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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이식 로봇, 외계서 온 바이러스…2030의 발랄한 SF 상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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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SF 단편집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을 펴낸 2030 여성 작가 조예은, 우다영, 박서련, 문보영 작가(왼쪽부터). 『초월하는~』은 허블 출판사의 새 SF 시리즈 ‘초월’에 이들이 앞으로 써낼 SF의 ‘티저’를 모은 책이다. 문 작가는 SF의 장점을 “세상을 만들고 보니 결국 현실의 세상을 더 이해하게 됐다”, 조 작가는 “현실의 한계를 넘어, 가능성이 열려있는 세계를 그릴 수 있는 것”으로 꼽았다. [연합뉴스]

SF 단편집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을 펴낸 2030 여성 작가 조예은, 우다영, 박서련, 문보영 작가(왼쪽부터). 『초월하는~』은 허블 출판사의 새 SF 시리즈 ‘초월’에 이들이 앞으로 써낼 SF의 ‘티저’를 모은 책이다. 문 작가는 SF의 장점을 “세상을 만들고 보니 결국 현실의 세상을 더 이해하게 됐다”, 조 작가는 “현실의 한계를 넘어, 가능성이 열려있는 세계를 그릴 수 있는 것”으로 꼽았다. [연합뉴스]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이 버려져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방사선을 내뿜는 곳’이 된 러시아 카라차이 호수, 인류의 70%를 감염시킨 바이러스, 개인 정보 빅데이터를 이용해 스스로 사고하는 인공지능(AI)…. 실존하는 현상이나 대상에 간단한 차이만 설정해 넣었더니, 낯설고 색다른 이야기가 됐다.

최근 출간된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허블)에 담긴 SF 단편 속 세계는 지금의 이곳과 비슷한 듯 다르다. 미래를 보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 로봇에게 공동의 기억을 이식하는 사회, 운석에 묻어온 외계 바이러스 감염으로 생겨난 괴물이 특수요원으로 활약하는 세계 등이다. 5일 출간 간담회에서 조예은 작가는 “실제로 러시아에 있는 오염된 호수 카라차이 호에서 영감을 얻어 상상력을 조금 넣었다”며 “과학 지식이 깊은 건 아니어서 설득력 있는 세계관을 만드는 데 특히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2030 작가 다섯 명이 펴낸 SF 한국문학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사진 허블]

2030 작가 다섯 명이 펴낸 SF 한국문학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사진 허블]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에는 ▶우다영의 ‘긴 예지’ ▶조예은의 ‘돌아오는 호수에서’ ▶문보영의 ‘슬프지 않은 기억집’ ▶심너울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박서련의 ‘이다음에 지구에서 태어나면’ 등 5편의 중·단편이 담겼다. 이들이 집필하는 단행본 SF의 ‘티저’를 모은 책이다. 박서련 작가는 “‘단편은 반드시 장편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선행 규칙을 어기지 않는 한도 안에서 작품은 재밌어야 한다’, 이 두 가지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 이기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며 썼다”고 말했다.

5명의 작가는 ‘무서운 아이들’이다. 박서련 작가는 2021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문보영 작가는 2017년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시인 출신이다. 무엇보다 나이(1989~1994년생)가 한창때다. 출판사 김학제 편집팀장이 평소 눈여겨봤던 작가 5명을 섭외해 소설집을 냈다. 그는 “나이나 성별을 의도한 건 아닌데, SF에 관심 있고 최근 가장 적극적인 작가를 모으다 보니 주로 젊은 여성 작가가 됐다. 지금도 추가로 작가를 섭외 중인데 SF를 쓴다면 성별·나이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번 5명과 집필 대기 중인 14명 중 김희선(40대)과 심너울(남성)을 빼고는 모두 2030 여성 작가다.

허블은 김초엽의 베스트셀러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 출간으로 SF를 대중화하는 데 일조했다. 이번 SF 시리즈를 기획하며 “SF라는 조건 외에 공통 테마도, 일정한 방향도 없이 자유롭게 써달라”고만 했다고 한다. 소설집 제목마저 다섯 작품을 아우르는 키워드 ‘초월’ ‘세계’ ‘사랑’을 조합해 지었다. 문보영은 “다섯 작품에 공통으로 ‘사랑’이 들어간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김학제 편집팀장은 “(작가가) 5명이 모일 때마다 선집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소설집 ‘1번 타자’는 우다영 작가다. 소설집 맨 앞에 분량이 가장 많은 ‘긴 예지’를 수록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AI’를 만드는 스토리 안에서 현재와 미래를 얘기한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연상시키는 전쟁 장면이 나온다. 우다영은 “오래 품었던 이야기라 전체적으로 거의 완성됐는데, 앞부분을 여러 번 고쳐쓰기를 반복하던 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우다영은 “건조하고 논리적인 문장들을 집요하게 따라가다 보면 어떤 충격이나 이해, 정서에 도달하게 되는 SF의 화법에 반해 쓰게 됐다. SF 하면 완전히 엉뚱하고 새로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평소 생각과는 다른 근육을 사용해서 소설을 쓴 것뿐”이라고 했다.

작가들은 SF가 2019년 김초엽 등장 이후 젊은 세대에겐 재밌고 색다른 소재로 인기가 높지만, 기성 문학계에선 아직도 거리감과 편견이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막상 써보니 SF라는 필터를 통해 해보고 싶은 걸 과감하게 해볼 수 있는 게 SF의 매력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SF가 벽이 아니라 하나의 설정, 도구 정도라는 의미다.

박서련은 “2015년 등단한 뒤에 ‘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루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다음 원고 청탁이 들어오겠냐’는 우려가 컸다. SF에 ‘라벨링’ 하는 문단 분위기가 여전하지만, 내게 SF는 게임의 규칙이 하나 더 생긴 정도일 뿐, 다른 작업과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우다영도 “SF의 정의에 대해 질문받곤 하는데, 사실 ‘문학은 무엇인가? 소설은?’ 등의 질문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른바 순문학과 SF가 서로 ‘얼마나 재밌고 멋진지’ 독자를 대상으로 경쟁하는 거라는 생각을 몇 해 전부터 했다. 이미 우리 SF는 그런 단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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