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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뜨거운 ‘통상 밥그릇’ 싸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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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의 ‘밥그릇’ 싸움이 가관이다. 새 정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 산업부 산하에 있는 통상교섭본부 조직을 외교부로 옮기느냐, 마느냐를 두고서다. 두 부처가 전직 장·차관을 동원한 여론전(戰)은 물론 인수위에 대한 로비전, 익명의 인터뷰를 통한 비방전까지 펼쳤다.

양측의 주장은 이렇다. 외교부는 최근 미·중 패권경쟁 등 외교·안보적 이해관계가 통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통상기능을 가져와야 한국의 경제안보 역량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 지난해 요소수 사태처럼 최근 통상 환경 변화에 산업부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통상이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어, 산업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방어 논리를 내세운다. “기업에 통상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기업을 이해하는 쪽이 통상을 맡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같은 발언처럼 재계의 지원사격도 받고 있다.

노트북을 열며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노트북을 열며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통상 기능을 둘러싼 두 부처의 ‘핑퐁 게임’은 30년 가까이 진행됐다. 상공부·외무부·경제기획원 등에 나뉘어 있다가 1994년 통상산업부, 1998년 외교통상부,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 등 산업부와 외교부가 번갈아 맡았다. 나라별로도 다르다. 미국은 무역대표부라는 제3의 독립 부처, 일본은 한국의 산업부에 해당하는 경제산업성, 프랑스는 외교부 소속이다. 이는 통상 기능을 어디에 둘지는 뚜렷한 모범 답안이 없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산업부가 통상을 맡으면 제조업 중심의 시장확대, 수입 규제 대처가 효율적으로 이뤄진다. 외교부에서 담당하면 외교·안보 등 다른 대외 주제들과 함께 통상을 유기적으로 다룰 수 있다.

하지만 통상은 경제적 요소와 외교적 요소가 섞여 있는 만큼 산업부 또는 외교부가 상호 협력 없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통상을 누가 가져가든 간에 산업부·외교부 간 감정의 골이 지금처럼 깊어진 상황에서 새 정부 들어 두 부처의 유기적 융합·협력이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 앞선다.

청와대의 대통령 경호처와 달리 미국 대통령을 보호하는 미국 비밀경호국(US Secret Service)은 백악관 직속이 아니다. 2003년 국토안보부로 옮겨갔는데, 그전 138년 동안에도 백악관이 아닌 재무부 산하에 있었다. 소속이 백악관이 아니라고 대통령 경호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업무를 ‘누가 하느냐’ 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통상 조직이 어디 있느냐 간에 현안이 생겼을 때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함께 갖춰나가는 게 중요하다”(박명섭 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