성 프로그램 가이드. 사용설명서 캡처

고용노동부가 무료로 배포한 임금명세서 작성 프로그램 가이드. 사용설명서 캡처

소규모 사업자들이 임금명세서 교부 의무화로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무료 프로그램을 배포하고 나섰다.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면 임금명세서 필수항목이 무엇인지 명시돼 있고, 실지급액은 얼마인지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급여의 기준이 되는 공제항목들을 사용자가 직접 입력해야 하는 불편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최현석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은 "임금명세서 교부 제도 시행 초기 웹상에서 작성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번에는 PC에 내려받아 오프라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며 "제도가 원활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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